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처럼 도시락 가지고 가야 하나...
CJ가 단체급식을 해오던 서울 14곳, 인천 8곳, 경기 1곳 등 전국 23개교 학생 1,500여명이 구토와 설사 등의 증세를 보이는 등 사상 최악의 학교급식 집단 식중독 사건이 발생했다.
교육당국은 22일 이번에 식중독 사고가 발생한 학교를 포함해 CJ푸드시스템이 급식하고 있는 전국 68개교에 23일부터 급식을 중지토록 긴급 명령을 내렸다. CJ측도 사건의 심각성을 알고 자신들이 급식을 해온 23곳에 대해서도 자체로 급식을 중지키로 해 급식 중지 학교는 총 91곳에 달한다. 이에 따라 이들 학교 학생 9만여명(추정)이 도시락 지참하는 등 불편을 겪게 됐다. 서울지역의 경우 전날 오후부터 CJ푸드시스템이 단체 급식하는 11개 중·고교에서 메스꺼움과 구토, 발열, 복통, 설사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집단 발생했다. 지난 16일에도 서울지역의 3개 중·고교에서 집단 식중독으로 추정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또 인천의 8개 학교, 경기 용인의 1개 학교에서도 식중독으로 추정되는 급식사고가 일어나 학교 급식 위생의 문제가 사회적 문재로 대두되고 있다.
◆관계 당국 초기 대응 늦어
교육인적자원부의 학교급식실시 지침에 따르면 일선 학교에서 식중독으로 의심되는 설사 환자가 2명 이상 발생하면 관할 교육청과 보건소에 보고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보고를 받은 교육청은 다음 날부터 해당 학교의 급식을 중단시키고 보건소에 음용수, 음식물 등에 대한 검출 및 역학검사를 요청해야 한다. 16일 오후 3시 서울 노원구 염광중·고교와 염광여자정보교육고에서 학생 25명이 식중독으로 의심되는 증상을 보이자 학교 측은 서울시교육청과 노원구 보건소에 환자 발생 사실을 보고했다. 시 교육청은 곧바로 직원 2명을 파견해 보건소의 역학검사에 필요한 행정 절차를 지원하고 17일부터 3개교의 급식을 중단시켰다. 교육부에도 이 사실을 보고했다. 하지만 시 교육청은 급식업체인 CJ푸드시스템에 재발 방지를 위한 시정명령을 내리지 않았고 식재료의 유통망이나 오염 원인을 파악하는 데도 소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해당 보건소는 급식사고를 19일에야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보고했다. 교육청 관계자는 “열흘 정도 걸리는 역학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 식중독이 학교급식 때문인지 식수 등에 의한 것인지 확실치 않은 상태에서 시정명령을 내릴 경우 더 큰 혼란이 발생한다”고 해명했다. 이후 21일 오전부터 서울의 숭의여중·고교, 중앙여중·고교, 경복여고, 경복여자정산고 등 6개교에서 식중독 발생 사실을 시 교육청에 보고했다. 숭의여중·고교는 123명, 경복여고와 경복여자정산고는 63명이나 됐고 “전날 급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는 것이 해당 학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사안이 이렇게 되자 시 교육청은 뒤늦게 보건소에 역학검사를 의뢰하고 이들 학교의 급식을 중지시켰다. 21일 밤 시 교육청은 CJ푸드시스템이 급식을 제공하는 나머지 31개 학교장에게 전화를 걸어 식중독 의심 증세를 보이는 학생이 있으면 모두 보고하도록 조치했다. 이튿날인 22일 아침부터 서문여중·고교 등 5개교에서 집단식중독 보고가 속속 들어오자 시 교육청은 오전 11시 부랴부랴 해당 업체가 급식을 제공하는 모든 학교에 급식 중단을 명령했다.
◆허술한 위생관리ㆍ지도감독
현행 학교급식의 문제점은 ▲ 음식재료 생산.유통단계 안전성 미흡 ▲ 학교단위 위생관리 소홀 ▲ 급식시설의 위생 미흡 ▲ 위탁급식에 대한 지도.감독 소홀 등 구조적 미비점으로 요약된다. 급식 업체가 제공하는 음식재료를 보면 수입품이 국산으로, 또 값싼 음식재료가 유명회사 제품으로 둔갑하 고 대규모 위탁급식 업체에는 위생지도. 감독권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는 등 불량 식재료 유통을 막는 데 한계가 있다. 또 단위학교에는 '식품 위해요소 중점관리기준(HACCP)'과 ' 학교급식 위생관리 지침서'를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지키는 학교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한정된 예산으로 '학교급식 확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급식시설의 위생적 측면을 충실하게 고려하지 않고 최소한의 공간과 설비만 갖추려는 경향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또 학교들이 위탁급식 업체에 음식재료 구입, 검수, 조리 등 모든 급식작업을 아예 전담토록 하고 지도. 감독을 소홀히 하는 점과 일부 위탁업체가 영리 추구에 집착해 위생관리를 소홀히 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원인규명, 처벌도 '부실'
급식사고가 빈발하고 있지만 사고원인을 규명하거나 적발을 한다해도 처벌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식중독 원인균 규명이나 오염경로를 밝히는데 실패하면서 대책 마련에도 어려움 을 겪고 있어 유사 식중독 발병이 반복되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다. 감독기관의 지도.단속이나 행정처분에도 문제가 적지 않다.
