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프라이머리 포기’ 의총서 결정…김무성 흔들릴 듯

이런 가운데 그간 잠잠하던 청와대조차 30일 오후 ‘안심번호 합의’에 대한 추인여부를 논의하는 새누리당 의원총회를 앞두고 김무성 대표 압박에 본격 나서면서 유승민 원내대표 시기 당청갈등이 재현되는 게 아닌지 우려의 시선이 집중됐다.
결국 이날 3시간 넘게 이어진 의총에선 ‘오픈프라이머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이를 포기하고 대안으로서 ‘플랜B’를 논의할 별도 대책기구를 설치한다는 데 합의에 이르면서 외형상 친박계의 승리로 김 대표의 힘이 당분간 빠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가 여전히 ‘전략공천 불가’ 입장을 밝히며 ‘플랜B’논의 기구에서도 ‘안심번호’를 논의하기로 하면서 불씨를 남겨둬 향후 양측 간의 2차전을 예고했다.
◆ ‘공천 룰’ 합의 후폭풍, 친‧비박 갈등 정점
야당의 합의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오픈프라이머리 회의론’을 제기해 김 대표를 압박해 오던 친박계가 지난 28일 예상치 못한 여야 대표 간 ‘공천 룰’ 합의에 강력 반발하고 나서는 모양새다.
이를 반영하듯 친박계 맏형 서청원 최고위원을 비롯해 최근 친박으로 기울어진 김태호 최고위원도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 불참하고, 이 자리에 참석한 친박측 최고위원들도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친박인 이정현 최고위원은 이날 회의에 앞서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공천의 문제는 각 당이 알아서 결정할 문제지 여야 대표들이 모여 합의해서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이건 아니라고 본다”며 당내 의견수렴 없이 양당 대표끼리 결정된 합의 방식을 비판하고 나섰다.
또 안심번호와 관련해서도 “야당 혁신위에서 먼저 들고 나온 건데 실질적으로 야당 내부에서도 이게 결정이 안 됐다”며 “이런 방식으로 하곘다고 결정했다고 받아들일 수도 없고, 받아들일 내용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인제 최고위원도 회의 전 KBS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에 출연해 여야대표간 공천 룰 합의와 관련, “우리 당만의 경선제도에 관해서는 아직 초보적인 논의도 안 돼 있다”며 “각각 정당마다 자기 나름대로의 경선 규정을 가지고 하는 건데 당 내 경선 룰을 합의한다는 건 있을 수 없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이 최고위원도 안심번호에 대해 “정보통신회사가 자기들이 그야말로 성인군자처럼 그 비밀을 한 치도 흘리지 않고 지켜준다면 모르지만, 거기에 만일 비밀권력을 그 사람들만 갖고 있는 건데 이게 잘못 남용되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그는 “전화 여론조사라는 것은 편법인데 그것이 무슨 대단한 경선이나 선거의 방식이 될 수는 없다”며 인기투표로 흐를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앞으로 경선에 여론조사를 활용하는 건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이런 주장에 김성태 의원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여야 대표간 합의를 두고 친박계에서 반발하는 데 대해 “그러면 거꾸로 대통령께서 앞으로 이 문제까지도 관여해 내년 우리 새누리당 공천방식이 대통령 뜻에 의해 결정돼야 하느냐”라며 “차라리 속 시원하게 전략공천을 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 이렇게 솔직히 이야기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어 김 의원은 안심번호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도 “중앙선관위가 정치권에 제안한 제도”라며 “지난 8월 정치개혁특위 소위원회에서 여야가 이미 합의한 사항”이라고 일축했다.
