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화 “연말 선거구 획정만 직권 가능” - 黨靑 “쟁점법안도 상정해야”

다만 직권상정 권한을 가진 정의화 국회의장이 ‘여야 합의’를 통해 법안 처리해야 된다는 의회주의에 입각한 원칙론을 고수하고 있어 갈 길 바쁜 정부여당에선 정 의장에 대한 ‘탄핵’까지 거론하며 연일 온갖 압력을 가하고 있다.
문제는 여당의 협상 파트너인 새정치민주연합 역시 당 내홍으로 어수선한 상황인데다 가장 시급한 선거구 획정 문제와 관련해서도 곳곳에서 새누리당과 이견 차를 보이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합의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에서도 직접 나서 민생 법안에 대해 국회의장이 직권상정 권한으로 처리해달라고 요구하면서 연말 국회는 각종 법안들의 직권상정 여부를 놓고 또다시 논란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 與, 의장 향해 연일 ‘직권상정’ 촉구
끝이 보이지 않는 여야 대치로 인해 연말이 다가오는데도 주요 법안 처리가 지지부진하자 새누리당은 국회의장이 새누리당 소속임을 감안해 ‘직권상정’을 일종의 승부수로 띄웠다.
하지만 정작 권한을 쥐고 있는 정의화 의장이 직권상정을 가급적 행사하지 않을 뜻을 밝히면서 상황은 여야 간 대립보다도 여당과 국회의장의 기 싸움 양상으로 나아가는 모양새다.
특히 청와대와 보조를 맞추고 있는 새누리당 내 친박계 고위인사들을 중심으로 정 의장에게 ‘직권상정’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계속 압박을 가하고 있는데 정 의장 역시 쉽게 물러설 의사가 보이지 않아 한 치 앞도 알기 어려운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새누리당은 15일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부터 정의화 의장을 겨냥해 “국민들의 아우성을 의장이 직접 들어봐야 한다”며 경제활성화법 등 쟁점법안을 속히 ‘직권상정’하도록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 또 선거구 획정과 관련해서도 정 의장에 직권 상정할 것을 촉구했다.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는 “노동개혁 관련 5개 법안은 청년 실업을 막기 위한 것이고,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69만개의 일자리를 만든다”며 “의장은 국회가 입법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으면 이 문제를 풀어줄 의무가 있다”고 호소했다.
조 원내수석은 이어 “의장이 청년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봐야 한다”며 “그러고도 직권상정을 못하겠다고 하면 수용하겠다”며 몰아세웠다.
뒤이어 김정훈 정책위의장 역시 정 의장에게 “야당 내홍의 쓰나미로 선거구 획정과 12월 임시국회가 모두 쓸려가고 있다”며 “오늘도 본회의가 불발되면 직권상정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정책위의장은 무엇보다도 선거구 획정이 이뤄지지 못한 채 내년으로 넘어갈 경우 이른바 ‘선거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선거구 법안이 담긴 공직선거법이 공표되려면 국무회의를 거쳐 관보에 게재돼야 하는데, 늦어도 12월 28일 본회의를 통과하고 29일 국무회의에서 의결, 30일 관보에 게재돼야 선거구가 없어지는 불상사를 막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정개특위도 선거구 획정을 못한 채 마감될 예정”이라며 “예비후보들은 기존 선거구를 바탕으로 후보를 등록하고 선거운동을 하지만 선거구 범위가 늘어난 후보들은 선거구 획정이 늦어져 손해를 본 만큼 문제제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고심했다.
그의 이 같은 우려는 정개특위가 활동시한인 15일까지 선거구 획정에 대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만료되고 연말까지도 여야가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한다면 이날부터 시작된 내년 총선 예비후보 등록조차 모두 무위로 돌아가고 기존의 전국 선거구가 모두 사라지는 한편 선거 사무소나 선거 후원금까지 모두 불법으로 규정돼 폐쇄 및 국고 환수 조치가 일어나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게 된다는 상황을 감안한 데 따른 것이다.
◆ 정의화 “연말 선거구 획정 3개안 직권상정”
그간 직권상정에 대해 즉답을 피해오던 정 의장도 이 같은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에 부담을 느꼈는지 이날 오전 국회로 출근하던 중 기자들과 만나 “오늘부로 정개특위가 만료되면 본회의가 못 열리지 않나. 그렇게 되면 여러 상황 점검을 안 할 수 없다”며 적어도 ‘선거구 획정’에 대해선 직권상정을 할 수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 자리에서 그는 시일에 쫓겨 결국 등 떠밀리듯 직권상정하게 됐다는데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는데 “의장이 결단해야 하는 상황이 다가오는 것 같다”며 “법적으로 비상사태라고 해서 자타가 인정할 수 있는 시점이 돼야 하니까 (직권상정 시기는) 연말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정 의장은 직권상정 할 선거구 획정안에 대해선 “한 3가지 정도를 생각할 수 있다”며 “여야가 주장하는 안과 이병석 중재안 그런 등등이 있다”고 설명했는데, 이병석 중재안과 관련해선 “이종걸 원내대표가 (정당득표율의 의석 수 보장 비율로) 40%를 이야기한 모양이던데 내가 문재인 대표에게도 40%까지 생각해보라 말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이 직권상정을 해주지 않아온 데 대해 새누리당 일각에서 국회의장 탄핵까지 거론한 것과 관련, “직무유기를 안 한 사람에게 직무유기라고 말하는 것은 배설 아니냐. 말로써 함부로 배설하지 말라”며 격앙된 반응을 드러냈다.
