
대보그룹 최등규 회장이 계열사 자금을 빼돌려 수백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일부 자금은 관급공사 수주 로비에 사용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대보그룹에 오너 부재사태가 예고됨에 따라 그간 대보그룹과 한국도로공사 간 관계를 두고 제기됐던 유착논란이 재조명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총수 부재에 기업을 이끌어갈 후계자로 장남과 차남 중 누가 지목될 것인지에 대한 관심도 높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엄상필 부장판사)는 25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최 회장에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지주회사의 대주주인 ‘그룹 회장’이 지배권을 이용해 다수 계열사에서 부정하게 자금을 빼내고 관리하는 행위는 독립된 법인격을 전제로 한 주식회사 제도의 본질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중대한 범죄”라고 판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 회사들에게 34억 이상을 반환했고 피해 회복을 위해 피고인이 보유한 대보유통 등 주식에 관하여 대보건설과 대보실업 등을 채권자로 피담보채권액 229억원 상당의 질권을 설정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또한 재판부는 최 회장이 2009년 심장수술을 받은 이후 계속 치료받는 중인 상황을 고려해 보석허가 결정은 취소하지 않기로 했다.
최 회장은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대보정보통신 등 계열사를 동원해 허위 세금계산서를 매입하거나 거래대금을 과다 계상한 뒤 대금을 돌려받는 수법으로 회삿돈 210억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지난해 말 구속기소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다.
앞서 지난 1월 검찰조사결과에 따라 최 회장에 뇌물공여 혐의도 추가된 바 있다. 최 회장은 민모(62) 부사장과 함께 군시설 공사 수주를 위해 평가심의위원으로 참여한 허 교수 등 12명에게 총 2억500만원의 금품 로비를 건넨 것으로 드러났다. 민 부사장은 육군 공병장교 출신으로 이천 군관사 공사 평가심의위원단이 구성되기 전날 대보그룹에 영입돼 로비를 주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로비 자금 중 일부는 중간전달자가 빼돌리기도 했다.
◆ 도로공사, 유착커넥션 끊으려 주식 전량 매각
전국 곳곳에서 고속도로 휴게소를 운영하며 ‘휴게소 재벌’이라는 별명이 붙은 대보그룹은 2002년 한국도로공사 자회사인 고속도로정보통신공단을 인수해 사명을 대보정보통신으로 바꿨다. 이후 8년 간 사업권을 보장받아 도로공사정보통신사업 99%를 독점하며 급성장 해왔다. 2009년 12월부터 공개경쟁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업계 1위를 지키고 있다.
대보정보통신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도로공사와의 유착관계 의혹을 받으며 눈총을 받았지만, 도로공사가 대보정보통신의 지분을 전량 매각하면서 논란은 잠재워졌다.
국정감사 당시 이언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대보유통, 대보건설, 대보디엔스 등 대보그룹 계열사에 휴게소 운영계약이 집중되고 있다”며 “대보그룹 계열사는 5년간 고속도로 휴게소 13곳을 운영하며 2941억원이나 매출을 냈다”고 지적했다.
이어 “도로공사 본부장 출신들이 대보정보통신 고문으로 재취업해 일감 수주와 계열사 휴게소 입찰 과정에서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공개경쟁입찰에서 예정가 등 입찰 정보가 새어나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후 도로공사는 대보정보통신의 지분을 최 회장의 차남 최재훈 대보정보통신 이사에 전부 팔았다. 이로써 대보정보통신과의 유착관계 논란은 어느 정도 해소됐다. 실제 국정감사에서 유착커넥션 지적을 받은 지 두 달 만인 같은 해 12월 도로공사가 보유한 대보정보통신 지분은 0%로 기존 보유 지분 18.98%(227만 7060주)를 모두 최재훈 대보정보통신 이사에 판 것이 확인됐다. 검찰이 대보정보통신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하기 열흘 전에 이뤄진 일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 기준 대보정보통신의 최대주주는 대보건설(51%)이고 이어 최재훈(18.98%), 대보유통(15%), 기타(15.02%) 순으로 최 이사는 단번에 2대주주로 올라서며 유력한 승계 후보로 거론됐다.
◆ 도공출신 대보 임원에 “로비창구” 지적도
그간 대보정보통신은 매출의 50%에 해당하는 일감을 도로공사로부터 수주 받아 ‘일감 몰아주기’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지난해 대보정보통신이 도로공사로부터 수주 받은 일감으로 올린 매출은 507억3016만원으로 전체 매출 1476억9451만원의 34.3% 수준이었다. 2013년에는 전체 매출 1310억8087만원 중 45.2%인 592억7044만원의 매출을 냈고, 2012년에는 57.3%, 2011년 65.8%, 2010년 55% 매출을 기록했다.
또한 도로공사 출신들이 퇴직 후 대보정보통신의 임원으로 자리를 옮긴 것을 두고도 의심의 눈초리가 많았다. 2001~2004년, 2004~2007년 사이 도로공사 퇴직자 각각 1명이 고문으로 임용됐다. 2007년~2010년까지는 도로공사 출신이 부사장에 올랐고, 2012~2013년 고문 1명 등 도로공사 출신 총 3명이 고문으로 재직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이 의원은 “(대보정보통신이)억대의 연봉을 주면서 고문으로 채용할 때는 로비창구로 활용하기 위한 것 아니겠느냐”라면서 “도공의 퇴직자는 대보정보통신에 재취업해 일감수주와 휴게소 입찰과정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 장남 제치고 차남 간택說, 아직은...
도로공사가 보유 지분 전량을 넘기면서 2대주주로 등극한 최 회장의 차남 최재훈 대보정보통신 이사가 향후 대보정보통신을 이어 받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실제 대보정보통신 경영전반에 걸쳐 후계수업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대보건설을 제외하고 개인주주로는 최대지분을 가지게 되면서 회사 내에서 입지가 더 단단해진 모양새다.
최재훈 이사는 장남인 최정훈 대보건설 전무보다 1년 늦은 2010년 대보정보통신에 입사했다. 이후 2013년 부장으로 승진해 기획팀장을 맡아오다가 지난해 이사로 승진한 뒤 경영수업을 받아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장남인 최정훈 전무에 비해 외부노출이 뜸했던 최재훈 이사를 두고 형에 비해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대보정보통신 지분 추가 취득으로 전세를 역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다만 대보정보통신의 최대주주가 대보건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형인 최정훈 대보건설 전무와의 신경전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대보건설은 대보정보통신 주식 51%를 보유하고 있다. 만약 최정훈 전무가 대보건설을 물려받게 될 경우 최재훈 이사의 입지는 흔들릴 수 있다.
또한 최재훈 이사는 도로공사로부터 주식을 헐값에 매입했다는 의혹도 해소해야 하는 상황이다. 최 회장이 실형을 받은 상황에서 대보그룹과 도로공사간 유착의혹을 두고 검찰의 칼끝이 다시 대보정보통신으로 향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당초 도로공사 가지고 있던 대보정보통신 주식은 18.98%(227만 7060주)로 감정가액은 71억 7046만 2000원이었다. 하지만 낙찰가액은 감정가액의 절반 수준인 35억 8523만 1000원으로 정해졌다. 낙찰 당시 회사의 비상장주식 장외 가격 2300~2400원을 고려하면 전체 시세만 해도 최소 52억으로 평가됐었다.[시사포커스 / 진민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