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 월드컵 분위기 고조
안티 월드컵 분위기 고조
  • 김윤재
  • 승인 2006.06.19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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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는 지금 축구 밖에 없다
지구촌 최대의 축제인 2006 독일 월드컵이 지난 10일 화려하게 개막을 했다. 지난 한일 월드컵에서 보여준 한국 대표팀의 4강 신화 재현에 관심의 초점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13일에 열린 한국과 토고전에서는 전국적으로 150여만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지난 월드컵에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붉은 함성을 이번에도 다시 한번 보여줬다. 독일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도 우리 국민들의 붉은함성을 들었는지 전반을 1:0 으로 뒤진 채 후반을 맞았지만 이천수 선수와 안정환 선수의 릴레이 골로 2:1로 역전승을 거두면서 전국에 ‘대~한민국’의 함성이 휘슬은 울렸지만 아침까지 이어졌다. 또한 광화문 세종로에 이르는 1.5Km 구간은 그야말로 ‘월드컵 존’이다. 서울시청 정면을 비롯해 동아일보·교보생명 등 주요 빌딩 벽면은 이영표·박지성 선수 등 월드컵 출전 선수 얼굴이 그려진 초대형 걸개그림으로 도배되어 있다.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이런 풍경은 찾아 볼 수 없다. 이곳에만 오면 모르던 사람들도 월드컵의 함성을 누구나 느낄 수가 있다. 하지만 이 월드컵 존에 지난 6월6일 새벽 작은 반란이 일었다. 규모는 작지만 시민운동가들이 반(反)월드컵 스티커를 광화문 일대에 붙인 것이다. 스티커에 담긴 문구는 ‘대한민국은 지금 월드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나요?’ ‘월드컵 보러 집 나간 정치적 이성을 찾습니다’ ‘나의 열정을 이용하려는 너의 월드컵에 반대한다’ 등이었다. ◆대한민국 월드컵에 이끌리고 있다 이날 스티커 붙이기에 나선 사람들은 문화연대를 중심으로 한 시민활동가들이었다. 이들은 3개 조로 나뉘어 광화문뿐 아니라 종로· 대학로· 신촌 일대에도 스티커 7천 장을 뿌렸다. ‘게릴라 문화활동’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날 작전은 시민들에게 월드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알리는 데 목적이 있다. 시민활동가들은 인터넷에 “한국 사회는 지금 월드컵 이외의 것들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축구 이외의 것들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고 않고 있습니다. 자본의 적극적인 개입, 미디어의 광기, 월드컵을 활용하려는 정부의 의도 등 2006년 독일월드컵을 10여 일 앞둔 지금 월드컵은 한국 사회에 거대한 재앙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남겼다. 지난 5월15일 배대재 학술지원센터에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정세와 월드컵의 문화정치’라는 제목의 정책 포럼이 열렸다. 이 포럼에서 정희준 동아대 교수는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본 협상을 눈앞에 둔 한국 사회는 지금 월드컵에 끌려다니고 있다. 국민은 스포츠가 키워놓은 국가주의와 월드컵의 위력에 눌려 자유무역협정의 실상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자유무역협정에 찬성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다”라고 진단했다. 정교수는 현재의 월드컵 분위기를 “스포츠, 자본, 미디어가 형성한 삼자 동맹이 맹위를 떨치는 가운데 한국 사회는 ‘불 꺼진 사회(black-out society)가 될 위기에 처했다”라고 비판했다. 안티 월드컵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2002년과 2006년이 다르다고 말한다. 2002년은 정부나 기업에서 바람을 넣은 것이 아니라 시민 스스로 공간을 만들고 나갔지만 지금은 동질감도 없고 자발성도 없다고 그들은 잘라 말한다. 또한 최근 경기를 시청 앞에서 응원하던 사람들이 쓰레기를 치우지 않고 그냥 간 것에 대해서도 그들은 책임회피라고 말한다. 그들은 “주최가 모 기업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주최 쪽에서 치워줄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자발적인 행사가 아니기 때문에 책임감이 없다”고 주장했다. ◆자발적인 열광까지 비난하는 것 아니다 문화게릴라 활동을 벌이는 시민단체 회원들은 “월드컵 그 자체를 반대하거나, 자발적인 열정까지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월드컵 열광에 가려진 이면을 보려는 것뿐이다”라고 밝혔다. 전규찬 한국종합예술원 영상원 방송영상과 교수도 ‘한국 국민 사이에 월드컵 열풍이 불고 있다’는 전제 자체에 대해서도 생각을 달리한다. 그는 “이미 지금 한국에는 2002년과 같은 뜨거운 시민의 열정이 없다. 그럼에도 마치 외양상 월드컵 열풍이 뜨거운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방송과 기업의 부추김 때문이다”라고 진단한다. 전 교수는 “2002년에는 안티 월드컵이라는 말만 꺼내도 집단 이지메를 당할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문화연대의 게릴라 활동을 지지하는 사람이 꽤 많다. 차츰 생각이 바뀌고 있다. 그런데도 기업과 방송은 억지로 2002년으로 시계 초침을 돌리려고 한다.TV를 보면 방송 프로그램과 광고가 월드컵 일색이다. 이게 강요된 열풍이기 때문에 시민들은 억지스럽고 불편하게 느낀다”라고 말했다. 이런 월드컵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아직 대중적 흐름을 타지 못하고 있다. 6월6일 뿌려진 반월드컵 스티커들은 구청과 인근 빌딩 직원들이 금세 거둬갔다. 다음카페 등에는 ‘안티 월드컵 모임’ ‘시청에서 응원 안하기 모임’ 등이 있지만 회원 수는 1백여 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안티 월드컵 프랑스전 집회 안티 월드컵 회원들은 국가대표팀이 프랑스와 맞붙는 19일 새벽 시청앞 광장에서 대규모 길거리 응원전 속에 `안티월드컵' 집회도 열릴 예정이다. 인터넷 포털 ‘다음’의 ‘안티월드컵’ 카페(http://cafe.daum.net/antiworldcup) 회원들은 18일 자정부터 19일 새벽까지 시청앞 광장에서 집회를 계획 중이이라고 15일 밝혔다. 이 카페의 운영자 ‘hani’씨는 "월드컵에 대한 압박을 이겨내고 월드컵에 대한 과열된 분위기를 비판하기 위해 30명 가량이 참석하는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며 "뜻을 같이 하는 소규모의 사람들이 참가하는 퍼포먼스식의 집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카페 운영진 ‘lully’씨는 "단지 월드컵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넋두리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강조하며 "집회를 통한 뚜렷한 문제 제기로 우리의 주장을 이슈화하려 한다"고 집회 취지에 대해 밝혔다. 집회 참가자들은 16일께 해당경찰서에 집회신고를 한 뒤 의견 수렴을 통해 구체적인 장소와 집회 방법을 확정할 예정이다. 점점 상업적이 되간다는 비판의 지적이 있는 월드컵 거리응원. 이미 지난 토고전이 끝난 사람들은 지난 2002년의 성숙된 시민의식은 사라졌다고 말하고 있다. 과연 그들이 월드컵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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