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홍대 걷고 싶은 거리 주변에 건물을 소유한 일부 건물주들이 세입자들을 권리금도 안 주고 빈손으로 쫓아내는 것도 모자라 과태료 대납까지 요구해서 물의를 빚고 있다.
홍대 주변은 1990년대 말 까지만 해도 미술학원들만 간간이 모여 있던 곳이었다. 그런 평범했던 곳이 언제부턴가 인디밴드들과 실험예술, 독특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냈다. 덕분에 홍대는 지난 20여 년 동안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져 공존하면서 ‘예술의 거리’, 또는 ‘젋은이들의 거리’라 불렸다.
그런데 홍대 주변에 사람들이 몰리게 되자 거리는 당연히 상업적으로 변했고 건물 임대료도 급격히 치솟았다. 덕분에 현재 홍대 주변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가게와 공연장만이 남았다.
이렇게 급속도로 거대해진 상권을 보유한 홍대 주변에서 언제부턴가 이상한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건물을 가지고 있는 일부 건물주들은 세입자의 임대기간이 만료되면 계약 연장을 하지 않거나 임대료 2배 이상 올리기, 또는 건물주의 가족 등이 직접 운영한다면서 세입자의 보증금마저 빼앗아 빈손으로 쫓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세입자로부터 뜯어낸 권리금은 건물주가 부동산 중계업자와 짜고 각각 8대 2로 나눠 갖는다고 한다. 건물주와 부동산 중계업자의 이러한 검은 커넥션은 현재 법에 저촉되지 않기 때문에 그 피해는 고스란히 영세 세입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이러한 건물주의 횡포 때문에 홍대에서 유명세를 탔지만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으로 이전한 가게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한때 홍대에서 유명했으나 지금은 연희동으로 이전한 이탈리안 음식점 ‘제니스까페’의 경우가 건물주의 횡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제니스까페’는 홍대에서 약 12년을 버틴 유명식당이었지만, 이곳 사정 역시 다른 세입자와 다를 바가 없었다. 홍대가 상업적으로 급격히 변하자 건물주는 임대료를 한꺼번에 2배로 올리기도 했고, 가게를 옮길 때마다 권리금과 시설투자비를 못 받기도 했다.
‘제니스까페’의 사연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해 12월 서교동 제니스까페 정문에 “건물주의 무소불위의 소유권 행사로 이곳을 떠나게 되었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SNS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부터다.
안내문에 따르면 “(건물주의) 동생이 직접 여기서 식당을 할 것이다. 이 건물의 모든 시설, 설비, 영업권은 모두 (건물주) 본인의 것이다. (건물주) 본인이 재계약 안 하면 당신들은 그냥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건물주의 발언이 적혀있다.
이에 제니스카페측은 곧바로 영업을 그만두려고 했으나 건물주가 “보증금을 당장 줄 수 없고 동생도 아직 오픈 준비가 안 되었으니 원래 계약일인 2월 말까지 채우고 나가야 한다고” 했다. 결국 제니스카페측은 “12월까지만 영업하고 1~2월은 제니스와 함께 했던 친구들이 펍을 운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제니스카페 측은 현재 연희동에서 빵집과 함께 식당을 운영하고 있으며, 서교동에 있는 ‘제니스카페’는 지난 3월부터 건물주의 동생이 운영하고 있다.
일부 건물주들은 건물에 필수적으로 마련해야 되는 주차장에 불법구조물을 증축해 가게를 세놓은 것도 확인되었다. 게다가 이런 곳을 빌려 영업하던 세입자가 단속에 적발되면, 과태료는 건물주가 아닌 100% 세입자가 물어야 한다.

서교동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A모씨는 모 건물 주차장에 지붕이 덮여있는 것을 보고 이를 정상적인 가게로 잘 못 알고 건물주와 계약해서 영업을 시작했다.
이때 A씨는 건물주와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120만원으로 계약하고, 부대비용인 권리금 500만원과 시설투자비 2000여만원을 본인 돈으로 지불했다.
구청 위생과 역시 A씨의 식당에 정상적인 영업허가를 내줬다.
그러던 어느 날, 열심히 식당을 운영하던 A씨에게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구청 도시경관과로부터 주차장에서 영업을 한다는 이유로 200만원의 과태료 납부 고지서를 받았기 때문이다. 원래 이 과태료는 건물주가 지불해야 되지만, 건물주는 오히려 이를 세입자인 A씨에게 떠넘겼다.
게다가 건물주는 과태료를 떠넘긴 것도 모자라 “월세를 120만원에서 150만원으로 인상한다”며 “월세를 못 내겠다면 당장 가게를 빼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결국 A씨는 구청으로부터 벌금 및 주차장 지붕 무단증축에 대해 원상복구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A씨는 “계약하기 전 주차장에 지붕이 설치되어 있어서 원래 있던 것 인줄 알았다”며 “갑자기 임대료가 오른 것도 억울한데 자신이 왜 건물주의 과태료까지 대납해야 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문제는 현재 홍대 걷고 싶은 길 주변에는 A씨의 가게처럼 주차장에서 불법영업을 하고 있는 곳들이 한두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렇게 건물이 아닌 주차장에 가게를 세놓는 일부 건물주는 세입자와 계약할 때 구청건축과, 도시경관과, 그리고 교통지도과에 위법으로 적발되면 모든 책임은 건물주가 아니라 세입자가 진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올리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구청 측의 시정조치 및 과태료도 전부 세입자가 부담해야 되기 때문에 한푼이 아쉬운 영세상인들에게는 큰 장애물이라 할 수 있다.
건물주가 이런 방식으로 주차장을 임대해 음성적인 소득을 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무신고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행정당국에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주차장 임대료는 고스란히 건물주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형국이다.

이런 불법적인 방식으로 소득을 취하고 있는 건물주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역시 이런 주차장에 영업허가를 내주는 구청에도 책임이 있다. 한쪽에서는 주차장에 영업허가를 내주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를 주차장법 위반이라며 단속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건물주의 횡포를 막기 위해 세입자가 새 세입자로부터 권리금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건물주가 협력할 의무를 규정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지난 5월 13일부터 시행중이다.
하지만 아직도 대다수의 상인들은 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 할 수 있는 ▲ 환산보증금 적용 범위 확대 ▲ 재건축 시 퇴거료 보상 ▲ 충분한 영업기간 보장(5년에서 10년으로) 등이 포함되지 못했다. [시사포커스 / 민경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