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의 성과주의 임금체계 도입 방침에 은행권 들썩

17일 기업은행에 따르면 기업은행 노조는 전날 금융위원회 주도의 성과연봉제를 사실상의 퇴출제로 규정하고 용납할 수 없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기업은행 노조는 “임금체계는 노사가 자율로 결정할 사안”이라면서 “정부가 금융권의 수익성과 경쟁력 악화를 핑계로 애먼 노동자들의 월급봉투에 손을 대려고 하고 있다”고 강하게 규탄했다.
노조 측은 이 같은 정부의 행태를 ‘관치금융의 전형’이라고 규정하고 “성과연봉제 도입 계획은 곧 저성과자 퇴출제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노조는 “성과측정이라면서 사용자들의 주관적 평가 속에 노동자들의 월급봉투가 얇아지고 저성과자로 분류해 해고시키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업은행 노조는 “성과주의는 금융권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노동조합을 무력화 시킨다"며 "정부와 금융당국이 기업은행을 또 다시 희생양으로 삼겠다면 기업은행 1만 조합원은 지금 당장 금융노조와 함께 총파업을 비롯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총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은행권, 대체적으로 성과제 아닌 호봉제
기업은행 노조가 크게 반발하고 있는 성과주의 임금체계는 그간 금융권에서만큼은 거리가 멀었던 제도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전체 산업 임금수준 대비 금융업 임금수준은 2006년 129.7%에서 지난해 139.4%로 상승했다. 또한 금융업의 호봉제 비율은 2013년 기준 63.7%로 전체 산업 평균 36.3%를 크게 상회한다.
실제 금융권에서는 기본급 체계에 직능 또는 직무급을 전면 도입한 금융사가 별로 없고 대부분 이를 호봉제에 첨가해 활용하는 수준이다. 성과급 역시 개별 성과급이 아닌 집단 성과급의 형태고 대체적으로 성과가 급여에 직접적·전면적으로 영향을 주지는 않는 편이다.
호봉제에서도 고과에 따라 차등해 호봉이 올라가는 경우는 2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기본급에 성과를 반영하는 정도가 낮았다는 얘기다.
반면 최근 들어 기준금리가 역대 최저 수준을 유지하면서 국내 은행들의 당기순이익은 2012∼2013년 사이 55.3%나 감소했다. 이처럼 수익성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비효율적인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부 당국을 중심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상황이다.
특히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최근 향후 추진할 금융개혁 중 금융권의 성과주의 확산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은 바 있다. 이를 두고 금융권의 성과주의 임금체계 논쟁은 더욱 격화되는 모습이다.
◆노조 “은행업 특성상 성과제 맞지 않아”

우선 성과주의 임금체계는 은행업과 전혀 맞지 않는 점이 반대의 이유로 거론된다. 보험이나 증권은 공격적인 세일즈가 중요해 연봉제를 채택하지만 은행은 안전성과 리스크 관리를 생명으로 하기 때문에 연봉제보다는 호봉제가 적합하다는 이유다.
이는 성과주의를 채택할 경우 직원들이 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한 시도를 할 가능성이 높고 그만큼 리스크가 높아질 우려가 제기된다는 주장으로 읽힌다. 고과 점수를 높이기 위해 직원들이 고개들에게 무리하게 카드나 계좌 개설 등을 요구하게 되면 그만큼 고객들의 불편이 커지고 리스크가 큰 여신상품을 취급하는 과정에서 위법적인 방법까지 동원될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성과주의 임금체계를 도입하기 위해 필수적인 성과 기준을 마련하기도 은행업 특성상 쉽지 않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실제 증권사의 경우는 직원 1명의 책임 영역이 명확하지만 은행은 일반적으로 직원 1명이 독단적으로 수행하는 업무가 많지 않다. 특정한 성과가 났을 때 이를 어떻게 개인별로 기여도를 책정할 수 있겠냐는 얘기다.
기업은행 노조가 성명서에서 밝힌 것처럼 성과주의 임금체계가 구조조정의 수단이 되거나 임금 삭감의 방편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금융노조에 따르면 정부는 성과주의 연봉제를 ‘쉬운 해고’를 골자로 한 노동개혁 과제에 포함시켰다. 금융노조는 이를 두고 성과주의 연봉제가 사측이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정부가 인정했다는 것으로 간주하고 정부가 성과주의 임금체계를 금융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금융권에 강제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일반 행원들의 입장에서는 과연 성과가 제대로 측정될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게 당연하다. 또한 성과가 측정되면 저성과자가 자연스럽게 두각을 드러내게 되고 이는 자연스럽게 감원의 구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노조 측의 주장이다.
◆기업은행 노조 “우리가 실험대 위 개구리냐”
더구나 특히 기업은행 노조가 금융노조와 별도로 강하게 반발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다.
그간 기업은행 직원들 사이에서는 기업은행이 매번 정부정책을 가장 먼저 수행해 왔고 배당도 정부에 꼬박꼬박 지급하는 등 국책은행이라는 이유로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여기에 금융권 노조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성과주의 임금체계마저 기업은행에 먼저 도입하겠다는 정책이 금융당국에서 나오자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실제 기업은행 노조는 성명서에서 “정부는 금융공기업을 정권의 하수인으로 생각하고 차가운 스테인리스 실험대에 올려져있는 개구리 해부 실험하듯 금융공기업을 좌지우지 하고 있다”면서 “IBK는 실험대 위의 개구리가 아니다”는 표현까지 동원, 그간 쌓인 설움을 폭발시켰다.
노조 측은 “정부와 금융당국이 기업은행을 또 다시 희생양으로 삼겠다면 기업은행 1만 조합원은 지금 당장 금융노조와 함께 총파업을 비롯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총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조는 기업은행 노조는 “연수익 1조원에 육박하는 기업은행이 국책은행의 한계 속에서도 매년 15% 이상의 정부배당을 책임지고, 박근혜 정부의 핵심정책인 중소기업 지원정책도 충실하게 수행하는 등 국가적으로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성과주의 임금체계가 향후 노사 갈등의 태풍의 눈으로 떠오를 기미가 감지되면서 은행들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정부와 긴밀한 협조가 중요한 은행업 특성상 금융당국이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을 외면하기도 어렵다. 올해 금융권 CEO들이 잇따라 연봉의 일부를 반납한다든지 청년희망펀드에 잇따라 동참하고 일부 은행들에서는 가입 종용 논란까지 일었던 것도 금융권의 정부 눈치보기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NH농협금융의 경우는 성과주의 임금체계 도입에 대비해 내년 인사부터 승진 대상자 평가 항목 중 하나인 개인근무 성과평가를 명확하게 평가하기 위한 기준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김용환 농협금융 회장은 직원 인사 평가시 개인의 성과를 좀 더 구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방안을 도입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이에 올해 말부터 내년 초에 걸쳐 이뤄지는 농협금융의 2016년도 인사에서 이 같은 평가 기준이 시범적으로 적용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하지만 KB국민은행은 영업점 직원의 업무 능력과 역량을 평가하는 자가진단서비스를 도입했다가 노조의 반대로 잠정 중단한 바 있다. 인사 고과에 포함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노조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기업은행을 포함한 금융노조의 반발도 거세다. 당연히 민간은행으로서는 노사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한 일방적으로 시행하기 쉽지 않다. 결국 금융당국이 기업은행이나 산업은행 등의 금융공기업들에 성과주의 임금체계를 적용하는 과정 및 결과에 따라 민간 은행들이 성과주의 임금체계 적용 행렬에 동참할지의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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