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프랑스, 물고 물린 70년 푸른 전쟁
이탈리아-프랑스, 물고 물린 70년 푸른 전쟁
  • 김윤재
  • 승인 2006.07.08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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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의 발끝이냐, 부폰의 손끝이냐
독일 월드컵의 주인이 이제 가려지게 됐다. '레 블뢰 군단' 프랑스와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가 7월 10일 오전 3시(이하 한국시간) 2006 독일월드컵축구 결승이 열리는 베를린 올림피아 슈타디온의 주인공으로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지난 달 10일 65억 지구촌이 '친구를 만드는 시간'으로 월드컵의 문을 열기 전까지 프랑스-이탈리아의 결승 대결을 예측한 이는 많지 않았다. 각각 8강과 4강에서 탈락한 브라질-독일의 결승 격돌을 점치는 전문가들이 가장 많았고 브라질-이탈리아, 브라질-잉글랜드, 브라질-아르헨티나의 대결이 거론됐다. 프랑스는 1998년 월드컵 우승팀이지만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과 이번 대회에 앞서 펼쳐진 유럽 예선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해 '늙은 수탉'이라는 조롱을 듣끼 까지 했다. 개막 이후에도 프랑스는 스위스, 한국과 잇따라 비겨 조별리그 탈락 위기까지 몰렸던 탓에 8강에서 최강 브라질을 무너뜨릴 것으로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이탈리아도 자국 리그를 강타한 승부 조작 스캔들로 뒤숭숭한 분위기에 휘말린 때문인지 베를린까지 가리라고 예상하기는 쉽지 않았다. 힘들게 올라온 두 팀이지만 경기를 하면 할 수록 팀의 조직력이 강해지면서 누구도 쉽게 예상을 못하고 있다. 프랑스는 1998년 이후 8년 만에 두 번째, 이탈리아는 1982년 스페인월드컵 이후 24년 만에 네 번째 우승에 각각 도전한다. ◆70년의 푸른 전쟁 양팀은 역대 전적에서 7차례 만나 3승2무2패로 프랑스가 근소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월드컵에서는 모두 네번 만나 두 번씩 승리를 나눠 가졌다. 1938년 프랑스월드컵에서는 무솔리니의 영향을 받은 이탈리아가 검은색 셔츠를 입고 3-1로 프랑스를 이겼다. 이 대회에서 이탈리아는 브라질과 헝가리를 차례로 꺽고 우승을 차지했다. 프랑스는 1978년 혜성처럼 등장한 미셸 플라티니라는 선수로 인해 우승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미셸 플라티니 혼자서는 이탈리아를 이길 수 없었다. 이 경기에서 프랑스는 2-1로 진다. 8년 만에 다시 만난 1986년 멕시코월드컵. 원숙한 기량을 품어내던 미셸 플라티니의 활약에 힘입어 이탈리아를 2-0으로 이긴다. 이 때부터 프랑스는 한번도 이탈리아에게 져본 적이 없게 된다. 확실한 복수를 한 셈이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두 팀은 8강에서 만났고 연장까지 120분 혈투를 득점없이 마친 뒤 승부차기 끝에 프랑스가 4-3으로 이겨 우승의 밑거름을 마련했다. 가장 최근 대결이 극적인 승부로 회자되고 있는 2000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2000) 결승이다. 프랑스는 2000년 6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열린 유로2000 결승에서 이탈리아에 선제골을 내줬지만 종료 1분 전 실뱅 윌토르가 극적인 동점골을 뽑고 연장 전반 다비드 트레제게의 환상적인 골든골을 터뜨려 우승컵을 안았다. ◆점점 힘을 내는 두팀 프랑스와 이탈리아 두 팀 모두 조별예선의 성적은 좋지 않았다. 프랑스는 이번 대회에서 출발이 좋지 않았지만 갈수록 베테랑들이 힘을 내며 '아트사커'의 진면목을 드러내고 있다. 에릭 아비달, 릴리앙 튀랑, 윌리엄 갈라스, 윌리 사뇰로 구성된 포백(4-back)은 두 골 밖에 허용하지 않았다. 그것도 스페인과 16강전에서 내준 페널티킥을 빼면 조별리그 2차전에서 박지성에게 허용한 골이 유일한 필드골 실점이다. 