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전 총리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 사이에 미묘한 연대 기운이 감돌고 있다. 아직까지 당사자들 간의 교류나 직접적 입장 표명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주변 인물들을 바탕으로 이 같은 연대 기운은 구체적인 형상을 띄게 된 것이다. 그 가능성은 다양한 곳에서 점지 된다.
고 전 총리나 이 전 시장 모두 오세훈 서울시장과 깊은 유대의 끈을 맺고 있기에 오 시장이 가교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가능성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당내 일부 의원들을 바탕으로는 영남과 호남의 화합을 위해서 고 전 총리와 이 전 시장이 연대를 해야만 한다는 목소리들도 적지 않다.
또한, 일각에서는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당 경선을 통해 박 전 대표에게 승산의 가능성이 없는 이 시장이 탈당해서 독자적인 행보를 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대권을 향해 독자적으로 행동을 하게 될 경우 러닝메이트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가설이다. 이처럼 몇 가지 추정 사실들만 보더라도 고 전 총리와 이 전 시장의 연대 가능성은 전혀 새로운 시나리오만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징검다리는 오세훈이다
고 전 총리와 이 전 시장과의 연대 가능성에 앞서 한 가지 알아야할 사항이 있다. 고 전 총리와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관계다. 고 전 총리와 오 시장과의 관계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깊이에 있어서는 남다를 만큼 각별한 관계로 지내왔다는 것이 주변 인물들의 평가이다. 고 전 총리와 오 시장 사이의 각별한 관계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인 96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당시 고 전 총리와 오 시장은 환경운동연합의 공동대표와 법률위원장을 각각 역임한 바 있다. 주변의 인물들은 그 때부터 두 사람 사이의 유대관계가 깊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후에도 종종 자리를 함께하며 꾸준히 이어져 친분을 이어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고 전 총리는 이에 대해 “좋은 사람들끼리 만나는 자리에 (오 시장과)몇 번 자리를 함께 한 적이 있다”고 하며 ‘좋은 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 오 시장을 평가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더욱이 고 전 총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나라당의 오세훈 서울시장 등 소장파 의원들과는 개인적 인연이 있고, 일부는 지금도 만나고 있다”며 오 시장과의 관계를 굳이 감추려 하지는 않았다.
또한, 둘 사이의 유대 관계에 대해 민주당 신중식 의원은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고건 전 총리는 굉장히 신중한 분이다”라며 “한나라당을 언급한 것에 대해 한나라당에서는 일부 불쾌감이 있을 수 있겠지만, 오세훈 시장도 고건 전 총리와 특별한 관계이고, 나라를 구해보자는 큰 차원에서는 합의를 본 사람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덧붙여 신 의원은 “오세훈 시장이 갑자기 한나라당으로 영입돼서 당선되다보니 당에 충실해야겠지만, 한나라당 내에도 미래지향적이고 개혁적인 사람은 있기 때문에 접촉은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또, 신 의원은 방송 진행자가 “현재 오세훈 시장 당선자도 고건 전 총리와 힘을 합하고 있는 것이냐?”고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그렇다. 한나라당 후보가 되기 전에는 고건 전 총리와 가까운 분이었다”고 명쾌하게 답변하기도 했다.
물론, 이 같은 신 의원의 발언은 고 전 총리와 오 시장의 입장을 직접적으로 대변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주변에서 바라봐 온 모습의 형상이기에 고 전 총리와 오 시장 사이의 유대관계는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가 되어준다. 결국 고 전 총리와 오 시장 사이의 유대관계는 한 단계 가설을 넘어서서 고 전 총리와 이 전 시장과의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미 알고 있다시피 오 시장이 서울시장에 당선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 인물 중 한 사람이 바로 이 전 시장이다. 당내 소장파 의원들과 이 전 시장의 역할을 빼놓고는 지금의 서울시장 오세훈을 생각하기란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이 전 시장과도 깊은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오 시장이 고 전 총리와 이 전 시장을 엮어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논리다.
