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은 여당 재집권의 보증수표?
개헌은 여당 재집권의 보증수표?
  • 정흥진
  • 승인 2006.06.30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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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화두가 개헌론으로 옮겨가고 있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정치권에는 개헌론이 주요 화두로 불거지고 있다. 물론,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이 이전부터 정치권에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최근 임채정 신임 국회의장이 취임을 하고부터는 더욱 급물살을 타게 된 분위기다. 임 의장이 취임사에서 “21세기에 맞는 헌법의 내용을 연구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그러한 준비로 국회 내에 ‘개헌연구기구’의 설치 필요성을 거론했기 때문이다. 그 후 여야는 개헌론을 놓고 팽팽한 대치 국면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개헌론을 둘러싼 의견들은 매우 다양하다. 여야가 한 목소리를 내며 개헌을 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하기도 하지만, 또 어느 선에서는 상반된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즉, “현 정권 내에서 개헌을 해야 한다”는 주장과 “개헌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시기적으로 지금은 적절치 않다”는 주장 간의 대립이다. 개헌론은 사학법 재개정안 문제 이상으로 중요한 사안이기에 이들의 대립은 또 다른 정국 파행의 어두운 그림자를 품고 있다. 그렇기에 다소 어려운 문제이기는 하지만 국민들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만 하는 이유가 되고 있는 것이다. ◈왜 개헌이 필요한가? 2007년 12월 대선에 이어 2008년 4월에 치러질 총선. 불과 4개월 차이를 두고 선거를 치른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꼭 따로 분리해서 선거를 치러야만 할 필요성이 있는가?’ 하는 회의를 품게 만든다. 게다가 12월 대선 이후 대통령 취임까지 2개월가량의 시간이 더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나라는 온통 선거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결국 현행 헌법대로라면 대선 준비를 위해 2007년 10월께부터 총선이 치러지는 2008년 4월까지는 온통 선거 정국이 될 수밖에 없는 그림이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그림은 아무 때나 그려지는 것이 아니다. 현행 헌법상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가 각각 5년과 4년으로 서로 달라 이 같은 상황은 20년 만에야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가오는 두 번의 선거는 그나마 가깝게 맞물려 있어 다른 때보다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행이라 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현행 헌법을 토대로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그리고 지방선거까지 모두 뿔뿔이 흩어져 있을 경우를 생각해본다면 몇 년간은 해마다 대형 선거를 치르기 위해 정치권뿐 아니라 국민들까지 홍역을 치러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과 총선은 시기 차이가 크지 않아 선거 정국이 길게 늘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다행이라 하겠다. 조금씩 오래 아픈 것보다 한 번 앓고 일어나서 한 동안 건강하게 지내는 것이 좋다는 것은 누가 생각하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개헌 논의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처럼 대선과 총선이 치러지는 시기문제뿐 아니라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 현행 헌법 조항들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하며 개헌 논의에 불을 붙이고 있다. 그것은 여야를 막론하고 인정하고 있는 문제점이기에 정치권에서 개헌 필요성에 대한 입장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아무런 문제없이 임 의장의 뜻대로 개헌논의를 하면 그만이지 않겠는가 싶지만, 사실은 또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이야기다. 개헌론 속에 또 다른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여당 중심으로 번지고 있는 개헌론에 대해 “개헌의 필요성은 공감하되 현 시점에서는 아니다”는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대선이 불과 1년 6개월가량밖에 남아 있지 않아 개헌이 대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결국 정치권에서 개헌논의는 “쇠뿔도 단김에 빼자”는 정부여당의 입장과 “지금은 아니다”는 한나라당의 입장 차이로 또 다시 갈등 정국을 예고하고 있다.
◈개헌은 바로 지금이 적기다 개헌 논의를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20년 만에 맞물려 치러지는 이번 대선과 총선이 개헌을 하는데 최대 적기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또 다시 20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임 의장의 경우 개헌의 필요성을 설명하며 “현행 헌법 조항 가운데는 논쟁거리가 될 만한 불편한 대목들이 있다”는 주장을 하고 “현행 헌법은 여러 가지로 불합리 하며, 과거 권위정권 시절 불완전한 타협의 산물로 급하게 만들어진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임 의장은 “지금은 민주화가 이뤄진 만큼 달라진 사회 환경에 걸맞게 인권분야와 경제조항, 영토조항, 정보기본권과 같은 새로운 기본권 신설 등 개헌 연구에 착수할 시점이 됐다”고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또, 지난 26일 열린우리당 이상경 의원이 주최한 ‘바람직한 개헌의 방법과 방향’ 세미나에 참석한 정치학자 및 헌법학자들은 대부분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동의하며 “소폭 개헌을 먼저하고 대폭 개헌은 장기적 과제로 돌리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어떤 형식으로든 현 정권 내에서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모으기도 했다. 특히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헌법구조 상으로는 내각책임제, 이원집정부제 요소가 혼재되어 있는데 현실적으로는 강력한 대통령제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대통령과 의회가 충돌할 수밖에 없다”며 “이는 어느 정치집단에 유리하느냐 마느냐를 떠난 문제”라는 데에 인식을 같이하며 개헌 논의에 대해 찬성을 하기도 했다. 발제자로 나섰던 박명림 연세대 교수의 경우 국회에 정당 대표와 민간학자, 시민·직능단체 대표 등이 참여하는 ‘헌법연구회’를 결성하고, 내년 초까지 여야 합의로 ‘합동 헌법개정협의회’를 구성하자는 구상을 내놓으며 “내년 안에 여야가 개헌안에 대해 합의하고, 이를 국민투표로 통과시킨 뒤, 2007년 12월에 대통령-의회 동시 선거를 하자”고 주장했다. 