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 합의’, 노동개혁 드라이브 걸리나
‘노사정 합의’, 노동개혁 드라이브 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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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해고 도입’, ‘취업요건 변경 완화’ 쟁점 잠정 합의
▲ 지난 13일 노사정은 4인 대표자회의에서 최종 합의문을 도출했다. ⓒ시사포커스DB
지난해 8월 19일 구성된 이래 1년 넘게 끌어왔던 노사정 대화가 13일 최대 쟁점이던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에 대해 합의를 이루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는 정리해고 법제화 등에 합의했던 1998년 2월 노사정 대타협 이후 17년만의 일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여당과 사측에선 일단 환영한다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야권과 노동계 일각에선 정부의 압박에 밀려 ‘쉬운 해고’에 동의한 졸속 합의로 규정하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어 입법화가 이루어진 뒤에도 실제 적용하기까지 한동안 진통이 예상된다.
 
실제로 14일 오후 노사정 합의문 효력 발생을 위한 최종 절차인 한국노총 중앙집행위원회 통과를 앞두고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이 합의에 반대하며 회의 1시간 만에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분신을 시도해 중집이 잠시 파행에 이르는 등 앞으로 노동계의 반발을 잠재우기도 순탄치 않아 보인다.
 
◆ 노사정 합의 가져올 변화는?
 
정부의 이번 노동개혁 핵심은 ‘임금피크제’와 ‘일반해고 도입’으로 정리될 수 있는데 먼저 임금피크제란 일정 연령이 된 근로자 임금을 삭감하는 대신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로 정부는 장년 고용안정과 청년 일자리를 위해 도입 필요성을 제기해왔으며 이번 노사정 쟁점 중 하나인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를 통해 빠르게 확산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에게 불리한 규정을 만들 때 노조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는데, ‘취업규칙 변경요건’이 완화됨으로써 앞으로는 사회 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면 노조 동의가 없어도 경영 판단에 따라 사규를 변경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임금피크제 확산으로 9천여 개 민간 기업에서 정년 연장 수혜를 입는 근로자가 앞으로 4년 동안 11~21만 명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정년 연장으로 임금을 20% 정도 삭감할 경우 이를 재원으로 새 일자리 8~13만 개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심지어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일자리 31만 3천 건이 만들어지고 92만 명에 이르는 노동자가 정년연장 수혜를 볼 것이란 장밋빛 전망을 내놓기도 했는데 정부는 우선 올해 안으로 316개 모든 공공기관에 임금피크제 도입을 완료해 8천 개의 새 일자리를 만들 예정이다.
 
반면 임금피크제와 관련해 비판적인 목소리도 있었는데 정년까지 일하는 한국 근로자가 5%에 불과하고 장기 근속자도 20%인 현실에 비쳤을 때 정부가 주장하는 임금피크제 효과는 과장됐다는 지적이 있다.
 
또 임금피크제와 청년 실업 해소 연관성에 부정적 인식이 있다며 노동시간피크제가 일자리 창출에 보다 효과적이라는 주장도 있었는데 14일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윤호중 간사는 “법으로는 주 40시간 노동제가 실시되고 있고 1일 최대 12시간까지만 연장근로가 허용되지만, 정부는 행정해석으로 토, 일요일 주말 노동을 연장근로에서 제외해 68시간까지 일하고 있다”며 “3명이 할 일을 2명이 하는 나라에서 청년들이 취직될 리 없고, 정부는 청년의 노력 부족을 문제 삼는데 기업은 비현실적인 열정페이로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윤 간사는 “청년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전제조건은 기업규제 축소와 세 부담 인하가 되고 있으나, 근로시간 줄이기와 일자리 나누기에 기반한 세법과 노동법 재설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나마 ‘임금피크제’에 대해선 노동계 대표인 한노총에서도 큰 반발은 없었으나 또 다른 쟁점인 ‘일반해고 도입’(저성과자 해고요건 완화) 부문과 관련해선 합의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의견을 좁히기 어려웠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취업규칙 변경을 비롯해 ‘일반해고 도입’ 등의 핵심 쟁점에 대해선 정부가 지침을 마련하되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법제화하자는 선에서 합의를 이룰 수 있었다.
 
‘일반해고 도입’과 관련해선 1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의 기재부 국정감사에서도 거론됐는데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은 “이미 OECD기준으로 한국의 평균 근속연수가 5.6년으로 가장 낮고, 노조 조직률도 10% 미만인 상황에서 한국 노동자는 위험에 처해 있다”며 질타했다.
 
