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부당한 이익을 사회에 충분히 환원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 살리기에 헌신적인 노력을 할 것”을 전제로 “잘못한 기업인도 국민여론이 형성된다면 다시 기회를 줄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언론 인터뷰 과정에서 질문이 나오니 견해를 밝힌 것이었겠지만, 법무부 장관이 기업인 사면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적잖은 파장이 일었다.
다음날 최경환 부총리 역시 기자들이 황교안 당시 장관 발언에 대해 질문하자, “경제 살리기와 연결된다면 (사면을) 일부러 차단할 필요는 없다”고 거들었다. 그리고 9개월여 지나 황교안 장관은 국무총리가 되었고, 그가 총리에 임명된 지 한 달쯤 되어 박근혜 대통령은 “광복 70주년의 의미를 살리고 국가 발전과 국민대통합을 이루기 위해 사면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는 뜻을 밝히고 나섰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껏 사면에 대한 입장이 비교적 단호했었다. 대선 과정에서도 그랬지만, ‘성완종 특별사면’ 논란이 거세게 일었던 최근까지도 “사면은 예외적으로 특별하고 국가가 구제해줄 필요가 있는 상황이 있을 때만 행사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국가적 차원에서 정말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사면권을 남용하지 않겠다는 것이 박 대통령의 원칙이라면 원칙이었던 것이다.
특히, 박 대통령은 경제인 사면 문제에 대해서는 “납득할만한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며 민생사범과는 달리 더욱 깐깐한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돌연 사면, 그것도 기업인들에 대한 사면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재계는 물론 정치권까지 들썩거리고 있는 상황이다. 당장 재계는 기업인들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고 나섰고, 일부 기업들의 주식은 일찌감치 특사 기대감에 요동치고 있는 상황이다.
특사 대상자로 언급되는 것만으로도 시장의 반응이 이렇게 나타난다니, 메르스 등의 타격으로 인해 경제 살리기가 시급한 정부 입장에서는 경제인 사면을 고려해볼 만도 한 일일 것이다. 여당은 박 대통령에게 명분이라도 심어주려는 듯, 전방위적으로 경제인에 대한 사면을 요구하고 있다. 16일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회동 자리에서도 당은 ‘생계형 서민들에 대한 대폭적 사면, 경제 살리기 차원에서 경제인 포함 사면, 대상자 가능한 많은 대규모의 사면’ 등을 건의했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실상 경제인 사면을 단행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검토하겠다’는 자체만으로도 지금까지와 입장이 달라진 것은 물론이다.
물론, 경제인에 대한 사면도 필요하다면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기 때문에 특별히 경제인이라 해서 굳이 사면 대상에서 배제시키는 역차별을 해서도 안 될 일이다. 야당은 정부가 경제인 사면까지 검토한다니, ‘무전유죄, 유전무죄냐’면서 강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지만 결코 타당한 주장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 경제인에 대한 사면이 지금껏 한 차례도 없었다는 점을 알고도 그렇게 말하기는 힘들다. 더불어 일부 경제인들은 벌써 형기의 절반을 넘기기도 했다.
다만, 법질서 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무분별한 사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를 살리고 국민 대통합을 이루기 위해 특별 대사면을 추진한다고 하는데, 그런 만큼 더욱 엄격한 사면 기준이 필요하다. 야당에서는 이번 사면이 재벌총수, 비리 정치인, 부정부패세력까지 망라된 무차별적인 범죄인 사면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통 큰 사면을 하더라도, 경제인이 포함된 사면을 하더라도, 명확하고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이 굳이 임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통치기반 강화를 위해 사면권을 사용했다는 비판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는 일이다.
박 대통령 스스로 지금껏 늘 단호히 밝혀왔듯, 경제인 사면은 납득할 만한 국민적 합의가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박 대통령의 신념대로 국정을 이끌어 나가면 된다. 따라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인 사면에 대해 과연 납득할 만한 국민적 공감대가 있는 것인지, 또 경제인 사면을 한다고 해서 경제활성화가 실제로 가능할 것인지 꼼꼼히 판단하는 일이다. 아무쪼록, 법질서 체계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명확한 원칙과 기준을 세워 특별 대사면이 이뤄지길 바란다. [박강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