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세청이 우리은행을 상대로 세무조사에 착수한 가운데, 일각에서는 다른 재벌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들여다보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제기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7일 국세청에 따르면 전날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은 서울 중구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에 직원 7명을 투입해 세무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은행의 세무조사는 2011년 이후 4년 만으로, 국세청은 4개월여 간 우리은행에 대한 정밀 세무조사를 진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주체와 시기 등을 감안해 보면 우리은행의 이번 세무조사는 정기 세무조사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서울지방국세청의 조사1국은 정기 세무조사를 담당하는 부서로 알려져 있다.
우리은행 역시 “2011년 이후 4년 만에 정상적으로 받는 정기 세무조사”라며 “특별세무조사가 아닌 사전통보를 받은 세무조사”라고 설명했다. 국세기본법에 따르면 정기 세무조사는 4년 마다 한 번씩 진행하게 돼 있으며, 실제로 국세청은 기업별로 4~5년 마다 정기 세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조사1국이 정기 세무조사를 담당하기는 하지만 대기업 비리 등을 담당하는 서울지방국세청의 핵심 부서라는 점에서 최근 취임한 황교안 국무총리가 부패와의 전쟁을 재차 선포한 것과 연관짓는 시각도 나온다.
세무조사 과정에서 대기업들의 불법 자금 거래 흔적이 나올 경우 우리은행은 다시 한 번 난감한 상황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우리은행은 CJ그룹의 불법 자금 거래 흐름을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과태료를 부과받기도 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금융회사는 고객이 자금세탁 행위를 할 우려가 있는 경우 본인 여부 및 금융거래 목적을 확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고객이 자금세탁에 나섰다고 의심되는 합당한 근거가 있고 해당 거래 금액이 1000만원 이상이면 금융정보분석원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금융정보분석원장이 내부 심의위원회 논의를 거쳐 한 건당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정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 4월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과태료심의위원회에서 CJ그룹이 2009년 9월부터 2013년 5월까지 300건의 자금세탁 의심거래를 하는 과정에서 본인 여부를 확인하지 않거나 의심거래 보고 의무를 위반한 사실로 19억94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이후 우리은행은 이 처분을 수용해 20%가 감액된 15억9520만원을 납부했다. 당시 우리은행의 과태료 납부는 2013년 FIU의 과태료 기준 강화 이후 가장 많은 과태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우리은행은 지난해 9월 CJ그룹의 차명계좌 개설 건과 관련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기관주의 및 임직원 징계 조처를 받기도 했고, 2009년에도 삼성그룹 비자금 조성과 연루돼 과태료를 부과받은 적도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11월 29일부터 시행된 일명 ‘차명거래 금지법’ 실시 직전까지 인출된 1억원 이상의 예금 인출 현황에서 신한은행과 농협은행에 이어 3위(5만2868건)를 차지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물론 일각에서는 재벌 그룹과의 거래에서 은행들은 ‘을’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내부 시스템상 의심 거래 경보가 뜨면 보고 여부를 은행이 판단하게 되는데 이 자금이 영업용인지 비자금용인지를 추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동정론’이다.
한편 이번 세무조사가 최근 우리은행이 추진하는 다섯 번째 민영화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관전포인트가 되고 있다. 우리은행은 수 차례 실패했던 민영화를 연내 성공시키기 위해 매각 방식 변경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면서 시동을 걸고 있으며, 구체적인 민영화 방안은 이달 중으로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정기 세무조사이기는 하지만 국세청이 정부의 ‘부패와의 전쟁’ 기조에 따라 대기업 불법 자금 거래와 관련된 흔적을 들여다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관련 혐의가 나올 경우 기업 가치 하락 등 민영화에 악재가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