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제제 선정성 논란, 왜?

11월 5일, 소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출판사 도서출판 동녘은 자신의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아이유님, 제제는 그런 아이가 아닙니다”라는 제목으로 자신들의 책에 대한 해석을 제시했다.
도서출판 동녘은 “제제는 다섯 살짜리 아이로, 가족에게 학대를 받은 상처 가득한 아이이며 제제의 라임 오렌지 나무 밍기뉴는 제제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유일한 친구다”라는 이야기를 전하며 아이유가 ‘제제’를 사랑 노래로 재해석한 것에 유감을 표했다.
그리고 이런 출판사의 의견 표명에 기다렸다는 듯 여러 누리꾼들이 ‘제제’를 두고 아이유를 향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는 다분히 1차원적인 해석이고 비난일 수밖에 없다. 일단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는 소설이고,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제제가 실존인물이라면 이러한 유감 표시가 합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제’는 아무리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겼다 해도 작가가 창작해낸 가상의 ‘캐릭터’다. 가상의 캐릭터를 두고 모티브를 받아 2차 창작을 한 순간부터 원작 ‘제제’의 모든 속성을 가져올 필요가 없다.
동녘 측에서도 인정했듯, 제제에게는 ‘순수하면서도 심한 행동을 많이 하는 이중적 행동’이 존재한다. 이런 캐릭터를 가지고 모티브를 얻어 가사를 쓰는 것이 불가능한가? 어떤 창작물이든 완전무결하게 100% 없던 것을 창작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 말은 창작 안에 어떤 대상의 한 속성에서 모티브를 얻어 새로운 재해석을 이끌어내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다.
또한 그 말인 즉슨, ‘제제’라는 캐릭터에서 5살의 순수하고 상처 많은 어린아이가 아니라, ‘순수하지만 이중적인 모습을 가진 인물’을 끌어내 재해석 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애초에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상처 받은 아이가 위로받는 이야기’로 못 박는 것은 출판사로서 해야 하는 일은 아니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는 수필이 아니고, 소설이며, 소설은 누구의 어떤 해석도 틀린 것이 아니다. 단지 다른 것일 뿐이고, 그 다른 해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사과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무시하면 그만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유의 이번 앨범에는 ‘안경’이라는 곡이 담겨 있다. ‘안경’의 가사는 이러하다. ‘나는 안 그래도 충분히 피곤해 더 작은 글씨까지 읽고 싶지 않아 공들여 감춰놓은 약점을 짓궂게 찾아내고 싶진 않아요’, ‘나는 지금도 충분히 피곤해 누구의 흠까지 궁금하지 않아’, ‘무거운 안경까지 쓰지 않을 거야 나는 안 그래도 충분히 피곤해’.
이번 논란을 예상이라도 한 듯 절묘한 가사다. 이번 논란은 사실 ‘자의적으로 해석한 소설의 의미로 자의적으로 해석한 가사의 의미를 비판 한 것’이기에 논란을 일으킬 수 없는 주제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해석한 것도, 아이유의 노래 ‘Zeze’를 해석한 것도 모두 비판을 하는 쪽이다. 이제는 안경을 벗을 때도 됐다.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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