이탈리아는 6경기에서 단 1실점만 하고 있다. 조별리그 미국전에서 크리스티안 차카르도의 자책골이 유일한 실점으로 상대 공격수에게는 한 번도 골문을 허락한 적이 없다. '빗장수비(카테나치오)의 핵' 알레산드로 네스트가 부상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지만 파비오 칸나바로, 마르코 마테라치가 버티는 포백은 전통을 입증하듯 견고함을 잃지 않고 있다. 미드필드에서는 '마에스트로' 지네딘 지단(프랑스)과 프란체스코 토티(이탈리아)가 정면 대결을 벌인다. 이탈리아는 독일과 준결승에서 발군의 활약을 펼친 안드레아 피를로가 중원에 가세해 힘을 더하고 있다. 공격진에서는 티에리 앙리(프랑스)에게 무게가 실린다. 이탈리아는 선발 타깃맨 루카 토니를 축으로 알베르트 질라르디노, 알레산드로 델피에로 등 풍부한 '조커 카드'를 보유하고 있다. 레몽 도메네크 프랑스 감독과 마르첼로 리피 이탈리아 감독은 '걸어온 길'이 상반된 사령탑이다. 도메네크 감독은 올림피크 리옹을 맡기도 했지만 1993년부터 10년 넘게 청소년대표팀을 지휘하면서 유망주를 길러낸 반면 리피 감독은 세리에A 명문 유벤투스 사령탑을 오랫동안 지내면서 프로 무대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베테랑이다. ◆앙리의 창, 부폰의 방패 대결 이번 결승전은 두 팀 공수의 핵심인 티에리 앙리(프랑스)와 잔루이지 부폰(이탈리아)의 결투다. 아스널 소속의 앙리는 2005~2006시즌까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3시즌 연속 득점왕에 오른 세계 정상급 킬러. 반면 유벤투스 소속의 부폰은 월드컵 최장시간 무실점 신기록 달성을 눈앞에 둔 최고 수문장이다. 창이 방패를 뚫을지, 아니면 방패가 창을 막아낼지 전 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앙리의 발끝 또는 부폰의 손끝에서 승부가 결정난다는 것이다. 29살의 앙리는 94년 AS모나코(프랑스)에서 프로데뷔한 뒤 유벤투스·아스널 등 명문팀에서 공격수로 뛰어왔다. 97년 프랑스대표로 선발됐고 98년부터 3회 연속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98년 프랑스월드컵 우승, 2000년 유럽선수권대회 우승 모두 그의 업적.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4번, 프랑스 올해의 선수 4번, 잉글랜드 선수협의회 선정 올해의 선수 2번, 유럽리그 전체 득점왕까지. 더이상 말이 필요없는 킬러의 모습이다. 키 1m88로 400m 허들선수 출신인 앙리는 이번 월드컵에서는 6경기에서 3골을 터뜨렸다. 득점선두 미로스로프 클로제(독일)에 2골이 뒤진 2위를 달리고 있다. 앙리의 폭발적인 슈팅을 막아야 하는 게 부폰이다. 부폰은 원반던지기 선수 어머니와 역도선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삼촌들은 농구 또는 축구선수였고 여동생들도 배구 선수인 운동선수 집안이다. 1m90의 키, 나이 28세.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는 ‘특급 거미손’이다. 95년 파르마(이탈리아)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했고 2001년에는 유벤투스로 이적했다. 월드컵 무대는 앙리와 똑같이 98년 대회부터 3번 밟았다. 부폰은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유력한 야신상 후보다. 6경기 1실점. 1실점도 자책골이다. 부폰은 미국전 전반 27분 자책골 이후 준결승까지 무려 453분 무실점 행진 중이다. 이 부문 기존 기록은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이탈리아의 월터 쳉가가 세웠던 517분. 부폰이 결승에서 후반 20분까지 총 65분만 버티면 신기록을 세운다. 부폰과 앙리는 ‘골든볼(최우수선수)’ 후보이기도 하다. 따라서 부폰이 만일 무실점으로 이탈리아의 우승을 이끈다면 야신상과 골든볼을 동시에 수상할 수도 있다. 최근 이탈리아 프로축구를 강타하고 있는 승부조작 스캔들에서 ‘깃털’이 아닌 ‘몸통’으로 꼽히고 있는 부폰으로서도 무결점 우승만이 자신의 혐의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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