조정관 전남대 교수 또한 “대선과 총선을 한꺼번에 치르면 선거비용도 줄일 수 있고, 무엇보다 행정부와 국회가 단일권력으로 통합돼 집권 초기에 대단히 효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다”며 “대통령제를 유지한다면 비용이 크지 않을 수 있다”고 조기개헌 쪽에 손을 들기도 했다. ◈개헌은 찬성, 그러나 다음 정권에서 그러나 이 같은 조기 개헌론에 반대의 입장을 보이고 있는 목소리들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대선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시기에 개헌이 자칫 권력구조 개편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개헌을 주장하는 이들이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꿀 것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면적 이유야 선거 주기의 일치를 주장하고 있지만, 그로 인해 지난 시절 대통령 장기집권의 문제가 다시 대두되는 것이 아니냐하는 우려이다. 이미 알고 있다시피 현행 헌법은 지난 1987년 제정될 당시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우려해 5년 단임제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물론, 현행 5년 단임제가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개헌을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을 하고자 하면 충분히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그들은 “5년제로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정권이 4년 중임제로 바꾼다고 해서 달라질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오히려 무능한 정권의 장기 집권으로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만 받게 될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김영호 성신여대교수는 기고문을 통해 “민생은 힘들고 갈 길은 먼데 개헌으로 국력을 소진할 만큼 우리 사회가 여유가 있는지 의문이다”며 “정치권은 스스로 개헌론을 들고 나올 것이 아니라 행정부는 행정부대로 국회는 국회대로 민생을 열심히 챙기면서 정치권 전체에 대한 국민적 신뢰감을 획득할 때 우리 국민은 정치권이 제기하는 개헌 논의에 대해서도 비로소 진지한 관심을 보일 것이다”고 말했다. 또, 진보 학계의 좌장격으로 알려진 최장집 고려대 교수의 경우에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여권 중심으로 제기되는 개헌 논의에 대해 “정치의 실패에서 나온 문제를 정치 밖의 다른 수단을 통해 해결하려는 시도는 민주정치 발전에 역효과를 내기 쉽다”고 비판하며 “지방선거에서 여당의 극적인 참패는 상당한 임기를 남겨둔 대통령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이는 지방선거 이후 여당 일각에서 헌법 개정 같은 제도개혁을 제기하게 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최 교수는 이 같은 배경에서 나오는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 논의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결국 현 정권에서 개헌논의가 이뤄지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무리들은 대부분 “정부와 여당이 개헌을 위시하여 장기 집권 명목을 마련하려고 하는 것”이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민주당 김효석 신임 원내대표의 인터뷰 내용에서도 드러난다. 김 원내대표는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전체적으로 개헌에 대한 지금 정계라든지 시민단체라든지 밖에서 보는 시각은 개헌이 필요하다 이렇게 보는 것 같은데 유독 한나라당이 조금 유보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말하고, “한나라당은 개헌을 자꾸 이야기하게 되면 개헌을 명분으로 정계개편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상당히 경계의 눈초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대통령제를 중임제로 바꾸게 되면 우선적으로 정권을 쥐고 있는 측이 차기 대선에 있어서 유리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에 차기 정권 창출을 노리고 있는 한나라당으로서는 경계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인 것이다.
◈정계 파장의 핵으로 부상할 가능성 한나라당의 이 같은 입장은 최근 이재오 원내대표의 발언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원내대표는 개헌논의와 관련해 “선거법이든, 헌법이든 고치려면 내년 대선에서 정당이나 후보가 대선공약으로 내걸고 국민심판을 받은 다음에 논의하는 게 옳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이 원내대표의 주장은 어차피 여당이든, 야당이든 모두가 현 정권 내에서 개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선거 공약으로 내놓을 수 있는 것이기에 한나라당만의 선거공약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선거 공약으로 하자는 것은 현 정권에서 논의가 불가하다는 뜻이 되고, 한나라당이 차기 정권을 창출하고 난 후에 그 때 논의하자는 의미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앞서 밝혔듯이 개헌이나 선거법 등 그 모든 것은 정권을 쥐고 있는 측이 유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한나라당은 시간을 조금 더 끌어 다음 정권에서 논의를 한다면 자신들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공산에서 지금 반대를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만일 한나라당의 뜻대로 차기 대선을 통해 정권이 교체된다면 그 때는 또 차차기 대권을 노리는 세력에 의해 개헌 논의가 가로막힐 공산도 있다. 물론, 현 정권이 차기 정권에서도 승리를 하고 그 맥을 이어간다면 한나라당은 또 다시 대통령의 임기와 국회의원의 임기가 극명하게 엇갈린 점을 놓고 개헌 논의를 미룰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래저래 이번 시기를 놓친다면 개헌은 또 20년 후에나 논의될 것으로 판단된다. 20년이 너무 멀다고 생각한다면 분명 현재의 사학법 재개정안 논의 문제만큼이나 정치권은 이해관계에 얽혀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게 될 것도 자명하다. 결국 개헌논의는 정치권이 주축이 되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또 다른 갈등과 분쟁의 소지가 있다면 국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서 상호 조율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합리적이고 원활한, 또 시대정신에 맞는 새로운 헌법을 만들기 위해 정치권과 국민들의 머리가 한 데 모아져야 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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