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조직들 마약 밀거래 새로운 자금처
세계에서 마약 청정지역국으로 분류됐던 한국이 마약 밀거래의 중간지점으로 돌변하고 있다. 이유는 국내 폭력조직들이 정부가 유흥업소 등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자 새로운 자금 확보를 위해 마약 밀거래에 손을 대고 있다. 특히 일부 폭력조직들은 일본의 야쿠자 등 국제범죄조직과 연계해 활동하고 있으며 조직 보호 등을 위해 정보제공자를 살해하는 등 보복범죄도 서슴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13일 대검찰청이 발행한 ‘2005년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마약사범으로 검거된 조직폭력배는 검ㆍ경 합동단속이 대대적으로 실시됐던 2003년에는 5개파 6명에 불과했으나 2004년에는 35개파 50명, 2005년 34개파 37명으로 증가 추세를 보였다. 폭력조직이 유흥업소, 사행성 오락실, 사채업 등에 대한 검ㆍ경 집중단속으로 자금 조달이 어렵게 되자 새로운 자금줄 마련을 위해 마약 밀수ㆍ밀매 쪽으로 활동범위를 넓히는 것으로 검찰은 분석하고 있다. 또 대구와 부산 등지에서 활동하는 일부 폭력조직은 국제 범죄조직과 연계해 메스암페타민(히로뽕) 밀거래에 직접 개입했고 마약 정보제공자를 보복 살해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에 따라 검찰은 국내 폭력조직이 국제범죄조직과 연계하는 등 미국 마피아, 일본 야쿠자, 홍콩 삼합회와 같은 거대 폭력조직으로 발전될 소지가 있다고 보고 대비책 마련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
◆지능화ㆍ전문화된 조폭 마약 범죄
폭력 조직이 마약에까지 손대게 된 것은 검찰과 경찰이 유흥업, 사채업 등 전통적인 `사업' 영역 감시를 강화하자 새로운 자금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과거 국내 폭력 조직은 미국 마피아나 일본 야쿠자와 달리 마약류 범죄에 개입하는 것을 금기 사항으로 여겼지만, 운영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1999년 후반부터 마약 밀매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조직 폭력배들은 교도소 등 수용시설에서 마약류 전문밀매업자들을 모아 범죄수법과 공급 경로를 파악, 출소 후 새 조직망을 만들어 공급하는 등 쉽게 뿌리 뽑히지 않고 있다. 과거 마약 밀매 조직이 철저하게 개인대 개인의 점조직 형태로 운영을 했지만 조폭이 마약밀매에 개입하면서 마약 조직은 전문적인 마약 밀매업자와 연계를 하면서 전국적으로 마약류를 유통하는 조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조폭이 개입하면서 부작용으로 보복 범죄도 극성을 부리고 있다. 실례로 2004년 3월에 대구 지역 폭력 조직의 조직원이 히로뽕 투약 혐의로 검거되면서 검찰 수사관에게 칼을 휘두른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한 이들은 지능적이고 전문화 되게 마약밀매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판매대금을 차명 계좌로 받거나 소포와 고속버스 수화물 편으로 마약류를 배달하거나 아니면 주위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오토바이 퀵서비스를 이용, 판매자와 구매자가 철저하게 대면 접촉을 피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렇듯 지능화된 이들의 범죄 수법으로 수사 기관들은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3년에는 미국 LA 한인 사회에서 활동하던 LGKK라는 폭력조직의 두목이 미국에서 한국으로 추방된 뒤 LA에 남아있는 조직과 연계해 현지 히로뽕을 들여오다 적발된 사건도 발생했었다.
