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정면 대응해 당 기강 세울 것”…安 “당 앞길 걱정”
하지만 문 대표가 직접 나서 현 정국을 어떤 식으로 풀 것인지 확실히 밝히지 않는 이상 총선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애매한 형태로 내홍이 지속될 우려가 있어 3일 기자회견을 열어 안 전 대표를 비롯해 조기 전대를 요구해온 비주류 측에 포문을 연 것으로 보인다.
그간 재신임 투표, 중앙위 표결 등 당 내홍이 불거질 때마다 승부수를 던져 국면 전환을 시도해온 문 대표의 ‘정면돌파’ 카드가 이번에도 작용할 수 있을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安 ‘전당대회’ 도발에 ‘칼’ 뽑아든 문재인
‘문·안·박’ 연대마저 거부당한 채 ‘전당대회’로 결판을 내자는 안 전 대표의 승부수에 드디어 문 대표가 팔을 걷어 붙였다.
이 같은 분위기는 이미 3일 오전 새정치민주연합 전략기획위원장을 맡고 있는 진성준 의원이 평화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문·안·박 연대라고 하는 제안과 전당대회란 제안의 간극이 크다”며 사실상 문 대표 측에서 전당대회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해 일찌감치 감지된 바 있다.
당시 진 의원은 “문재인 물러나라 하는 건 당 기강과 질서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문 대표 중심으로 당 체제를 정비해서 총선을 준비해야 한다”고까지 발언해 이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문 대표가 내놓을 입장을 미리 보여줬다.
다만 진 의원은 문 대표 독주 체제 시 안 전 대표가 탈당할 가능성과 관련해선 “안 의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실 리가 없다”며 의외의 자신감을 보였는데 이는 ‘문·안·박 연대론’이 안 전 대표의 ‘전대론’과 달리 대결이 아닌 단결에 초점을 뒀으며 비주류인 민집모조차 전대 개최 주장은 없었다는 데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이 같은 여러 이유들을 바탕으로 계산이 끝난 문 대표는 이날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작심한 듯 안 전 대표와 비주류를 향해 “이제 이 지긋지긋한 상황을 끝내야 한다”는 다소 자극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회견문 한 마디 한 마디에 자신의 심경을 반영한 듯 “국민들은 우리 당의 상황에 ‘진절머리’를 내고 있다”고 운을 뗐다.
문 대표는 “전당대회는 해법이 안 된다”며 안 전 대표 측의 주장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는데 그 이유에 대해 전대는 한 명을 선택해야 하므로 단합이 아닌 대결을 뜻하며 물리적으로도 총선을 목전에 둔 시점에 당권 경쟁할 시간도 없고 ‘당 분열’만 일으켜 공멸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새정치연합 내 의원들만을 대상으로 한 안 전 대표의 혁신전대보다 더 광범위한 ‘통합전대’를 거론하며 당 외부세력과 통합하기 위한 통합전대의 경우에만 의미가 있다고 맞받아쳤다.
문 대표는 이어 ‘문·안·박 연대’의 가능성은 여전히 열어두겠다고 하면서도 현 시점에선 “더 이상 안 되는 일에 매달려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고 선을 긋는 한편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총선 준비’에 박차를 가하겠다며 ‘시급한 총선 당위성’을 앞세워 사실상 문 대표가 주도하는 현재의 독주 체제로 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장차 문 대표 유일 체제에 대한 당내 일각의 반발은 차치하고 우선 총선체제에 돌입해 조속히 총선기획단과 총선정책공약준비단, 호남특위, 인재영입위, 선대위 등을 순차적으로 구성하겠단 복안을 내놓았는데, 총선 전 여야 1:1 구도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당내·외로 단합·통합하려는 시도는 이어갈 것이란 뜻을 내비쳤다.
다만 총선 승리를 위해 필요한 요건으로 문 대표가 내세운 ‘혁신’과 ‘단합’이란 키워드와 관련해 어떤 방법론을 통해 이를 이뤄낼 것인지 설득력이 부족했는데 자신이 ‘정면돌파’를 선언한 상황에서 사실상 물 건너 간 ‘단합’을 안 전 대표가 ‘부족하다’며 혹평하는 ‘혁신위’를 내세워 이뤄내겠다고 주장하고 있어 일각에선 그 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날 회견에 대해 ‘단합’을 ‘혁신’이란 단어로 버무려 어물쩡 넘어가는 인상이 없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지만 분명한 건 어떤 형태로든 최근 같은 내홍이 재현되기 어려울 것이란 부분은 명백해졌다.
문 대표는 “당을 흔들고 해치는 일들도 그냥 넘기지 않겠다”며 자신과 대결하고자 하는 시도를 사실상 해당행위로 규정했는데 “당의 화합을 위해 용인해야 할 경계를 분명히 하고 그 경계를 넘는 일에 대해선 정면 대응해 기강을 세우겠다”고 ‘칼’을 뽑아 들어 당내 비주류는 이제 순응과 탈당 중 양자택일해야 하는 기로에 놓이게 됐기 때문이다.
