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인적쇄신안, ‘혁신’인가 ‘숙청’인가
野 인적쇄신안, ‘혁신’인가 ‘숙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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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표 ‘열세지역’ 출마, 해당행위자 ‘엄중처벌’
▲ 조경태 의원은 이 같은 혁신위의 발표에 반발해 24일 기자회견을 내고 “새정치연합 김상곤 위원장이 나를 공개적으로 해당행위자로 낙인찍었다”며 “누가 해당행위자인지 당원과 국민들에게 공개투표로 물어보자”며 맞받아쳤다. 사진 / 원명국 기자
지난 23일 새정치민주연합 당권재민혁신위원회에서 마지막 혁신안으로 발표한 ‘인적쇄신안’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당초 김상곤 위원장은 22일 K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고강도 쇄신안은 아니라고 하며 특정인사가 거명되는 지에 대해서도 “그렇게 까지 구체적인 것은 거의 없을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가 같은 날 저녁 한겨레TV ‘정치토크 돌직구’와의 인터뷰에선 특정 인사 실명을 언급하기로 입장을 선회하면서 문재인 대표 재신임 이후 사실상 물갈이에 나선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백의종군’ 사실상 용퇴 권고?
 
문 대표의 재신임 투표 철회와 박주선 의원 탈당 등으로 그간 이어져 온 당 내홍이 겨우 수습되는가 싶더니 해체를 목전에 둔 혁신위가 23일 ‘인적쇄신안’이란 폭탄을 날리며 당내 비주류 진영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번 마지막 혁신안 발표에 앞서 김상곤 위원장은 지난 22일 “‘선당후사’, ‘백의종군’, ‘결초보은’과 관련된 것”이라고 암시했는데 이 중 가장 먼저 주목된 부분은 2007년 정권재창출에 실패한 뒤 당 대표를 지냈던 정세균, 이해찬, 문희상, 김한길, 안철수 의원을 직접 거론하며 당의 열세지역에 출마하라는 ‘백의종군’이었다.
 
이에 거명된 당사자들이 반감을 드러낸 것은 물론 탈당한 인사들까지도 비판을 쏟아냈다.
 
비주류인 안철수 전 공동대표는 ‘인적쇄신안’ 발표 직후 기자들과 만나 “(자신의 지역구인) 노원 병은 서민과 중산층이 많이 모여서 사시는 곳이고 제가 그분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해드리겠다고 처음 정치를 시작하고 약속했다”며 “현재 혁신위에서 여러 안들이 나왔지만 본질적인 혁신에 충실하고 신뢰를 얻는 것이 먼저”라고 해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안 전 공동대표와 함께 당 대표를 지냈던 비주류 중진 김한길 의원(4선)도 마찬가지로 불쾌감을 드러냈는데 안 전 공동대표와 함께 비주류로서 그간 당 내분의 중심에서 문 대표를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던 그 역시 사실상 문 대표 신임이 결의된 현 상황에서 ‘인적쇄신’이란 명목의 화살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점쳐졌다.
 
친노계인 이해찬(6선‧19대 세종시), 정세균(5선‧19대 종로)측에서도 열세지역 출마 권고에 수긍하기 어렵단 모습이었는데 19대 이전까진 서울 관악 을에서 당선돼 온 이 전 국무총리와 전북에서 당선돼왔던 정 상임고문은 19대에서 첫 출마한 지역구 역시 야당에 우세한 지역은 아니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지난 10일 친노인 최인호 혁신위원이 친노계 좌장인 이 전 총리에 대해 “백의종군해 우리 당의 고질병인 계파싸움의 악순환을 끊는 마중물이 돼달라”며 사실상 총선 불출마나 정계은퇴를 요구한 것으로 풀이돼 일찌감치 인적쇄신 대상에 오를 것으로 관측됐었다.
 
또 범친노계인 정 상임고문도 문 대표 재신임 투표를 두고 한창 당 내홍이 일던 지난 11일 KBS라디오에 출연해 “문 대표가 총선이나 대선 전망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문제”라며 문 대표 비판 대열에 합류한 바 있어 일각에선 이 때문에 ‘표적’이 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이렇게 살펴볼 때 전직 대표의 ‘열세지역 출마’에 용단을 권고한 이번 혁신안이 ‘백의종군’을 빙자한 퇴진 요구란 시각도 있었는데 이는 24일 조국 혁신위원이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출마를 하셔서 역할을 하실 분이 계시고 용퇴를 하실 분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한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조 교수는 이번 혁신안에서의 ‘열세지역 출마’에 대해 “강제사항이 아니라 권고사안”이라며 “공천관리위원회가 최종 판단해야 한다”고 한 발 물러난 모습을 보였다.
 
