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근 농협중앙회장이 검찰에 구속되면서 농협의 구조적 비리가 또 다시 불거지고 있다.
‘존재 자체가 파워’라는 거대 조직 농협.
현재 농협은 근간이 되는 농경사업은 물론 경제사업, 신용사업에 이르기까지 가히 전방위적인 사업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00년. 농협-축협-인삼협이 합쳐 지금의 통합농협으로 규모가 확대되면서 그 외연도 확장일로를 걷고 있다. 최근에는 NH투자증권(구 세종증권)에 이어 LG카드 인수전에 참여하면서 그야말로 ‘은행-증권-보험-카드’를 잇는 종합금융지주그룹으로의 도약을 목전에 두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임직원의 횡령, 유용 등 온갖 잡음에 시달려 왔던 것도 사실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약3회에 걸친 기획시리즈를 통해 농협중앙회의 과거와 오늘, 그리고 문제점들을 짚어보기로 한다.
“정대근 농협중앙회장의 비리는 구조적 비리이므로 검찰의 철저한 진실규명과 각종 의혹들에 대한 전면 수사 확대 등 농협중앙회 비리수사 전담팀을 구성해야 한다.”(임기웅 전국농협노동조합 정책기획부국장)
구조적 문제 논쟁 일어
지난 5월 정대근 농협중앙회장이 금품수수혐의로 구속되자 농협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 회장 구속이라는 사안이 단지 개인비리가 아닌 농협중앙회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지적이 일고 있는 것이다.
전국농협노동조합(이하 전농노) 임기웅 정책기획부국장은 “농협권력의 비대화는 공무원은 물론 주무부처인 농림부장관까지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정치권력으로 성장했다”고 단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또 “농협은 농민을 위한 농업인들의 단체라기보다는 이를 이용해 특혜를 받는 ‘농민마피아’”라는 극단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가장 큰 구조적인 문제로 임 부국장은 ‘상환준비 예치금’을 예로 들었다. 농협중앙회와 지역농협이 체결한 특별회계 약정서에는 ‘특별회계 사업에 드는 비용을 제외하고 운용손익은 모두 지역농협에 귀속 된다’고 규정돼있다.
상호금융특별회계란 각 지역농협에서 상호금융 예치 상환기금으로 10%씩 중앙회에 올려 보내는 적립금을 말한다. 따라서 약정서대로라면 예치금을 맡긴 지역농협에 수익을 배당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앙회에서는 이익금을 지역 농협에 돌려주기는커녕 중앙회에서 수익까지 챙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지난 2002년 7월부터 ‘상호금융특별회계기금의 운영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손실은 지역농협이 책임진다’라는 내용의 서약서를 따로 받아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고.
결국 중앙회에서 지역농협에 ‘지도공문’ 형태로 하달된 이 서약서를 상대적 약자인 지역농협 조합장들은 작성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또한 서약서를 작성하지 않을 경우 따르는 불이익을 감내하기란 조그만 지역농협으로서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중앙회의 기금관리위원회에서 해마다 부실조합을 선정, 이를 강제 통?폐합시키거나 지원금을 내려 보내는 등 막강한 실권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지도공문이란 말이 ‘지도공문’이지 하달지침이나 다름없다는 게 전농노측의 주장이다.
임 부국장은 “조합장들의 서약서를 근거로 현재 농협중앙회는 특별회계 운용손실을 모두 지역 농협에 전가해 부담을 지우고 있다”라며 “만일 손실보전과 여유자금을 중앙회에 예치하지 않는 경우에는 무이자 대출자금을 끊겠다고 하기에 각 지역농협에서는 이를 따르는 것 밖에 방법이 없는 것이다”고 전했다.
이같은 ‘상명하복’ 분위기는 정 회장 구속이후 중앙회 전국 각 시군지부와 지역농협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정 회장의 보석석방을 위한 탄원서 파동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지역농협 조합장들이 대부분 중앙회의 뜻에 정 회장 보석 탄원서에 서명했다는 것이다.
전농노는 탄원서를 “중앙회에서 만들어 강제로 서명하도록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농협중앙회는 “지역농협 스스로 탄원서를 만들어 서명한 것”이라며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 2004년 조일현 열린우리당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집에 따르면 당시 농협 임직원들의 연봉이 과도하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 한바탕 물의를 빚은 적이 있었다.
조 의원에 제출한 농협의 당시 국감 자료에는 정대근 농협중앙회장의 경우 2001년 2억2천만원이었던 연봉이 2003년에는 4억4천500만원으로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업무추진비까지 합할 경우 약 6억3천500만원에 이른다.
또한 중앙회 3개 사업부문별 대표와 상임감사는 2002년 연봉을 9천300만원씩 인상하고 성과급까지 신설돼 보수가 전년보다 110∼176%나 급등하면서 신용대표는 3억400만원, 농업경제대표는 2억6천200만원, 축산경제대표는 2억3천100만원, 상임감사는 2억6천800만원을 기록했다. 상무도 119%가 상승한 2억1천300만원, 부장(1급)은 2년간 1천200만원, 부부장(2급)은 1천만원이 이른 것으로 집계 됐었다.
하지만 농협 언론홍보팀 관계자는 “당시 국감자료를 조 의원이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해명하며“신용대표의 경우 은행장급 임원인데 같은 레벨급에서는 최저연봉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2007년도 주요 임원급 연봉을 묻는 기자에게 “남의 월급을 알려줄 필요가 있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농협은 말 그대로 ‘협동조합’이다. 농민들이 하나 둘 힘을 모아 만들 협력단체의 성격이 짙은 것이 바로 농업협동조합인 것이다. 즉, 이 땅의, 전국의 농민들이 모두가 농협의 주인 인 셈이다.
임 부국장은 “이런 농민들의 기금에서 썬앤문 불법 대출, SK글로벌 부실대출 등 갖가지 의혹사건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지금의 농협중앙회”라며 “선출직 회장 한사람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이상 부패위험은 상존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