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의 목함 지뢰 도발 사건을 계기로 정부의 안보 무능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정치권에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야당 뿐 아니라 여당 내에서조차 비주류를 중심으로 비판론이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정부와 친박계는 이번 사태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군 수뇌부에 있다는 입장이지만, 야당과 여당 비주류 일각에서는 안보정책에 허술한 정부 또한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비판하고 있다. 보수정권이 심각한 안보 무능 논란에 처하게 된 상황이다.
◆유승민 “정신 나간 것 아니냐” 격분
국회법 개정 거부권 정국에서 확실한 反朴-비주류 대표주자로 부상한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청와대의 컨트롤타워 부재 문제를 강하게 비판했다. 북한의 목함 지뢰 도발이 있었는데도, 다음 날 우리정부는 북한에 남북고위급 회담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유 전 원내대표는 이와 관련, “북한 목함 지뢰 사건이 난 다음날인 8월 5일, 대통령께서는 경원선 기공식에 참석하고, 이희호 여사는 평양을 가고, 또 우리정부는 통일부장관 명의로 남북고위급회담을 제안하는 등 이 세 가지 사건이 함께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유 전 원내대표는 그러면서 “그 전날 지뢰 사고가 터졌는데, 그 다음날 이런 사건들이 있었다”며 “또, 군의 현장 조사는 8월 6일에 이뤄진다. 이거 이상한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유 전 원내대표의 지적에 한민구 국방장관은 “사고가 나고 현지 군단 합동조사단이 8월 4일과 5일 이틀간 조사를 했다”며 “8월 4일 늦게 북한 지뢰도발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확인했고 보고도 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한 장관의 이 같은 답변에 유 전 원내대표는 “그런데 왜 통일부 장관은 (8월 5일에) 남북고위급회담을 제안했느냐”며 “군과 통일부는 서로 전화 한통도 안 하냐”고 강하게 쏘아붙였다.
그러면서 “그 전날 북한이 지뢰 도발을 해서 우리군 하사 두 분이 중상을 입었는데도 통일부 장관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남북회담을 제안하고, 이거 정신 나간 것 아니냐”고 강하게 질타했다. 이에, 한 장관은 “상부에 보고 드렸는데 정부차원에서는 북한에 대한 대화와 압박을 병행한다는 차원에서 통일부에서 그런 계획된 조치를 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유 전 원내대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청와대를 향해서도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냈다. 유 전 원내대표는 “청와대 NSC(국가안전보장회의)라는 사람들은 도대체 뭘 하는 사람들이냐”며 “도발 사실을 알았으면 그 즉시 이 사건의 의미에 대해 논의를 해야지, 사건 발생 나흘만인 8월 8일에서야 NSC가 열렸다. 보복 시점도 다 놓치게 됐다”고 날 세워 비난했다.
유 전 원내대표는 덧붙여 군이 보복 차원에서 대북심리전 방송을 재개한 것과 관련해서도 “국방부에서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겠다’고 했는데, 확성기 방송 재개가 혹독한 대가의 전부냐”며 “확성기 방송 재개를 혹독한 대가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있겠냐”고 꼬집었다.
같은 날 심재철 중진 의원도 오전에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정부 비판을 쏟아냈다. 심 의원은 특히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도 정면 비판해 주목됐다. 심 의원은 이와 관련, “지뢰 도발이 4일 아침인데, 정부는 5일 통일부 장관이 고위급 회담을 제의했다”며 “지뢰 도발이 북한 소행인 것은 금세 아는데 강력 대응은 둘째 치고 당하고도 대화하자고 손을 내밀 수 있냐”고 황당해 했다.
그러면서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열렸지만, 추가 도발에 대비한다는 원론에 ‘도발은 도발대로, 대화는 대화대로’라는 하나마나한 얘기를 했다”고 질타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도 심 의원은 “중상당한 사실은 10일 공개하면서 같은 날 통수권자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표준시 변경만 비판했다”며 “엄중하게 대응해야 할 때 왜 이렇게 원칙 없는 행보를 보였는지 알 수 없다”고 꼬집었다.
심 의원은 “대화의 끈을 놓쳐서는 안 되지만 물러터진 대응으로는 북한의 도발을 막을 수 없다”면서 “정부와 군은 지난 5월부터 비무장지대(DMZ)에서 지뢰를 묻는 등 이상행동에 대한 잇단 첩보를 입수하고도 제대로 대응 못한 책임을 철저히 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철책통문 앞에 지뢰를 묻은 움직임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하는데, 경계에 시계확보를 못한 것은 변명거리가 안 된다”며 “(북한의 도발은) 전쟁범죄 행위다.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필요할 땐 응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정부는 북이 두려워한다는 확성기 방송을 더 늘리고 전단 살포를 재기하는 등 다각적 응징책을 강구해야 한다”면서 “부상당한 두 병사에게는 심심한 위로의 뜻을 전하고 쾌유를 간절히 빈다. 침착하게 대응하며 전우애를 보여준 다른 병사에게도 박수를 보낸다”고 덧붙여 말했다.

