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한 북한은 6일 기자회견을 갖고 한반도 정세악화의 책임을 미국으로 돌리며 추가 핵실험과 제2 한국전쟁을 거론하는 등 대북 제재 조치 중인 미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국제기구국 부국장으로 알려진 리동일 전 유엔대표부 차석대사는 이날 ARF 외교장관회의가 열린 쿠알라룸푸르 푸트라세계무역센터(PWTC)에서 자신을 북한 리수용 외무상의 대변인이라고 밝히며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 ARF 외교장관회의에서의 리수용 외무상 연설내용을 발표했다.
리 전 차석대사는 리 외무상의 연설문을 통해 “미국은 우리 경제를 질식시키기 위한 조치에 의존하면서 비합리적인 전제조건으로 협상과 대화를 피해가고 있다”면서 “미국의 전략적 목표는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 제거”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역내 헤게모니 회복을 위해 북한을 대규모 군비증강을 동반한 군사동맹 강화 구실로 계속 삼는다면 필연적으로 제2차 한국전쟁 발발로 이어질 것”이라고 위협하며 미국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그러면서 리 전 차석대사는 “우리는 미국이 어떤 선택을 하든 어떤 전쟁에도 맞설 힘을 갖추고 있다”면서 “어떤 전쟁이든 전쟁은 하나의 결과, 조국통일을 가져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미국이 대규모 도발적이고 공세적인 군사훈련을 멈추기 위해 대담하게 정책을 바꾸면 미국에서 우려하는 모든 이슈가 해결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미국이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라고 관계개선의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또 연설내용 낭독 후 이어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을 통해 리 전 차석대사는 북한의 입장을 밝혔는데 추가(4차) 핵실험 가능성과 관련, “미국의 태도에 달려있다”며 “핵 재앙으로부터 주권과 인민을 보호하기 위한 자위적 방안을 갖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고 미국을 압박했다.
리 전 차석대사는 오는 10월10일 노동당 창건일을 전후로 북측이 장거리 로켓(미사일) 발사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주권 사항”이라며 “이미 과학, 경제적 발전을 위해 인공위성 발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혀왔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인공위성은 국제사회의 축복 속에서 주권 존엄과 국가적 자긍심으로 계속 발사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 전 차석대사는 북한의 경제·핵 병진노선과 관련해선 “올바른 길이라는 것이 증명됐다”면서 북한의 경제도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정책으로 회복되고 있다며 “전 세계가 김정은 위원장의 역동적인 리더십을 목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국제회의 중 기자회견의 형식을 빌려 공세적 발언으로 대미 압박을 가하는 북한의 이례적인 태도는 최근 미국의 이란 핵협상 타결과 미국과 쿠바간 국교 재개 등 국제환경이 북한에 불리하게 흘러가며 향후 대북 제재가 심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데에 따른 극단적 반응으로 풀이된다.
한편 이번 기자회견에 앞서 이날 오전 리 외무상은 남북 외교장관 회담 가능성과 관련해 “시간도 많고 할 일도 많은데 조급해하지 마시오”라고 해 당장은 아니어도 대화 여지는 엿보였으며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긍정적 입장이었지만 ARF 회의장에서 윤 장관과 마주친 북측이 줄곧 대화를 피함으로써 이번 강경 발언이 어느 정도 예견되고 있었다.[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