◆반입량 해외로 다시 반출
지난해 검찰이 밝힌 국내 전체 마약류 사범은 7천154명으로 전년 7천747명에 비해 7.7% 감소했고 밀조사범은 2004년에 이어 한 명도 없어 2002년 1만673명을 고비로 마약 범죄는 꾸준히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인구 10만명당 마약류 사범 수를 기준으로 10 이하면 마약청정국으로 분류가 된다. 현재 우리 나라는 6정도로 상태가 매우 좋다. 국내에서 연간 압수되는 히로뽕 양은 50kg 정도로 일본 1천kg, 미국 1천t과 비교하면 극히 적은 수치다. 하지만 국제마약 조직들은 이런 상황을 악용해 우리 나라를 경유지로 활용하고 있다. 마약 청정국의 이점을 활용해 해외 마약 조직과 연계된 범죄는 꾸준히 늘고 있어 검찰과 경찰에 비상이 걸렸다. 검찰에 따르면 2000년 이후 1kg 이상의 마약류를 국내를 거쳐 외국으로 보내려다 적발된 사건만 10건이다. 대부분 중국, 필리핀, 아프리카 등에서 만들어진 마약이 국내로 흘러들어온 경우다. 현재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검찰과 관세청 등 관련기관들은 국내로 반입되는 마약 중 3분의 1 이상이 다시 외국으로 보내지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국제 마약 조직이 우리나라를 경유지로 이용하는 까닭은 마약청정국이라는 인식 때문에 화물과 사람의 잠재적인 마약 범죄 연루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외국 조직과 연계돼 운반원으로 이용됐다가 외국 사법 당국에 체포된 한국인도 지난달 현재 117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35명은 최근 마약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국에서 검거됐다.
중국에서 밀반입된 히로뽕은 2003년 22건에 양은 5.7kg이 적발된 뒤 2004년 16건 6kg, 2005년 40건 10.8kg 등 꾸준히 반입량이 늘고 있다. 신종 마약류로 분류되는 야바, MDMA, LSD,2C-B, 엑스터시도 태국, 캐나다, 중국에서 해외 유학생과 마약 조직을 통해 밀반입되고 있지만 실제 정확한 반입량은 통계가 없는 상태다. 검찰은 "국제 마약조직이 국내를 경유하게 되면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간접적 마약 공급국가로 인식되면서 국가이미지 실추, 외국 세관 검색 강화로 국가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제 공조 강화
검찰은 실제 마약밀매 조직 검거를 투약자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대형 공급책은 대부분 해외에 거주하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해외 공조를 강화할 방침이다. 그동안 국내에서 개최한 마약퇴치국제협력회의를 회원국가간에 순차적으로 개최하고, 국제회의시 양자 회담도 추진하기로 하는 등 국제공조에 힘을 쏟고 있다. 검찰은 중국 마약 수사기관인 금독국(禁毒局) 국장과 올 4월 핫라인을 체결했다. 주요 마약 공급 국가인 중국과 태국, 필리핀, 동남아시아 등지의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 국가 수사기관에 마약 담당 직원들도 파견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이미 중국에는 1명이 파견됐고, 올 하반기에는 미국 마약단속국(DEA)에도 2명의 직원을 파견하기로 돼있다.
한편 대검찰청은 14일부터 사흘간 부산에서 아ㆍ태 지역과 유럽의 16개국과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 등 2개 국제기구 관계자 130여명이 참가하는 제16차 마약퇴치국제협력회의(ADLOMICO)를 개최한다. 정상명 검찰총장은 개회사를 통해 "국경을 초월해 확산되는 마약 교류 실태를 감안할 때 `마약 없는 지구촌 건설'을 위해서는 회원국 간의 긴밀한 상호 협조체제를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고 강조할 계획이다. 이 회의에는 아ㆍ태지역 및 유럽지역 16개국과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 인터폴(ICPO)의 마약관련 실무자 130여명이 참가한다. 대검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마약퇴치의 날'(6.26)을 기념해 1990년 첫 회의를 개최한 이후 매년 6월 회의를 열고 있다.
나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몸과 생명을 망가트리는 마약 밀거래에서 이제 우리나라도 안전 할 수가 없게 됐다. 조그만 점조직 형태에서 대형화 되고 있는 마약 조직들과 마약청정국이라는 국제적 명성을 악용한 이런 밀거래가 뿌리 뽑히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국가 이미지에 큰 상처를 입게 된다. 관계당국은 검거에 어려움만을 호소 할 것이 아니라 시급한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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