◆野 “코앞에 지뢰 설치하는데도 까맣게 몰랐다니…”
정부의 대응을 놓고 이 같이 여당 내에서조차 비판론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새정치민주연합은 반사적으로 ‘안보 유능 정당’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행보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12일 최고위원회의는 이런 맥락에서 임진각 옥상 전망대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표는 “6.15와 10.4선언으로 성큼 다가왔던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의 기반들이 갈수록 무너지고 있다”며 “대화 대신 대결, 포용 대신 증오가 더욱 커지고 있다. 북한이 군사분계선 남쪽에 의도적으로 지뢰를 매설해 인명 사고를 일으킨 것은 명백한 군사적 도발로써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북한 당국을 향해 “즉각 사과하고, 그 진상을 철저히 밝혀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응당한 조치를 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 대표는 곧바로 “안보가 뚫리면 평화도 뚫린다”면서 “노크 귀순, 대기 귀순, 이제는 철책이 뚫리는 일까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다시는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올해는 광복 70년, 분단 70년의 역사적인 해이지만 평화도 안보도 외교도 최악”이라며 “한마디로 정부의 무능이 너무하다.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선열들에게 부끄럽기 짝이 없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아울러, 문 대표는 안보 문제와 더불어 외교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정말 심각한 것은 외교”라면서 “우리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왕좌왕할 때 북한의 중국의존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고, 일본은 다시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의 국익을 중심에 놓는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얼마 전까지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 가입을 놓고 갈팡질팡 하더니 이제는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여부를 두고 정부가 갈팡질팡하고 있다. 외교 전략의 부재를 실감한다”고 꼬집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이번 사건은 경계가 실패한 사건이고, 컨트롤타워 기능 부재가 드러난 사건이기도 하다”며 “군 발표에 따르면, 지뢰폭발은 4일 오전 7시 35분이다. 북한 관련성을 의심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당국은 다음날 오전 11시 30분 북한의 고위급 회담을 제안한 것이 참 답답하다”고 꼬집었다.
또, “청와대 안보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의문도 갖게 된다”면서 “군 출신으로 짜여진 안보통일 국방컨트롤타워는 남북대화에는 관심도 없지만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응에도 무기력해 보인다”고 일갈했다.
이 원내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도 “폭발사고가 있은 다음날인 5일, 강원도 철원을 찾아서 DMZ를 ‘드리밍 메이킹 존’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DMZ의 다른 이름을 불렀다”며 “이 순간 무척 공허해 보인다. 박근혜 정부가 진정 남북한 대화와 협력을 원한다면 이 사건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길 촉구한다”고 덧붙여 말했다.
전병헌 최고위원도 북한의 도발을 강력하게 규탄하면서도 “하지만 북한 도발에 대한 규탄이 국방부와 우리 군의 경계실종을 결코 덮을 수는 없다”며 “‘노크 귀순’. ‘대기 귀순’에 이어 이번 지뢰 사건까지 결코 뚫려서는 안 되는 철책선이 지속적으로 뚫려버렸다”고 질타했다.
전 최고위원은 “철책선은 왜 지키고 있는 것인가. 무엇을 지키고 있는가.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가 되더라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지 못한 것이 군대의 기본 중의 기본이고 FM 중에 FM 아니냐”며 “적이 코앞에 지뢰를 설치하는데도 까맣게 몰랐다는 것은 어떤 말로도 변명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사각지대 운운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은 오히려 애처롭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전 최고위원은 덧붙여 “박근혜 정권은 틈만 나면 안보장사에 열을 올리지만 이번 사건으로 정말로 안보에 무능한 정권임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며 “더 이상 말로만 안보를 외치는 안보장사 수준이 아니라,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실제적인 안보를 이뤄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영식 최고위원도 “북한의 도발행위와는 별개로, 그간 우리 군은 허술하고 안일한 경계태세, 뒷북대응으로 국민들의 우려를 자아냈던 바를 다시 한 번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더 나아가 이 정부의 안보 무능에 대한 국민적 비판 또한 계속적으로 있어왔다. 이번 도발사건을 계기로 차제에 단호한 대응과 함께 튼튼한 경계 태세를 토대로, 다시는 물 셀 틈 없는 철책 경계와 안보태세를 갖춰줄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여 말했다.
◆친박 “책임질 사람은 북한군 지휘부”
한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우리 군의 경계태세에 문제가 있었다는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와 관련, 김 대표는 11일 국회 본회의 직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 군 당국도 경계 태세 등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책임질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내 비주류 및 야당의 비판과 같은 입장을 가진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이에 대해 <조선일보>와 통화에서 “야당의 주장에 동조한 것이 아니라 원론 수준에서 답한 것”이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친박 측에서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친박계 핵심이자 청와대 정무특보이기도 한 윤상현 의원은 이와 관련, 당 출입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책임을 져야하는 사람은 북한군 지휘부이고, 우리는 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책임질 사람은 책임져야 한다’는 김무성 대표 발언에 정면 반박한 것이다.
윤상현 의원은 그러면서 “지금 우리 군에게 주어진 이행임무는 책임이 아닌 응징”이라며 “북한군의 지뢰매설은 아군의 경계 실패가 아닌 적군의 계획적 살상행위다. 그것이 전투현장의 엄연한 실상”이라고 강조했다.
또, “적군이 아군을 공격했을 때에는 그 적군을 겨냥해야지 아군 지휘부를 겨냥하는 것은 결코 옳은 판단이 아니다”며 “이러한 표적 오인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로 즉시 바로 잡혀져야 한다”고 강한 유감의 뜻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