◈영호남의 화해를 위해서라도
오세훈 시장을 가교로 한 이유 외에도 영남과 호남의 통합이라는 제목은 고 전 총리와 이 전 시장 사이의 연대 명분이 되어주기에 충분하다. 지난 달 23일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은 당내 ‘푸른정책연구모임’이 주최한 ‘한나라당의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원탁대토론회’에서 “한나라당이 차기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이명박 서울시장과 고건 전 총리가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 의원의 이 같은 주장은 한나라당이 5.31 지방선거를 통해 압도적인 지지를 얻기는 했지만, 실상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국민들이 한나라당을 선호해서 표를 준 것은 아니라는 분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국민들이 선호하는 정당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승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여당이 워낙 국정 운영을 잘못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심판으로 한나라당에게 표가 쏠렸다는 것이다. 결국 한나라당은 어부지리격으로 승리를 한 것이기 때문에 대선에서도 이와 같은 상황이 연출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론이다.
그렇기에 공 의원은 고 전 총리와 이 전 시장이 연대해서 범여권의 표를 한 데 묶을 수 있어야만 한나라당이 차기 정권을 창출해 낼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민주화운동을 하던 YS는 군부와 손을 잡았고 DJ역시 JP와 연합을 했으며 노동운동을 하던 노무현은 재벌의 아들 정몽준과 단일화 했다”며 “내년 대선에서도 한나라당 단일 대오만으로는 집권이 힘들다”는 공 의원의 주장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결국 공 의원은 “이명박과 고건이 화합한다면 동서양 진영이 화합하고 지역 갈등이 한 번에 해소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두 잠룡의 연대가 정권 창출을 위한 가장 이상적인 방향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물론, 이 같은 동서 화합을 위해 인물론을 제시하는 것은 당의 전반적 의견이 아닌 공 의원을 비롯한 소수 일각의 주장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의원들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호남권과 연대를 해야만 한다는 데 있어서만큼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에 공 의원 등의 이 같은 주장이 실현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당내에서 호남 측 인사 중 누군가와는 반드시 연대를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욱 커져가고 있는 중이며, 그런 중에서 합당한 인물로 고 전 총리와 이 전 시장이 가장 보기 좋은 그림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탈당 가능성
이 전 시장의 당내 경선 승리 가능성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지방선거에 앞서 피습을 당했던 사건과 당 대표 퇴임 당시 한나라당내는 물론 여당 등 정치권 전반에 걸쳐 큰 박수를 받았던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이미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 박근혜 전 대표 등 한나라당 대권 빅3는 당 경선에 절대 승복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대권 도전을 준비해온 유력 후보들이 근소한 지지율 차이로 큰 꿈을 접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에 약속과는 또 달리 어떤 상황이 벌어지게 될 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런 추세라면 이 전 시장이 경선에 참여하지 않고 탈당을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신중식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명박 전 시장은 경선 결과에 복종하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한나라당 당원이랄지, 국민여론조사가 이명박 전 시장을 박근혜 전 대표가 추월하고 있는 추세가 계속되고 있는 현상을 주목해야 된다”며 “그런 것에 불만을 느꼈던지, 여성후보 불가론을 왜 이 시점에서 제기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탈당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만일 이 전 시장이 탈당을 하게 될 경우 이 시장의 지지기반이 현재보다는 부실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고, 그렇다면 정략적인 목적에 의해 고 전 총리를 찾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논리가 서게 된다.
◈이명박 경계경보
이런저런 이유로 고 전 총리와 이 전 시장이 연대하게 될 경우 그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이들의 연대에 따라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인물은 박 전 대표임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나라당과 박 전 대표 측에서는 이 전 시장의 변심에 적지 않은 경계를 하게 될 것으로 분석된다. 당 내에서 제2의 이인제와 같은 인물이 나타난다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좋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차기 정권을 창출해야 한다는 입장과 이 전 시장의 대권에 대한 야욕 사이에 미묘한 기운은 결국 고 전 총리를 끌어들이고 있고, 고 전 총리와 이 전 시장 간의 연대 가능성 경우의 수는 점차 많아지고 있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