이에 대해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해고를 쉽게 한다는 게 아니라 ‘공정한 해고’를 한다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앞서 최 부총리는 지난 4일(현지시간) 터키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 회의 전 기자간담회에서도 일반해고 도입을 ‘공정해고’라 칭하며 “괜히 쫓아내는 게 아니라 저성과자에 한해 교육기회도 주고 ‘그래도 안 되면(쫓아낸다)’란 전제가 붙는다”고 동일한 입장을 드러낸 바 있다.
 
▲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노사정 합의 주요쟁점이었던 일반해고 도입과 관련해“해고를 쉽게 한다는 게 아니라 ‘공정한 해고’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밖에 노사정은 통상임금의 범위와 근로시간 단축, 또 실업급여 강화와 출퇴근 재해 산재 적용 등에선 거리를 좁혔는데 연장근로수당 산정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에 대해 노사정은 근로자 개인마다 다르게 지급되는 금품을 제외하곤 근로기준법 시행령에 상세히 명시하기로 했다.
 
또 근로시간은 최대 주당 52시간으로 줄어들 예정인데 4년 동안 점진적으로 단축하기로 했으며 실직 전 임금의 50% 수준인 현 실업급여는 60%까지 오르고 수급기간도 지금보다 30일이 늘어나게 된다.
 
아울러 출근이나 퇴근길에 다쳐도 산재보험금이 지급될 전망이다.
 
다만 몇 가지 쟁점사항에 대해선 앞으로 격론이 불가피한데 현행 2년인 비정규직 근로자의 사용기간 연장 문제와 파견근로자 확대 문제 등이 그것으로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은 고용불안을 초래할 것이고 파견 근로자는 비정규직 양산과 노동조건 악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단 노동계의 우려 때문이다.
 
이에 대해선 노사 및 전문가와의 논의를 통해 대안을 만들어 정기국회 의결 시 반영키로 했다.
 
◆ 당정청 “환영” 가운데 野 반발
 
이번 노사정 합의에 대해 각계각층의 표정이 서로 달랐는데 먼저 일찍이 노동개혁을 강조해왔던 청와대는 14일 오전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전날 노사정 합의와 관련, “청년 일자리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노사정이 수용한 대승적 결단으로 평가하며 환영한다”고 전했다.
 
또 정부측 대표로 노사정 4인 대표자회의에 참석했던 이기권 고용노동부장관은 같은 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노동시장선진화 특별위원회와의 당정협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노사정 대타협 결과를 두고 “1석 4조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노동자들은 60세까지 안정적으로 일하고, 기업은 경쟁력이 올라갈 수 있고, 청년들은 직접 일자리가 늘어나고 따라서 비정규직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장관은 “우리 노동시장의 기본 룰이 과거에 머무르고 있어 성장과 일자리 창출이 한계점에 이르렀다”며 “기업들이 하도급·비정규직 채용에서 직접 채용을 하는 쪽으로 고용 문화와 생태계를 바꾸는 일이 절실하다”고 노동개혁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이밖에 여당 인사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노사정 합의에 대해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우리 스스로 결단을 내린 선제적 대타협이자 노사 상생의 의미를 담았다는 측면에서 우리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대타협”이라고 호평했다.
 
그러면서도 김 대표는 “야당 일각에서 대기업 편향의 노동개악, 해고조치는 국회합의가 불가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지만 노동개혁은 정쟁이나 흥정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고 야당에 경고했다.
 
뒤이어 원유철 원내대표도 “막판까지 진통을 겪었던 노사정위원회가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에 대한 합의를 이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내년 1월1일부터 정년연장 의무화가 시행되는데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면서 취업시장을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는 연내에 노동개혁 입법을 반드시 마무리해야 한다”고 의지를 보였다.
 
반면 야권과 노동계 일각에선 이와 반대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는데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노사정 합의에 대해 “노사정위는 단서조항으로 정부가 노사와 충분히 합의를 갖는다는 내용을 넣었지만 쉬운 해고를 사실상 승인한 것으로, 뜻밖이다. 사실상 하향평준화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고 혹평했다.
 
그러면서 이 원내대표는 “이는 정규직을 비정규직처럼 쉽게 해고하는 안”이라며 “집권 이후 정부의 노동정책은 일반해고 요건을 완화하고 강압적 합의를 강요하는 것으로, 애초부터 노사정 타협과 상관없이 일방적 독주해 왔다”고 비판했다.
 