한편 일찍이 새정치연합을 탈당해 신당 창당 준비 중인 무소속 천정배 의원은 24일 TBS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인적쇄신안 내용과 관련, “비노 수장들을 제거하면서 활용가치가 떨어진 전직 대표들까지 끼워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며 비노에 보복하면서 문 대표 인사로만 당을 재편한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 ‘해당행위’ 낙인, 비주류 입 막나
 
‘인적 쇄신안’에선 또 ‘탈당’, ‘신당’을 최대의 해당 행위로 규정해 공개적으로 탈당 및 신당 창당이나 합류를 선언한 사람에 대해 당적을 박탈은 물론 복당도 불허해야 하며 ‘당 흔들기’에 가세한 해당행위자에 대해서도 징계를 요구하고 있어 그간 문 대표에 반발해 온 비주류 진영 탄압에 나선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특히 혁신위는 당의 정체성을 흔들고, 당원을 모독하며, 분열과 갈등을 조장했다는 명목으로 비주류 조경태 의원을 ‘본보기’로 언급하며 일벌백계 의사를 드러냈는데, 정작 지난 5월 최고위원회의에서 막말을 해 당원 모독 파문을 일으켰던 친노계 정청래 최고위원은 처음에 내려진 1년간 당직 자격정지 처분이 계속 감경돼 지난 23일 고작 4개월 만에 징계가 풀리면서 형평성 논란까지 일고 있다.
 
조경태 의원은 이 같은 혁신위의 발표에 반발해 24일 기자회견을 내고 “새정치연합 김상곤 위원장이 나를 공개적으로 해당행위자로 낙인찍었다”며 “누가 해당행위자인지 당원과 국민들에게 공개투표로 물어보자”며 맞받아쳤다.
 
조 의원은 “혁신위의 목적은 당의 혁신과 통합을 이루는 것인데 혁신안이라고 내놓은 것마다 당원들의 반발을 사고 분열을 초래했다”며 “이러니 문 대표 책임론에 혁신위가 물타기용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반대나 비판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하고 대안을 제시하면 되지 징계하거나 입을 틀어막으려는 행위는 반민주적인 행태”라며 “새정치연합은 문 대표 개인을 위한 사당이 아니다”라고 날을 세웠다.
 
조 의원은 또 혁신위가 모독이라고 한 발언을 꼬집어 “지난 중앙위 회의에서 반대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만장일치라고 박수치고 통과시킨 행위가 집단적 광기가 아니고 그 무엇이냐”며 “김 위원장은 (내가) 당원을 모독했다는데 한 적 없다. 오직 당의 미래를 위한 고언을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앞서 그는 지난 16일 공천 혁신안 통과 여부를 결정하는 당 중앙위에 참석해 회의 시작 직전 갑자기 ‘공개’ 회의로 진행할 것을 요구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중도퇴장한 뒤 공천 혁신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에 “패권화된 세력의 집단적 광기”라고 비난했는데 이 때문에 현재 당내 윤리심판원의 조사를 받고 있다.
 
조 의원은 문 대표에 대해서도 “문 대표는 22일 당의 분열과 갈등을 봉합하고 통합의 길로 나가자고 했다. (그런데) 하루도 지나지 않아 본 의원을 지목하며 해당행위자로 몰아붙이는 게 통합의 길이냐”며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쫓아내고 마음 맞는 사람끼리만 당을 함께 하겠다는 거냐”고 일침을 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문 대표가 정말 민주정당의 대표라면 제가 맞는지 문 대표가 맞는지 공개토론을 신청한다”며 “제가 해당행위를 했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저를 출당시키고 사실이 아니라면 당원과 국민에 사과하라”고 제안했다.
 
아울러 김상곤 위원장에 대해 조 의원은 “더 이상 징계 운운하며 뜸 들이지 말고 본 의원을 제명시켜라”라며 “윤리 심판원장, 혁신위원장을 임명한 사람이 문 대표이기 때문에 이들은 유기적인 협력 관계일 수 있다. 정말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처럼 ‘당 흔들기’에 대한 엄벌 외에도 혁신위는 정동영 전 의원은 물론 신당 창당에 나선 천정배, 박주선 의원 및 박준영 전 전남지사 등 탈당, 신당 인사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천명했는데 굳이 ‘복당불허’까지 꺼내든 것은 당외에서 이뤄지는 신당 측의 새정치연합 탈당 종용을 무산시키고 당 내분 여지를 남기지 않겠단 극약처방으로 보인다.
 