김 대표도 이날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친박계가 제기한 쟁점들에 대해 일일이 반박하고 나섰는데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취지 아래 미국식 오픈프라이머리에서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안으로 새로운 안을 제안한 것”이라며 “새정치민주연합 공천안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라 주장하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그는 안심번호에 대해서도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휴대전화로 여론조사하려고 오래전부터 시행된 일반화된 기법으로 KT에서 근무하던 우리 당 권은희 의원이 20년 전에 개발한 기법”이라며 “이미 우리당도 지난 지방선거 후보경선 전당대회, 재보궐선거, 청년위원장 선거 등에 활용해 온 바 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이어 “선관위에서 선거관련 각종 여론조사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2015년 2월에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을 냈고 각 당에서 의원들이 법률안을 냈는데 우리 당에선 권은희 의원이 냈다”며 “이 개정 법률안이 정개특위 소위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된 상태에 있다는 걸 분명히 말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공천 룰’을 두고 친박계가 최근 김 대표 압박에 들어간 이유는 아직 당내에서 수적 우위에 서지 못하는 친박계의 입지를 확대하기 위한 것인데 그동안 당론으로 결정한 오픈프라이머리를 반대하면서까지 전략공천방식을 고수할 명분이 없었지만 총선이 멀지 않은 시점에서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위한 야당의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을 이유로 ‘오픈프라이머리 철회’ 공세에 나섰다가 이번 여야 대표 회동으로 절충안을 내놓자 친박계는 역공을 맞은 셈이다.
비박이 다수인 현 당내 비율을 깨기 위해선 내년 총선에서 청와대의 압력을 통한 전략공천으로 다수의 친박계 정치신인들을 등용해야 하는데 김 대표가 현역 의원에 유리한 오픈프라이머리를 강행하게 되면 당내 친박이 열세인 현 체제가 유지될 가능성이 있어 청와대와 친박에선 어떻게든 일부라도 전략공천방식을 유지하려는 속내를 갖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여야 대표의 ‘공천 룰’ 절충에 대해 친박에서 대표 회동의 의미를 축소하거나 절차적 문제, 기술적 문제 등을 문제 삼은 건 부차적인 구실일 뿐이며 실제론 김 대표를 위시한 비박계와 청와대를 대표한 친박계가 ‘내년 총선 공천권’을 놓고 당내 주도권 다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 김 대표 행보, 당청관계 균열 전조되나
이번 김 대표와 새정치연합 문 대표 간 회동은 박근혜 대통령이 유엔 외교를 하기 위해 국외로 나간 시점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청와대에서도 김 대표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도 박 대통령이 아시아유럽정상회의 참석차 해외 출장 중 김 대표가 청와대와의 사전 협의도 없이 ‘개헌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킨 데 이어 줄곧 중요사안과 관련해 청와대를 배제한 채 여당 대표가 단독 결정을 내리는 데 대해 청와대는 현재 사실상 여권 유일 대선주자인 김 대표를 의혹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이런 점을 예견한 듯 박 대통령은 3박4일간의 짧은 뉴욕 일정동안 차기 대선 여론조사에서 1위를 기록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7차례나 만나는 모습을 보였는데 비록 유엔 관련 국제회의가 잦았기 때문이라고는 하나 아직 특별히 자체 대선후보를 내놓지 못한 친박측에서 김 대표를 압박하기 위해 ‘반 총장’ 카드를 활용한 것 아니냐는 풀이도 나오고 있다.
이날(30일) 오전까지만 해도 청와대는 민경욱 대변인을 통해 “총선 공천 룰은 당에서 하는 일로 청와대가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짐짓 여야 대표간 ‘공천 룰 합의’와 관련해 내색하지 않는단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김 대표가 이날 최고중진연석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안심번호는 정치이슈와 전혀 관계없는 단순한 기법상 문제로, 청와대와 상의할 일도 아니다”라고 직격탄을 날리자 청와대는 불과 3시간 만에 입장을 바꿔 이날 오전 춘추관에 있는 기자들에게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대해 “우려스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라며 오후 예정된 ‘안심번호’ 논의 의원총회에 앞서 김 대표 견제에 들어갔다.
