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우조선해양이 2조원대 분식회계 의혹을 받고 있는 것과 관련해 신용평가사들의 ‘늦장 대응’이 눈총을 받고 있는 가운데 국내 1위 신용평가사인 한국기업평가가 희망퇴직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외국계 최대주주인 ‘피치’에 대한 고배당 정책이 원인이 된 것이라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또한 신용등급을 유지해주는 대가로 기업들로부터 평가 계약을 가져오는 행위에 대한 금융당국의 제재가 강화되면서 신평사들의 ‘등급 장사’가 어려워지자 한기평이 결국 인력을 줄이는 방법으로 수익성을 유지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게다가 최근 한기평을 비롯해 한국신용평가, NICE신용평가 등 3곳 신평사 중심의 과점구조를 철폐하고 신용평가의 질을 높이기 위해 제4신평사의 도입 필요성이 나오고 있는 분위기에 한기평이 나름의 선제적 조치를 취한 것 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17일 한기평 관계자는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일단 (희망퇴직이) 확정이긴 하다”면서 “근속연수 15년 이상이면서 45세 이상인 직원들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신청서를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기평이 1983년 산업은행의 자회사로 설립된 이래 전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구조조정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산업은행 출신 낙하산 인사들을 정리하기 위해 대상이 특정된 구조조정을 실시한 적은 있다.
한기평의 실적과 영업이익률을 살펴보면 이번 희망퇴직 결정이 의아하다. 지난해 연결 재무재표 기준 158억의 영업이익을 올렸고, 올해 1분기 3개월치 영업이익도 24억원을 기록하는 등 흑자를 내고 있다. 자본총계는 지난해 877억원으로 전년도 844억원 대비 3.7%(33억원) 늘었다. 이외 영업이익률 역시 신평사 빅 3 중 나머지 두 곳인 한국신용평가와 NICE신용평가에 비해 뒤처지지 않는다. 지난해 한신평과 NICE신평의 영업이익률은 각각 24.9%, 20.1%였고 한기평은 54.5% 수준이었다.
◆ 윤 대표, 피치 덕에 살아남았나

일각에서는 한기평이 희망퇴직을 실시하기로 확정한 것을 두고 한기평 지분 73.55%를 가진 최대주주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Fitch)의 수익성 보전을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기평이 2011년 윤인섭 대표 취임을 기점으로 고배당 정책을 실시해왔다는 점이 근거가 되고 있다. 윤 대표는 취임 이후 피치에 대한 배당성향을 평균 60% 이상으로 유지해왔고 한때는 90%를 넘어서기도 하면서 당기순이익의 대부분을 배당 재원으로 사용했다. 올해에도 75억300만원을 배당으로 지급하면서 피치에게 귀속되는 당기순이익인 115억 4900만원 중 무려 65%를 배당으로 지급했다. 이에 한기평이 양호한 실적에도 불구하고 희망퇴직을 실시한 것은 고배당 정책 때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앞서 지난 4월 금융위원회는 ‘부실 신용평가 논란’과 관련해 3개 신평사 대표들에 대해 문책 경고 조치를 내렸다. 이로써 한국기업평가 윤인섭 대표를 비롯해 한국신용평가의 조왕하 대표, NICE신용평가 이상권 전 대표는 향후 3년간 금융기관 임원 선임이 불가능해졌다. 이상권 전 대표는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물러났고, 나머지 2명은 잔여 임기가 있을 경우 그 기간에는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금감원에 따르면 3곳 신평사들은 미리 기업에 예상 신용등급을 알려주고 그 대가로 계약을 따내거나 기업어음 발행 이후 기업의 신용등급을 낮추는 등 ‘등급 장사’를 해왔다. 이에 금융당국은 회사와 대표가 신평사 직원들이 영업행위를 하도록 방치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제재를 확정했다.
이상권 NICE신용평가 전 대표는 금융당국 제재확정 전 물러났고, 조왕하 한국신용평가 대표는 제재 직후 사임의사를 밝혔다. 조 대표의 임기가 2017년까지 남아있었던 만큼 사실상 대주주 무디스 측의 경질 조치로 해석됐다.
다만 한국기업평가 윤인섭 대표만은 임기가 보장됐다. 2014년 연임에 성공한 윤 대표는 오는 2017년 3월 임기가 만료된다. 이에 그간 최대주주인 피치를 위한 고배당 정책이 한 몫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한 윤 대표가 금융당국 조사를 받던 2014년 당시 전년도와 같은 수준의 고액 연봉을 보장받은 것도 논란을 샀다. 윤 대표는 2013년 총 5억 8500만 원의 연봉을 받았다. 기본급 3억 5600만원에 성과 보너스로 2억 2800만원이 포함됐다. 2014년에도 같은 수준의 연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피치가 대표이사의 연봉을 좌지우지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 또한 고배당 정책 유지에 따른 보상으로 비춰질 수 있다.[시사포커스 / 진민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