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빅 피쉬
[영화리뷰] 빅 피쉬
  • 이문원
  • 승인 2004.03.1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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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의 제어만이 '변화'의 유일한 방책인가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가족-가족, 남자-남자, 선배-후배 등, 인간관계에서의 여러 복합적 양상들이 한 데 물려있는 '아버지-아들'의 관계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한 웅큼의 이야기거리들을 안고 있으며, 끝없이 변형되어 수많은 주제에 대한 알레고리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가장 독창적인 작가들 중 하나인 팀 버튼의 신작 "빅 피쉬"는 바로 이 '아버지-아들'의 테마에 '환자-정상인' 간에 벌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의 소통 테마, 그리고 '환상-현실'의 컨셉까지 가세시킨, 야심찬 복합적 테마 결합의 영화이다. "빅 피쉬"의 구성은 다소 복잡하다. 허언증 환자에 가까운 '이야기꾼' 아버지인 에드워드 블룸과 아버지의 이런 괴벽에 대해 염증을 느끼며 자라온 아들 윌은 한동안 서로 연락조차 하지 않을 만큼 벌어져 있는 사이. 그러나 아버지의 위독한 상태를 전해듣고 다시 아버지와 마주하게 된 윌은, '진짜 아버지'를 알지 못하고, 알려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며 '아버지가 말하는 아버지'와 '진짜 아버지' 양 쪽의 세계를 탐색하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말하는 아버지'는 동화 속에 등장하는 용맹스런 왕자이자, 데이비드 커퍼필드급의 화려한 경력을 지닌 방랑아, 그리고 로맨틱한 사랑의 쟁취자이다. 그러나 '진짜 아버지'의 모습은 퇴락한 이상주의자이자 결국 이상과 현실과의 갭을 메우지 못한 채 말도 안 되는 허언만을 늘어놓게 된 '불쌍한 아버지'상. 윌은 이 두 가지 아버지를 들여다보며 '아버지 신화'의 실체를 해부해낸다. 이처럼 풍부한 함유를 띠고 있는 다니엘 월래스의 원작을 각색한 존 오거스트의 각본은, 불행히도 절묘한 밸런스를 유지해야만 할 소재에 대해 헐리우드 특유의 '온정영화'적 성격을 부여하고, 이야기의 혼란스런 구조에 대해 명확한 구성적 해결점을 제시하지 못한 채 그저 '뒤섞고', '이어붙이기'만 하고 있다. 복합적인 테마가 한 가지 이야기 속으로 제대로 녹아들질 않으며, 그저 '복합적인 테마'를 지닌 '복합적인 구조'의 '복잡한 영화'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의아스러운 것은 이 영화에서의 팀 버튼의 역할이다. 이 영화는 팀 버튼의 지난 커리어 중 가장 이질적인 - 악명높은 "혹성탈출"까지도 포함하여 말이다 - 작품이며, '팀 버튼의 영화'라기 보다 '팀 버튼적 요소를 지니고 있는 영화'에 가깝다는 인상이 강하다. 그도 그럴것이, "빅 피쉬"는 '팀 버튼'이라는 이름 자체가 상징하고 있는 세계, 즉 갈등의 불연소와 화해하지 못하는 인물들의 대립, 해결점을 찾지 못한 주인공의 내면적 갈등과 비현실적 상황에 대한 집착의 비젼에 대해 완전히 벽을 쌓고, 모두가 결국 이해와 소통의 구조를 형성시키며, 현실과 비현실의 갭에 대해 '해답'을 찾아내는 세계를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는 '팀 버튼인가 아닌가'를 결정짓는 중심요소가 누락되어 있고, 대신 그가 자신의 세계를 그려낼 때 사용하는 '비쥬얼'한 잔재주만이 간간이 - 그리고 훨씬 약화된 톤으로 -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팀 버튼이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증거는 여러 군데에서 발견된다. 그 중에서도 한 장면, 에드워드 블룸이 아들 윌의 아내에게 '아버지가 죽는 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에, 팀 버튼은 이 다소 길고, 장황한 이야기를 그 어떤 컷 백이나 플래시백 효과도 사용하지 않은 채, 액면 그대로 '대화장면'으로서만 표현해내고 있다. 연극적인 요소가 완전히 제어되어 잇는 독창적인 비쥬얼 스타일리스트가 이렇듯 가장 연극적인 상황을 연출해냈다는 사실도 의아스럽지만, 그가 이처럼 '가혹할 정도로'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까닭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팀 버튼은 과연 '변화'가 시급히 필요할 정도로 아이디어와 영감이 고갈된 작가였던가. 아니면, 그는 단순히 고정된 자기 자신에 지쳐버린 것인가. 해답이야 알 수 없겠지만, 적어도 "빅 피쉬"는 팀 버튼의 '정형화된 스타일'에 조금이라도 염증을 느끼던 관객들에게 '오래된 팀 버튼'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나를 새삼 일깨워 준 영화가 되었으며, 결국 팀 버튼이 지니고 있는 특유의 비젼 - 그의 단점들까지도 포함한 - 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그 영화는 '팀 버튼적 성격'이 약화된 영화가 아니라, '누구라도 만들 수 있는' 영화에 그쳐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분수령격 영화가 되었다. 이문원 기자 fletc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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