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측 기싸움 팽팽…‘가격 양보’가 관건

KTB PE는 지난 23일 정기사원총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동부익스프레스 투자자 사모펀드 운용사 그룹과 출자자 그룹이 전부 참석했다. 이날 KTB PE는 현대백화점이 제시한 가격을 밝힐 수 없다고 설명하면서도 “중국계 후보 초청을 논의 중”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현대백화점이 제시한 매각가에 만족할 수 없다는 뜻인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현대백화점 또한 본입찰에서 제시한 매각가 4000~5000억원 수준에서 양보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실사 결과 동부그룹의 내부거래 매출의존도가 50%에 달하는데다 동부인천항만이 정부의 최소수입보장에 근거해 수익을 내고 있다는 점 등 가격 하락 요인이 너무 많았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 유찰 또는 매각, KTB PE 앞에 놓인 선택지
최초 동부익스프레스 매각작업이 시작된 지난 7월말에 숏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곳은 신세계와 현대백화점, CJ대한통운, 동원그룹, 한국타이어, 한앤컴퍼니, MBK 등 7곳에 달했다. 이에 KTB PE의 처신에 눈길이 쏠렸다. 이미 LG실트론 투자 회수 부진과 전진중공업 매각 지연 등으로 자존심을 구긴 KTB PE가 다시 반전을 꿰할 수 있을지에 대한 투자은행 업계의 관심이 높았다.
뜨거운 관심에 부응하듯 KTB PE 박제용 부회장은 매각작업 착수 후 직접 원매자를 만나 일정 수준 이상의 매각가를 제시해달라는 부탁을 하는 등 열을 올렸다. 동부익스프레스가 대형 물류 플랫폼을 갖춘 국내 3위 물류업체로 항만 물류, 물류창고, 여객 운송, 렌터카, 국제 물류 등의 알짜사업을 갖고 있어 인수합병 시장에서 인기가 높다는 점이 반영돼 예상 매각가는 1조원까지 폭등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본 후보자들은 실망했다. 실사를 통해 살펴보니 내부거래율이 생각보다 높게 나타난 데다 전체 영업이익의 50% 정도를 담당하고 있는 동부인천항만이 정부의 최소수입보장에 근거해 수익을 내고 있었다.
업계에서는 KTB PE의 희망 매각가 7000억원 수준은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KTB PE는 매각가를 깎아줄 의사가 없었고 현대백화점만 남겨놓고 나머지 후보자들이 모두 돌아섰다.
현대백화점이 제시한 가격은 4000억원대인 것으로 전해진다. 당황한 KTB PE 측은 해외 원매자를 찾겠다는 방침이지만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설사 데려온다고 하더라도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비슷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새롭게 등장한 중국기업이 현대백화점보다 높은 가격을 써낼지도 의문이다.
매각을 늦추고 재입찰을 진행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업가치가 오른다는 보장도 없다. 내부거래율이 높은데다 관계 계열사에서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어 향후 수주 물량이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동부익스프레스의 주 고객인 동부제철이 영업축소와 워크아웃을 단행하고 있는데다 동부팜한농 매각 이슈와 동부메탈 실적 악화 등 내부의존도가 높은 동부익스프레스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 하나도 없다.
이에 현대백화점이 4000억원대에 동부익스프레스를 인수해 가거나 아니면 매각자체가 유찰되는 시나리오가 유력한 것으로 분석된다.
◆ ‘쪼개 팔기’ 시나리오도
이런 상황에 유통업계는 동부익스프레스의 ‘부분 매각’ 시나리오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되면 KTB PE가 동부익스프레스를 현대백화점에 매각하는 것보다는 많은 돈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면서도 인수 희망자 역시 전체 물량을 인수해야 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어 양측이 ‘윈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신세계그룹의 경우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분 48.29%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인데,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소망인 신세계 센트럴 시티를 중심으로 한 호남선과 경부선을 아우르는 통합 복합몰을 건립하기 위해서는 정관 변경 등 특별 결의 사항에 해당하는 내용이 통과돼야 하고 그러려면 서울고속터미널 지분을 3분의 2수준까지 추가 확보해야 한다. 이에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분 11.11%를 갖고 있는 동부익스프레스는 구미가 당기는 투자처다.
고속버스터미널 지분을 빼고라도 신세계가 동부익스프레스를 가지게 될 경우 ‘캐시카우’인 이마트가 누리게 될 반사이익도 적지 않다. 최근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유통업체들이 관심 있게 보고 있는 분야가 택배다. 이마트의 경우 온라인몰이 급성장함에 따라 택배사업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때에 물류기업을 인수할 경우 비용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실제 지난해 이마트는 경기도 용인시에 온라인몰 전용 물류센터를 세웠고 2020년까지 총 6개의 물류센터를 운영할 방침이다.
이외 CJ대한통운은 CJ대한통운부산컨테이너T/M㈜의 지분 일부를 가지고 있는 동부익스프레스의 항만물류 사업에 높은 관심을 보여 왔다. 최근 물류사업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는 한솔로지스틱스도 연매출 평균 2000억원을 내는 동부익스프레스의 컨테이너 사업군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현대百, 고집만 부리기엔 아쉬울 듯
이번 협상테이블에서 현대백화점이 우위에 있긴 하지만, 끝까지 고집을 부리다 매각을 유찰시키기에는 아쉬울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KTB PE가 극단적으로 이번 매각을 접고 재매각에 나선다고 가정하면 이번 입찰에 불참한 CJ나 신세계 등 거물급 유통기업이 다시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정말로 중국계 후보자가 등장할 수도 있다.
내부거래율이 높다는 점이 리스크로 작용하긴 하더라도, 물류센터와 항만 등을 모두 가지고 있는 종합 물류회사라는 점에서 동부익스프레스는 매력적인 매물이다. 특히 자체 물류사가 없는 현대백화점 입장에서는 물류부문과의 합작을 통해 시너지를 기대해 볼 수도 있다.
즉 이번 협상의 관건은 KTB PE와 현대백화점 모두 ‘가격’면에서 얼마만큼 양보를 할 것인지를 정하는 일이다.[시사포커스 / 진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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