정 의장은 ‘선거구 획정’에 대해선 불가피하게 직권상정 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쟁점법안까지 직권상정 해야 한다는 새누리당의 주장에 대해선 “내가 갖고 있는 상식에는 안 맞는 이야기”라며 “의장을 압박하는 수단이고 그걸 통해 국민들이 오도할까 걱정”이라고 해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에서 쟁점법안을 정 의장의 직권상정을 통해 처리하려는 이유는 현재 여당이 통과시키고자 하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기획재정위원회), 테러방지법(정보위원회), 북한인권법(외교통일위원회), 기업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산업통상자원위원회) 등 4개 법안이 각 상임위를 넘는다고 해도 야당이 위원장(새정치연합 이상민 의원)을 맡고 있는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막힐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4개 법안 중 원샷법으로 불리는 기업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 외엔 여당이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어 단독 처리 방안을 모색하곤 있으나 법사위원장인 이상민 의원이 상임위에서 ‘합의 처리’할 것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법사위를 거치지 않기 위해 정 의장에게 ‘심사기일 지정’을 요청할 복안을 갖고 있었는데 정 의장이 ‘쟁점법안’ 직권상정엔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뜻대로 풀리지 않고 있다.
◆ 청와대 “先 쟁점법안 後 선거법 처리해야”
이렇듯 직권상정에 대한 정 의장의 소극적인 자세로 ‘쟁점법안’에 대한 직권상정은 어려워 보이자 청와대까지 직접 나섰는데 전날 박근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주요법안 처리가 지연되고 있는 국회를 향해 “존재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강도 높게 비판한데 이어 이날은 오전부터 국회로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이 찾아와 노동법, 경제활성화법, 테러방지법 등을 모두 직권상정해달라고 정 의장에게 요구했다.
현 수석은 “선거법이나 테러방지법, 경제활성화법, 노동5법도 직권상정하기엔 똑같이 (요건이) 미비한데 선거법만 직권상정한다는 건 국회의원 밥그릇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라며 “굳이 처리하겠다면 국민들이 원하는 법들을 먼저 통과시켜 준 뒤에 선거법을 처리하는 순서로 하면 좋겠고 그게 힘들다면 이 법들과 선거법이 동시 처리돼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입장을 내놨다.
그는 ‘입법 비상사태’를 내세워 선거법을 직권상정할 수 있다고 정 의장이 밝힌 것과 관련, “(내년부터 정년연장으로) 청년고용절벽이 예정돼 있고 미국 금리인상으로 우리 경제가 어려워지는 것은 어떻게 할 건가. 테러도 예고하고 생기나. 이 또한 (선거법과) 똑같은 논리로 비상상황이니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되지 않겠느냐”라며 테러방지법과 경제활성화법 등을 직권상정하지 않으려는 정 의장의 태도에 불만을 표했다.
다만 현 수석은 쟁점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여부에 대해선 “대통령이 야당을 적게 만난 것이 결코 아니지 않나”라며 “지금 상황에서 야당 대표를 불러서 만나자고 한다면 어떤 상황이 되겠느냐”라고 일축해 더 이상 직권상정 외엔 대안이 없다는 의사를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한편 당청의 파상공세에도 어떻게든 여야 간 합의처리라는 소신을 굽히지 않는 정 의장은 이날 오전 양당 지도부를 모두 국회의장실로 불러 선거구 획정은 물론 쟁점 법안도 여야가 임시국회에서 논의해 결정해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은 ‘선거구 획정’에 대해선 입법 비상사태를 막기 위해 직권 상정할 수 있다는 정 의장의 발언까지 문제 삼으며 원천적으로 직권 상정이 불가하다는 한 발 더 나아간 입장을 고수해 정 의장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이날 회동에서 “정 의장이 얘기한 입법 비상사태도 무슨 말인가. 전 세계에 그런 말은 없다”며 “입법 비상사태는 아니지만 불가피하게 직권상정을 하려는 건 피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즉, 국회선진화법에 따르면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의 경우, 의장이 각 교섭단체대표의원과 합의하는 경우, 위원회가 이유 없이 그 기간 내에 심사를 마치지 아니한 때 등의 경우에 한해 안건에 대한 심사기간을 국회의장이 지정하고 직권 상정할 수 있다면서 야당은 이 중 정부여당의 주장은 직권상정 요건 중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반면 여당 측에선 직권상정 요건들 중 국가비상사태를 ‘입법 비상사태’, ‘경제 위기’ 등으로 확대 해석해 선거구 획정이나 경제활성화법 등을 직권 상정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어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현 정국이 계속되는 이상 ‘직권상정’을 둘러싼 논란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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