학교급식은 해당 학교와 위탁급식 업체간 계약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식중독 사고가 발생하면 대형 사고가 아닌 이상 해당학교는 계약 해지 외에 별다른 제재 수단이 없다. 또 업소 단속은 교육청이나 식품의약안전청이 맡지만 영업정지나 과태료 부과 등 행정처분은 관할 구청이 맡는 탓에 처분 결과에 대한 정보공유나 사후 감독이 힘든 것은 물론 처벌도 `솜방망이'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행정처분 권한을 가진 관할구청 등 지방자치단체의 일부 민선 단체장들이 주민의 눈치를 보느라 지역 내 고용비중 등이 큰 업체에 대해서는 `봐주기'식의 처벌을 하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들 수 있다.
더구나 허가취소나 영업정지를 받은 급식업체가 수개월 후 영업을 재개하는가 하면 관할당국이 영업정지 처분을 과징금으로 전환해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학부모들 “도시락파문 생생한데…”
학생과 학부모들은 대기업과 교육 당국의 무책임한 태도에 분통을 터뜨렸다. 경기 용인시 홍천고 학부모 김모(48·여) 씨는 “대기업이 납품한다고 해서 믿고 맡겼는데 어떻게 했기에 이런 사고가 났느냐”며 “교육청과 학교의 더욱 철저한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의 또 다른 학부모도 “이번에 문제를 일으킨 CJ푸드시스템의 경우 직접 음식을 만들지 않고 대부분 하청을 준 뒤 자기 업체의 이름만 달아 공급해 오다 사고를 일으켰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며 “당국에서 진상조사를 벌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현경 참교육학부모회 인천지부장은 “사고가 일어난 학교는 대부분 위탁급식을 하고 업체는 영리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위생관리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며 “교육 당국에도 공동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학부모들은 사고 자체를 덮으려 한점과 늦장대응을 한 학교의 자세에도 불만을 터뜨렸다. 자녀가 인천 청량중학교에 다니는 김모(40) 씨는 “어제 점심을 먹고 집에 돌아온 아이가 밤새 설사와 구토, 복통 증세를 호소해 병원에 데려갔다”며 “학교에 항의전화를 했더니 다른 데 알리지 말고 조용하게 있어 달라고 했다”며 감추기에만 급급한 학교에 분통을 터뜨렸다. 다른 학부모 윤모(43) 씨는 “어제 아이가 점심을 먹은 뒤 학교 보건실에 구토와 복통 증세를 호소했더니 소화제를 줬다”며 “오늘에서야 ‘내일부터 급식을 하지 않으니 도시락을 싸오라’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말했다.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 사이트에는 누리꾼의 비판이 이어졌다. ID ‘꿈을 찾는 사람’은 “지난해 만두파동에 이어 대형 사고가 터졌다”며 “음식을 가지고 장난치는 기업은 과감하게 매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탁급식학교서 사고 빈발
일반적으로 급식을 외부업체에 맡기는 위탁급식 학교의 식중독 발생률이 학교측이 직접 급식을 관장하는 직영급식 학교보다 높다는 게 교육계의 정설이다. 이번에 서울과 인천에서 발생한 대규모 집단 급식사고도 모두 위탁급식 학교이다. 교육부 집계결과를 보면 2004년부터 2005년 7월말까지 학교급식으로 인한 식중독 사고는 모두 68건으로 7천615명의 환자가 발생했는데 이 중 직영급식 학교에서 49건 5천608명의 환자가 발생, 위탁급식 학교의 19건 2천7명보다 많았다. 그러나 전체 학교의 급식 현황을 보면 직영급식 학교가 8천793개교로 위탁급식 학교(1천793개교)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실제 식중독 발생률은 위탁급식 학교가 높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번 사태와 관련, 일부 학부모들 사이에는 교육기관이 집단 급식사고를 은폐하려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시내에서 급식사고가 지난 16일 처음 발생했는데 일주일 뒤에야 급식중지 명령을 내린 것은 `사회적 파장을 우려해 급식사고를 숨기려 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CJ푸드시스템이 급식을 위탁운영해온 학교 3곳에서 16일 집단 급식사고가 처음 발생한데 이어 21일 9개 학교에서, 22일에는 2개 학교에서 급식사고가 잇따랐다.
이와 관련, 한 학부모는 "아이들이 먹는 식사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는데도 불구하고 교육당국에서 이런 식으로 늑장 대응을 하면 어떻게 공교육을 신뢰하겠느냐"며 "철저한 진상규명과 함께 잘못을 저지른 관련자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할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에 대해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는 "어제 학교에서 집단 급식사고가 발생했지만 이를 인지한 것은 어제 늦은 밤이었다. 오늘 오전에 해당 학교에 급식중지 명령 공문을 보내는 등 나름대로 신속히 대처했다"며 `늑장 대응' 지적을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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