◆ 안철수 등 비주류 “당 미래 안 보여” 우려
‘문·안·박 3자 공존’을 마지노선으로 설정했던 문 대표가 안 전 대표의 ‘전당대회’ 제안에 이 같은 격렬한 반응을 보이자 비주류를 중심으로 탄식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그간 최고위원회의에서 문 대표를 저격해왔던 비주류 중진 주승용 최고위원은 이날 문 대표의 기자회견 뒤 개인 명의의 짧은 성명을 통해 “당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며 “더 이상 할 말도 없다”는 맥이 풀린 모습을 보였다.
현재 문 대표의 지지율이 저조한 호남권을 대표하고 있는 주 최고위원은 앞서 문 대표의 2선 퇴진을 전제로 내년 1월 임시전당대회를 통해 총선비상지도부를 구성하자고 제안한 바 있는데 지난 2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총선까지 시간이 얼마 없다. 당 분열을 수습하고 총선 대비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지금이 결단의 타이밍”이라며 문 대표를 압박한 바 있다.
하지만 이날 기자회견에서 문 대표가 통합 전당대회 외엔 수용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해 안 전 대표의 혁신전대는 물론이고 사실상 비주류 측에서 제안한 모든 전대 제안이 거부된 것이라 해석돼 주 최고위원이 이런 반응을 내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또 다른 비주류 중진이자 호남을 대표하는 박지원 전 원내대표 역시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당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민심과 당심을 저버린 문 대표의 회견은 참으로 실망스럽고 안타깝다”며 참담한 심경을 드러냈다.
박 전 원내대표는 이어 “지금 이 순간 최고의 혁신은 통합”이라며 “통합해야 총선에서도 승리하고 정권교체를 이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박 전 원내대표는 “문 대표의 희생과 결단이 없는 일방적인 혁신이 당의 혼란과 위기를 수습할 수 있을지 크게 의심된다”며 “거듭 문 대표의 결단을 촉구한다”고 이미 의미 없어진 주장을 되풀이했는데 주류나 비주류 측 모두 똑같이 ‘통합’과 ‘혁신’을 외치면서도 진정한 ‘공존’이 아니라 그 중심에 누가 서는가를 두고 ‘대결’ 양상을 띠어 야권 갈등이 지속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날 문 대표의 표적이 됐던 당사자, 안 전 대표 역시 “당의 앞길이 걱정”이라며 “당을 어디로 끌고 가려는지 걱정된다”고 주 최고위원과 비슷한 입장을 전했다.
문 대표의 기자회견 직전까지만 해도 안 전 대표는 이날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문 대표 주위에서 대표의 눈과 귀를 막고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이 있다. 혁신의 대상들이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며 문 대표 자체에 문제의 원인을 두고 대립각을 세우려하기 보다 문 대표의 주변이 문제라는 애매한 제스처를 취했다.
이는 전대 제안이 수용되기 전 상대를 자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향후 자신이 주도권을 잡더라도 문 대표 측과 화합할 것을 감안해 문 대표 본인에 대한 공격은 자제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문 대표의 기자회견이 있기 하루 전인 2일 안 전 대표는 통합신당 창당을 준비 중인 무소속 박주선 의원의 요청에 응해 회동을 가졌는데 박 의원이 신당에 참여하라고 제안한 데 대해 안 전 대표는 “깊이 고민해보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져 적지 않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박 의원과의 회동 당일만 해도 안 전 대표는 “혁신전대를 수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문·안·박 공동지도체제’ 보다 높으니 수용해야 할텐데”라며 여전히 일말의 기대를 갖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는데 이에 박 의원은 “문 대표는 절대 혁신전대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해 마치 문 대표의 반응을 예견한 듯 했다.
안 전 대표의 제안이 사실상 거부된 가운데 앞으로 그가 선택할 길은 그리 많지 않지만 혹여 총선을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는 극단적 상황에 이를 경우 문 대표에게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 文 ‘당 기강 잡기’ 벌써 시작?
‘경계를 넘는 일에 정면 대응해 당 기강을 세우겠다’던 문 대표의 이날 회견이 허언이 아닌지 그는 곧바로 “도당위원장 유성엽, 황주홍 의원이 당무감사를 거부한 것은 해당행위”라며 엄중히 조치할 것을 지시했는데 ‘호남 비주류’로 꼽혀온 두 의원은 최근 당내 공직자선출평가위원회의 감사에 불응해 온 바 있다.
문 대표는 이에 그치지 않고 최근 아들의 로스쿨 졸업시험 구제 압력을 넣었단 의혹을 받는 신기남 의원과 자신이 위원장으로 있었던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산하 기관들에 자신이 쓴 시집을 강매했다는 논란을 일으켜 위원장직을 자진사퇴한 노영민 의원에 대해서도 당무감사원이 철저히 조사해 윤리심판원에 회부할 것을 요청했다.
새정치연합 김성수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문 대표는 두 의원이 ‘조사 결과 사실관계에 따라 합당한 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당 윤리가 바로 설 것’이라고 말했다”며 “문 대표는 ‘친노든 친문이든, 비주류든 원칙 앞에 예외는 없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밖에도 문 대표는 투자업체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는 김창호 전 분당갑 위원장에 대해서도 출당조치까지 언급하며 신속하고 강력한 방안을 강구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이날 회견이 끝나기 무섭게 곧바로 시행된 ‘사정 광풍’이 일인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당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심산인지, 아니면 총선을 앞두고 국민들에게 어필하기 위한 ‘윤리 세우기’인지, 문 대표의 칼날이 과연 어디까지 향할지는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시시포커스 /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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