뒤이어 같은 당 유승희 최고위원도 “대타협이라는 탈을 쓰고 노동계의 항복 문서를 받은 것”이라며 “해고, 임금, 근로조건 등 노동기본법을 행정 지침으로 만든다는 발상은 군부독재에서나 가능하다. 더구나 노사정 합의가 없어도 단독으로 노동개혁을 단행하겠다는 정부의 태도를 볼 때 또 다시 밀어붙이지 않을까 지극히 우려된다”며 노동개악이란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여당은) '쉬운 해고 밀어붙이기'를 포기하고 서민경제를 살리는 경제개혁에 나서야 한다"며 "새누리당도 청와대 행동대장이 아니라 국민의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당 경제정의노동민주화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는 추미애 최고위원도 “사회적 합의를 유도해야 할 정부가 대기업 이익을 밀어붙인 불완전 합의”라며 “합의했어야 할 것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적용하는 것인데다 청년실업의 대책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한노총과 함께 노동계 양대산맥으로 꼽히는 민노총도 노사정 합의와 관련해 이날 오후 한상균 위원장이 민주노총 중집에 앞선 모두발언에서 “일반해고제 도입 승인, 임금피크제 임금삭감, 성과급 저임금체계, 비정규직 기간과 범위 확대, 노동시간 연장 입법 등 재앙을 승인한 역사상 최악의 야합”이라며 오는 주말 총파업 선포대회 개최를 예고했다.
 
한편 재계는 전날 노사정 합의에 대해 엇갈린 반응이 나왔는데 대한상의는 “노사가 대화로 합의를 이뤄냈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고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일반해고의 기준과 절차를 명확히 했단 점에선 의의가 있다”고 전했지만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일반해고 기준에 대해서도 명확한 규정이 없다”며 아쉬움을 드러냈고 자동차업계에서도 “모호한 합의”라는 반응을 보였다.
 
◆ 與 “합의안, 지침화할 것…5개 법안 동시 추진”
 
이번 노사정 합의에 따라 새누리당은 16일 오전 10시 의원총회를 열고 당론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다.
 
당 노동시장선진화 특위 간사인 이완영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정협의 결과를 전하면서 5대 입법과 관련해 “세부적으로 조항에 따른 이견은 없었다. 정부안에 대해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며 “기간제도 35세 이상 2+2가 내용인데 그건 아무래도 기간제 일자리 특징이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의원은 “그 분들이 2년만 하고 일자리를 잃는 것은 그만둬야 한다”며 “파견을 확대하거나 2년 연장은 고용 유연성으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법안이 통과하려면 3달이 남았다. 기간제와 파견에 대해서도 노사정에서 합의된 안이 오면 수정해서 반영할 것”이라며 “당론이 반영된 이후에도 수정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특히 이 의원은 이날 한노총 중집에서 합의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에 대해 “노총에서 거부되더라도 정부 여당의 입법은 그대로 가는 것”이라고 단언했는데 그가 통과될 것으로 미리 전망했듯 이날 오후 중집에선 노사정 합의문에 대해 결국 승인했다.
 
그는 또 “최종 노사정 합의가 오늘 통과되면 합의 정신을 살려서 지침으로 가야 한다”며 “당초 정부가 지침으로 하려는 취지가 있었고 그걸로 타협됐기 때문에 지침으로 가는 것이 맞다. 학계나 전문가, 경영계는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다”고 밝히는 한편 5개 법안은 동시 추진된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 의원은 재계 일각에서 보인 반응처럼 “아직도 행정지침으로 추진하려고 하는 공정해고 조항, 그리고 정년 60세 법에 따른 취업규칙 변경 문제에 대해 앞으로 노사와 정부가 논의해서 추진하기로 한 점에 대해서는, 여당에서는 완결되지 못한 점에 대해 미흡한 점도 강조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날 노사정 합의문이 마지막 절차인 한노총 중집까지 통과함으로써 앞으로 정부여당의 합의문 행정 지침화부터 연내 법제화에 이르기까지 갈 길이 바쁠 것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론 박 대통령이 강조해 온 4대개혁의 첫 단추인 노동개혁이 점차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전날 합의사항에서 재계가 지적한대로 ‘모호하게’ 잠정 합의된 주요 쟁점과 관련해 연내 법제화를 앞두고 논란이 재점화될 소지도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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