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기업 길들이기 수단으로 세무조사가 이용될 정도였으니 세무조사가 갖는 힘은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종종 국세청이 경기가 침체된 업종에는 4~5년마다 이뤄지는 정기 세무조사를 자제하겠다고 밝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단순히 ‘내가 떳떳한데 뭐 어쩌겠어’라는 논리는 통하지 않는 것이 바로 세무조사다.
이처럼 세무조사에 대한 부담감이 막대한 상황에서 기업들은 이중 세무조사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로 한 번 더 곤욕을 치르고 있다. 바로 해당 기업의 본사와 사업장 등이 위치한 지역의 지자체가 국세청과 별도로 세무조사를 할 수 있는 현 규정 때문이다. 즉 국세청 세무조사를 신경쓰느라 정신없을 기업들이 지자체 세무조사까지 응해야 한다는 얘긴데 심지어 전국 곳곳에 사업장을 갖고 있는 기업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세무조사를 받을 가능성까지 있다.
원래부터 지자체가 세무조사권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올해 처음 적용됐다. 정부는 지난 2013년 말 지방세법을 개정하면서 지방세를 독립세로 변경하고 과세표준 결정 권한을 올해 4월 신고분부터 지자체로 넘겼다. 과세표준이 지자체로 넘어갔다는 얘기는 기업들이 사업장이 소재한 지자체에 신고 및 납부해야 하는 의무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곧 이는 신고 및 납부의 내용에 대한 옳고 그름을 감독하는 세무조사권도 지자체에 넘어갔다는 얘기가 된다.
가뜩이나 감시와 견제의 측면에서 중앙 정부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는 지자체가 이 개정안으로 인해 또 하나의 막대한 칼을 손에 쥔 꼴이다. 기업들은 과세처분의 적법성을 다툴 경우 이전에는 국세청만 상대하면 됐지만 현행 체계에서는 사업장이 위치한 모든 지자체를 상대로 불복청구를 제기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 상대 지자체별로 소송 결과가 다를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야말로 ‘카오스’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코스피 상장기업 300개 업체 중 89.9%가 지자체의 중복 세무조사가 경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다고 하니 기업들이 느끼는 부담감이 얼마나 클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특히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서도 중소기업 518개 중 77.2%가 중복 세무조사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고 한다. 대기업들은 그렇다쳐도 나라의 근간인 중소기업들까지 중복 세무조사 우려로 경영에 제약을 받는 일이 있어서야 되겠는가.
물론 세무조사 자체가 문제라는 얘기는 아니다. 어떠한 기업이든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당하게 소득을 신고하고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세무조사가 갖는 힘은 법적인 취지를 뛰어넘은 지 오래고 이를 중복으로 받게 하는 것은 사실상 옥상옥 규제나 다름없다. 기업활동을 너무 풀어줘도 문제지만 너무 옥죄기만 하는 것도 문제다.
지자체가 과거 국세청 및 정부의 못된 관행을 따라할 우려도 크다. 기업 길들이기의 수단으로 세무조사를 악용한다거나 세수 확보의 목적으로 무리한 추징금을 부과할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지자체에 대한 관심과 견제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현 지방자치제도 특성상 지자체 세무조사에 불순한 의도가 스며드는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기업들의 곡소리가 나오면서 최근 국회에서 세무조사권을 다시 국세청으로 일원화하는 지방소득세법 개정안이 심의되기도 했지만 결국 지자체들의 의견을 받아들인 야당의 반대로 심의가 무산됐다. 행정자치부는 앞서 지자체에 내년 말까지 세무조사를 유예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미 경북의 한 지역에서는 벌써 중복 세무조사 사례가 발생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지자체가 세무조사권을 행사하는 나라는 단 한 곳도 없다고 한다. 경제효과 측면에서도, 과세 정책의 신뢰 면에서도 마이너스 요소다. 지자체에게 제어할 수 없는 권한을 주는 것까지 지방자치제도의 취지는 아닐 텐데 국세청을 두고 지자체가 굳이 세무조사권도 갖고 있어야 하는지 아직은 납득이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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