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게이커플' 첫 공개 결혼식 치뤄
"이상철님은 박종근님을 평생의 동반자로 맞아 어떤 경우에도 항시 사랑하고..."
지난 7일 오후 1시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는 이상철(36·게이전문여행사 '딴세상' 직원)씨와 박종근(32·무직)씨가 우리나라 최초로 공개 '게이 결혼식'을 올렸다.
양가 부모님은 불참했지만 20명 남짓한 하객들이 모인 가운데 결혼식은 반지 교환과 축가 부르기 등 여느 결혼식과 다를 것 없이 진행됐고, 예식이 진행되는 동안 '남성부부'의 입가엔 행복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가족이 걱정되지만 권리 포기할 수 없어"
1년 반 전 종로 P극장에서 만나 한 달만에 동거에 들어간 두 사람은 서로를 '애기' '자기'라고 부르면서 이씨는 바깥일을, 박씨는 집에서 살림을 한다
"남과 다른 성적 정체성에 대한 부담 때문에 과거 몇 차례씩 자살을 기도한 적도 있지만 이제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이씨는 "우리 결혼식을 계기로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한 부모님께 알리지 않아 참석하지 못한 것에 대해 이씨는 "가슴 아파할 가족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걱정이지만, 권리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며 "구청에 혼인신고서를 내고, 가족도 설득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주례를 맡은 '딴세상' 대표 박철민씨(30)는 "이번 결혼식을 계기로 한국의 동성애자들이 자신들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데서 벗어나 용기 있게 사회를 향해 제 목소리를 내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혼인 신고 성공할 것"
우리나라는 아직 동성간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이들이 혼인신고서를 낼 경우, 접수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예상된다. 현재 동성애자의 결혼이나 동거가 법적으로 보호받는 나라는 네덜란드, 독일, 미국의 버몬트주 등 10여개 나라다. 두 사람은 이날 청평댐으로 1박2일간의 신혼여행을 떠났다
전날 관할 구청에 혼인신고를 하려 했으나 거부당해 8일 오전 다시 신고, 구청 관계자는 "접수는 했지만 국내에서 혼인신고는 남녀간 결혼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호적기재가 가능한지 법원과 검토해 본인들에게 결과를 통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 서부지법 호적계 관계자도 "적법한 혼인신고가 되려면 '접수'와 '수리'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현재는 접수만 된 상태"라며 "남성간 결혼을 명시한 법적 규정이 없어 수리될 확률은 낮다"고 전했다.
현재 이씨와 박씨 커플은 거부사유를 명시한 공문을 요청해 둔 상태이며 '딴생각'의 박대표는 "이번 일을 계기로 동성커플의 합법화를 위해 싸워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동성애 남성모임 '친구사이'의 최준원 대표는 "이번 결혼식은 아는 사람들끼리 쉬쉬하며 몰래 열던 동성간의 결혼식이 아닌 공개된 결혼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며 "여기서 더 나아가 두 사람이 혼인신고까지 성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외국의 '동성 법적 보호' 현황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국에선 동성결혼이 나라를 둘로 갈라놓는 '문화전쟁' 이슈가 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결혼증명서를 받는 동성커플이 줄을 잇자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결혼이란 남성과 여성의 결합'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헌법 개정을 지지한 것이다.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유력한 존 케리 상원의원은 "부시 대통령이 경제나 외교에 대해 말할 수 없으니까 보수층 결집을 노려 동성결혼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라며 비난했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동성 결혼 인정 여부를 놓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지만 유럽에서는 이미 상당수 국가들이 이를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는 자세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동성결혼을 인정한 국가는 덴마크로 지난 89년 동성간의 혼인관계를 인정한데 이어 동성 부부에게 자녀 입양권도 부여했다. 다른 북구 국가들도 90년대에 덴마크의 선례를 뒤따랐다.
프랑스(2000년), 독일(2001년), 네덜란드(2001년) 벨기에(2002년) 등도 동성 부부들의 '시민적 결합'을 인정하고 있는 국가들이다. 특히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동성부부는 자녀 양육과 생명.의료 보험, 연금, 사속 등에서 아무런 차별을 받지 않는다.
네덜란드에서는 동성 결혼이 일상적인 일이 돼 미국에서 동성 결혼을 놓고 입씨름을 벌이는 것을 오히려 의아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최근에는 동성 부부로는 처음으로 이혼을 신청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한편 아시아 지역에서는 일본과 대만이 진보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일본은 동성연애를 더 이상 정신병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다만 현실적으로 동성 부부들은 결혼 과저에서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우리나라는 보수적 성향이 강해 앞으로 박씨와 이씨의 동성부부에 대한 합법화 대응에 그 귀추가 주목된다.
/ 이성심 기자 lss@sisa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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