◆ 유명무실해진 ‘부패척결’ 안
 
▲ 박 전 원내대표는 24일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과연 우리 당을 위해 누가 앞장서서 싸웠나”라며 “당을 통합으로 이끌어 총선승리와 정권교체에 박지원의 역할이 있기 때문에 이런 혁신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부 의사를 나타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또 이번 11차 혁신안에서 이목을 끄는 부분은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친노인 한명숙 전 총리를 거론하며 그간 온정주의 타파와 부패척결을 강조해왔었는데 이 취지를 일부 반영해 하급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것만으로도 후보 신청 자체를 하지 말도록 결정했다.
 
즉 과거엔 공직선거후보자추천규정에서 뇌물·알선수재·공금 횡령·정치자금법 위반·개인비리 등으로 금고 및 집행유예 이상의 형이 확정된 자를 공천에서 배제했으나 이젠 혁 확정이 아니라 상기된 비리와 관련해 1~2심에서 유죄판결만 받아도 공천 부적격자로 분류돼 외견상 과거보다 엄격해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악용돼 억울한 판결이나 기소가 있을 수도 있는 부분을 고려해 공직후보자검증위에서 재적 3분의 2 이상 위원들이 찬성할 경우엔 공천에서 배제하지 않기로 한다는 예외조항을 둬 사실상 무력화시켰다.
 
우선 하급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단 점만으로 공천 배제한다는 점은 안 전 공동대표의 주장과 일치하지만 한편으론 무죄추정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란 지적을 받아왔는데 이를 감안해 넣은 예외조항은 오히려 ‘정치적 탄압 판결’이라고 판단하는 데 있어 당내에서 자의적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높아 허점을 보완하려다 더 큰 허점을 만든 셈이 되어버렸다.
 
이 같은 ‘허점’이 그대로 반영된 건 아무래도 그동안 한명숙 전 총리 판결을 두고 ‘정치적으로 억울한 사건’이란 입장을 보이며 안 전 공동대표와 대립각을 세워 온 문 대표의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일부 있다.
 
또 문 대표가 당을 거의 장악한 상황에서 그간 부패 전적을 가진 인사들 중 일부 ‘눈엣가시’에 대한 생사를 ‘공직후보자검증위’라는 수단을 통해 좌우할 수 있단 점에서 오히려 그럴 듯한 권력수단이 만들어졌다고도 할 수 있다.
 
일견 안 전 공동대표의 ‘부패척결’ 의지를 계승하는 듯 보이는 이 부분은 사실 비주류 중진인 박지원 전 원내대표를 표적삼은 게 아니냐는 의혹도 일었는데 하급심 유죄판결로 공천 배제가 될 경우 친노 중진인 신계륜 의원을 비롯해 김재윤, 신학용 의원 등도 이에 해당하지만 가장 주목되는 인물은 바로 박 전 원내대표이기 때문이다.
 
박 전 원내대표는 당 대표 경선에 나선 지난해 말부터 당시 경쟁후보였던 문 대표와 계속 대치해오다가 지난 8월 중순 문 대표의 ‘한반도 신경제구상’을 지지하는 발언을 내놓으면서부터 문 대표와의 충돌을 자제해왔는데 지난 16일 당 중앙위에서의 공천 혁신안 표결 전 중도퇴장하며 불만을 드러내는 등 잠시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보이긴 했으나 적어도 그가 당 내분을 지속하기보단 통합을 강조해왔던 건 사실이다.
 
또 그는 친노가 대부분인 현재 호남 거물로서 당내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인사 중 하나인데 지난 대선에서 한화갑 등 호남 인사들이 친노에 반발해 새누리당으로 간 과정에서도 박 전 원내대표는 끝까지 당내에 남아 호남 표 이탈을 방지하는 등 기여한 바가 있는데 이런 그를 이젠 ‘토사구팽’하는 게 아니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박 전 원내대표는 이런 심경을 드러내듯 24일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과연 우리 당을 위해 누가 앞장서서 싸웠나”라며 “당을 통합으로 이끌어 총선승리와 정권교체에 박지원의 역할이 있기 때문에 이런 혁신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부 의사를 나타냈다.
 
그는 혁신안에 대해 “분열의 길이 아닌 통합 단결을 통한 정권교체의 길로 가야 한다고 당의 여러 문제를 지적했는데, 마치 보복하는 양 자기 편들은 감싸고 비판한 편들에 대해서는 이런 결론을 낸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혁신안을 보면 ‘당신들 떠나도 좋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서운한 감정도 표했다.
 
그러면서 박 전 원내대표는 “내년 총선에 당연히 출마한다”며 “떳떳이 당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 (향후 거취는) 당에서 어떻게 저에게 하느냐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혁신안에 불복하는 듯한 입장을 내놔 장차 혁신안 이행을 놓고 당내에서 상당한 진통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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