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부친상 조문부터 정종섭 사퇴까지

지난 8일 유승민 부친상 조문을 위해 정치권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가운데 빈소에서조차 ‘TK(대구·경북) 물갈이설’을 암시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한편 공교롭게도 같은 날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의 사퇴발표가 맞물리면서 청와대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미리 ‘TK지역 의원들 손보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견해까지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청와대 측은 유승민 의원을 필두로 한 현재 대구·경북 지역 의원들이 세월호 사건부터 국회법 개정 논란에 이르기까지 박근혜 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기보다 쓴 소리를 하며 당청 간 불협화음을 일으켰다고 보면서 지난 9월 박 대통령의 대구 방문 당시엔 이례적으로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들을 아무도 초대하지 않아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낸 바 있다.
◆ 유승민 부친상 빈소에 친박계 조문행렬
지난 7일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부친인 유수호 전 국회의원이 숙환 중 폐렴으로 별세하면서 8일부터 빈소가 마련된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에 여야를 막론하고 정계 인사들의 발걸음이 줄을 이었다.
특히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몰아내는 데 앞장섰던 친박계 의원들도 이날 빈소에 방문하면서 화해의 전기가 마련되는 게 아니냐는 막연한 시각도 나왔지만 ‘유승민 퇴진’ 일등공신인 일부 친박계는 여전히 냉랭한 모습을 보이며 ‘TK 물갈이’를 암시하는 발언까지 꺼내 여전히 양측의 골이 깊다는 현실을 보여줬다.
친박계 좌장으로 꼽히는 서청원 최고위원은 8일 유승민 부친상 조문을 마친 뒤 기자들이 ‘오늘 조문이 친박과 유 전 원내대표와의 화해로 보면 되느냐’고 질문하자 “그게 무슨 말인지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유 전 원내대표와 친박이 갈등한 적이 없고, 갈등할 이유도 없다”고 갈등 의혹을 일축했다.
하지만 서 최고위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를 언급하며 격분한 지난 6월 국회법 파동 당시 사태 원인이 된 유 전 원내대표의 사퇴를 적극 촉구하고 나선 바 있는데다 사퇴 이후로도 유 전 원내대표 측과 특별히 관계를 이어온 적이 없어 사실 여전히 서먹한 관계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울러 대표적인 친박 인사로 꼽히는 윤상현 전 청와대 정무특보도 이날 유수호 전 의원의 빈소를 찾았는데 그는 유 전 원내대표와 화해에 나섰느냐는 시각에 대해 “급작스런 부음의 소식을 듣고 왔을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오히려 그는 유 전 원내대표의 부친상 자리임에도 “공천에서 공정성만큼 중요한 것은 참신성”이라며 “지난번 총선 때도 대구·경북에서 60%가량 물갈이됐고 그 힘이 수도권으로 타고 올라와 과반수 의석을 차지할 수 있었다”고 ‘TK 물갈이’를 직접적으로 거론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찬가지로 같은 친박계 의원으로 꼽히는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 역시 9일 유수호 전 의원 빈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대구 지역 시민들이 똑똑하다. 내가 초선일 때 대구 의원들이 7명 물갈이됐다”고 연일 ‘TK 물갈이론’을 이어갔다.
조 원내수석은 조문 후 떠나면서도 TK 물갈이설에 대한 기자들의 질의에 “대구 지역 택시 타보면 어떤 분위기인지 다 안다”며 “대구시민들이 잘 판단할 것”이라고 말해 TK 물갈이를 지지하는 입장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런 모습에 대해 기존 TK 지역 인사들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는데 대구 수성갑 불출마를 선언한 이한구 의원은 “물갈이한다고 떠들고 다니는 게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의원은 “물갈이를 왜 하는가. 목표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괜찮은 사람이 있고 지금 있는 사람보다 훨씬 낫다고 판단되면 전략공천하는 것이 맞지만 그것도 없이 대놓고 뜬구름 잡듯 뭐하는지 모르겠다”고 ‘TK 물갈이설’에 불만을 표했다.
비박계 중진 정병국 의원도 9일 빈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TK 물갈이설’에 대해 “도대체 기준이 뭔지 잘 모르겠다”며 “자꾸 물갈이를 하면 국회를 인턴 국회로 만드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정 의원은 이어 “지금까지 매번 선거 때마다 60~70%의 물갈이를 했지만 국회가 성공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저도 초선 때는 물갈이를 주장했지만 지금 보니 인위적 물갈이는 필요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TK 물갈이’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와 별개로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총재 역시 같은 날 빈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께서 유 의원을 ‘배신의 정치’라고 하면서 질타하는 것을 TV에서 보고 내가 깜짝 놀랐고, 참 가슴이 아팠다”며 “박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선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같은 능력있고 소신있는 정치인을 내칠 게 아니라 보듬고 끌어안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이 전 총재는 자신이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총재 시절 여의도연구소장을 지내며 최측근으로서 자신을 보필한 유 의원을 각별히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날도 “유 의원은 소신 있고 능력 있는 정치인으로서 평소에 참 아끼고 사랑하는 후배이자 정치인”이라고 지칭하며 아끼는 심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또 TK 물갈이설에 대해서도 “대구는 의리와 기개, 기골의 정신으로 이 나라가 어려울 때 바로 세우고 앞길을 선도한다고 대구 시민은 모두 자부한다”며 “이러한 의리와 기개, 기골로 소신의 정치인인 유승민을 키우고 밀어줬으면 하는 게 나의 솔직한 바람”이라고 입장을 내놨다.