청와대 관계자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대한 입장을 내놓은 건 이번이 처음인데 ‘민심왜곡’,‘조직선거’,‘세금낭비’,‘전화조사와 현장투표 간 간극’,‘절차적 정당성’ 등 5가지나 반대 이유를 내놓으며 ‘여론조사’만을 통해 공천하겠다는 김 대표의 입장에 강력히 반대한단 의지를 천명했단 점에서 앞으로의 당청관계가 악화일로로 나갈 것이라 관측되고 있다.
이 같은 청와대측의 반응에 대해 김 대표는 오후에 열린 국회 의원총회에서 “청와대 관계자가 당 대표를 모욕하면 되겠나. 오늘까지만 참겠다”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고 새누리당 김영우 대변인은 전했다.
김 대표는 청와대에서 지적한 5가지 문제점과 관련해서도 “1개만 맞았다”라며 “청와대가 ‘여론조사 응답률이 2% 수준으로 낮다’고 한 부분은 맞지만 나머지는 맞지 않는 지적이 많다”고 일침을 가했다.
또 그는 자신이 절차를 무시하고 야당과 합의했단 친박계의 비판에 대해서도 “그래서 합의문이 아니라 발표문이라고 했다”며 “당론으로 채택되고 대선공약이었던 걸 추진하는 게 문제인가”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도 김 대표는 “전략공천을 하겠다는 것은 동료의원을 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라며 “전략공천은 내가 있는 한 없다”고 단언해 친박계와는 이 문제로 절대 합의할 가능성이 없음을 재확인시켰다.
사실 이미 국민공천제(오픈프라이머리) 법제화도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이 내놓은 첫 번째 정치공약이었고 ‘안심번호’ 역시 박 대통령이 18대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로 나섰던 2012년에 경선 방법으로 도입하는 데 동의했단 점에서 청와대가 김 대표의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추진에 반발하는 건 얼핏 모순된 행위로 비쳐지나 ‘제도’ 자체 문제보다 ‘공천권 투쟁’ 나아가 ‘당권 장악’이 이번 갈등의 초점이란 것을 살펴보면 청와대측 발언의 저의를 이해할 수 있다.
◆ ‘오픈프라이머리’ 포기로 귀결된 김 대표의 반란
이처럼 청와대와 각을 세우면서까지 김 대표가 이루려던 국민공천제는 이날 오후 열린 의총에서 ‘폐기’되는 것으로 그 운명이 결정됐다.
당초 이날 의총은 선거구 통폐합에 직면한 농어촌 의원들이 요구해 소집돼 선거구 획정이 주요 안건이었으나 추석기간 새정치연합과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란 절충안을 이뤄내면서 이에 대한 친박과 비박 간 일대 결전의 자리로 변해 버렸다.
이날 의총 전 최고중진연석회의를 통해 오픈프라이머리의 대안인 ‘플랜B’를 논의할 별도 대책기구를 설치한다는 부분에 양측이 잠정 합의해 놓은 상황이어서 의총에서 극단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118명의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3시간 넘게 공방을 펼치며 논의가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자리에선 친박 측으로 김재원 대통령 정무특보와 김태흠 의원이, 김 대표측에선 강석호, 김성태 의원이 나서면서 기 싸움을 벌였는데 결국 김 대표가 “정치생명을 걸겠다”면서 추진해 온 ‘오픈프라이머리’를 포기하는 것으로 정리되면서 사실상 친박의 승리로 끝났다.
지난 해 7월 김 대표가 당 대표에 취임하며 ‘오픈프라이머리’를 공언한 후 14개월 만에 이렇게 꺾이면서 장차 청와대의 입김이 강해지는 한편 당분간 김 대표의 힘이 크게 빠질 것이란 견해도 나오고 있지만 이날 추인된 ‘플랜B 논의 특별기구’에서 앞으로 공천 룰을 결정하게 되면서 다시금 이를 둘러싼 친박계와 비박계의 충돌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오픈프라이머리 포기’를 공식선언한 김 대표도 ‘플랜B 논의 특별기구’와 관련해 “거기에서 안심번호를 포함해 논의하기로 했다”며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드린다는 취지는 절대 변경할 수 없다”고 여전히 강조해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했다.[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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