◆ 劉 부친 빈소에 빠진 朴대통령 조화…앙금 여전?
이렇듯 내년 총선을 앞두고 빈소에서조차 친박과의 관계에서 여전한 거리감을 보여준 가운데 유 전 원내대표가 부친상 빈소에 박근혜 대통령의 조화만 받지 않아 이 또한 여러 해석을 낳고 있다.
이는 사실상 ‘TK 물갈이’에 나서겠다는 청와대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동이란 풀이부터 박 대통령과 유 전 원내대표 사이에 여전히 풀리지 않은 앙금은 물론 유 전 원내대표의 부친인 유수호 전 의원과 박정희 전 대통령 사이의 불편한 관계까지 확대해석하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에 청와대는 9일 오전 춘추관에서 정연국 대변인을 통해 “상주 측에서 고인의 유지에 따라 화환과 부의금은 정중히 사양한다고 밝혔다. 고인의 유지와 유가족의 뜻을 존중해 조치한 것으로 이해해 달라”며 표면상 이 같은 이유를 들어 보내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이 같은 주장이 수그러들지 않는 이유는 이날 빈소엔 정의화 국회의장은 물론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 명의로 보내온 조화까지 가득 찼으나 정작 대통령 명의의 조화만 빠져있는데다 대통령 조화를 고사한 이유로 든 ‘고인의 유지’에 어떤 배경이 있었는지 유 전 원내대표 측에서도 정확한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뿐 아니라 청와대 측은 “의원 상(喪)에 누가 간 일은 없다고 한다. (청와대에서 조문 인사를) 보내고 한 전례가 없다”며 조문 계획조차 없다는 입장을 확실히 해 양측 간 불편한 관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 정종섭 행자부 장관 사퇴…‘TK물갈이’ 본격 시동?

정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근래 저의 거취와 관련해 여러 의견들이 계속되는 것을 보며 제 판단으론 국정 운영 측면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이 시점에서 사의 표명하는 것이 옳다고 결정했다”며 “장관직에 물러난 후에 국가발전과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할 생각이고, 그것이 장관직을 수행했던 사람들의 도리”라고 입장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정 장관의 갑작스런 사퇴를 두고 내년 총선 출마를 겨냥한 행보라면서도 유 전 원내대표(대구 동구을)와 이웃한 대구 동구갑 지역구에 기존 류성걸 새누리당 의원을 밀어내고 여당 후보로 출마할 것으로 전해지는 만큼 ‘TK물갈이’의 신호탄이 올랐다고 바라보고 있다.
정 장관은 이 같은 해석을 의식했는지 극도로 신중한 모습을 보였는데 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자리에서 새정치연합 김상희 의원이 “빨리 총선 준비를 하도록 청와대에서 ‘사표를 내는 게 좋겠다’고 했느냐”라 질문하자 “그런 것은 전혀 없었다”며 청와대의 출마 지시 의혹을 일축했다.
또 정 장관은 자신의 사의 표명을 ‘TK물갈이’ 신호탄으로 해석한 언론보도를 봤느냐는 새정치연합 김관영 의원의 질문엔 “못 봤다”고 답하며 거듭된 확인 질문에도 “그렇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이어 내년 총선에 출마하느냐는 질문에도 “제가 말씀드릴 사항이 아닌 것 같다”라며 즉답을 피했고, 지난 8월 새누리당 의원 연찬회에서 ‘총선 필승’ 건배사를 했다가 사과한 데 대해서도 “(당시 총선 출마 관련) 별 생각이 없다고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다만 정 장관은 당시 발언이 새누리당 공천을 받기 위한 의도에서 고의적으로 한 실수 아니었냐는 의심을 받자 “우발적으로 있었던 일이라고 말씀드렸고, 의도적으로 했다는 건 과하신 말씀”이라며 적극 부인하고 나섰다.
한편 현재 대구 지역 국회의원 12명 중 다선은 이한구, 서상기, 유승민, 주호영, 조원진 의원까지 5명이고 나머지 7명은 초선인데 여기서 불출마를 선언한 이한구 의원을 포함해 현재 물갈이 표적으로 꼽히는 초선의원들이 대거 교체된다면 TK 지역 판도에 상당한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해선 TK지역이나 서울의 강남3구 등 새누리당 당선이 유력한 지역에 대해 전략공천이 실시될 수 있어야 하는 데 김무성 대표와 비박계는 이 같은 방식은 부정적 입장을 드러낸 바 있어 선거구 획정이 끝나는 대로 공천 룰을 두고 당청 간 갈등이 재개되는 건 아닌지 벌써부터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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