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 한일 공동합의, 역풍 맞나
‘위안부 문제’ 한일 공동합의, 역풍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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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 양측, 합의안 해석부터 ‘불협화음’ 나며 논란 확산
▲ 지난 28일 한일 외무장관이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최종 해결하는 것과 관련, 합의안을 도출한 데 대해 일본 정부의 책임과 소녀상 철거 등 민감한 부분을 놓고 양국 간 다른 해석이 나오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지난 28일 양국 정부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을 대표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협상을 벌인 끝에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양측의 합의사항을 발표하며 문제가 해결됐다는 취지로 협상 내용을 설명했다.
 
정부는 이와 관련, ‘일본 정부의 책임을 통감한다’는 부분이 들어갔다는 점에서 과거 고노 담화나 무라야마 담화보다 진일보한 결과라고 평가했지만 일본 언론을 통해 협상 내막이 전해지는 한편 회견 직후 일본 측 협상 대표인 기시다 외무상이 우리 측의 인식과는 상이한 발언을 이어가면서 논란의 불씨가 지펴졌다.
 
특히 생존해있는 위안부 할머니들까지 피해 당사자에 사전 고지조차 없이 나온 협상 결과에 대해 인정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한편 합의 내용의 몇몇 문구를 두고도 양국이 다른 해석을 내놓는 등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있어 논란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 日 ‘책임 통감’, 법적인가 도의적인가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양국 외교장관 회담 결과로 나온 합의안 중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일본 정부의 책임을 통감한다’는 내용이다.
 
그간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정부와 군이 직접 조직적으로 나서서 여성들을 위안부로 강제동원 했다는 사실을 줄곧 부인해 온 일본정부는 과거 ‘도의적 차원’에서 책임을 느낀다는 수준에서 매듭지으려고 하면서 민간 성금과 혼재된 형태의 아시아여성기금을 조성해 일본 정부의 책임을 희석·완화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이번 회담 결과에는 강경 극우파로 ‘위안부’의 실존 자체를 인정치 않으려 했던 아베 총리가 정부 수반인 총리대신 명의로 ‘사죄’한다는 내용이 담겨 비록 미국 및 국제여론의 압박에 밀려 부득이하게 내놓은 사과라고 하더라도 과거와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라고 평가됐다.
 
또 일본군위안부로 강제동원된 할머니들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약 100억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해 지난 95년 민간 모금 형식으로 발족된 ‘아시아여성기금’과 달리 전액 일본 정부의 예산으로 구성되며 사업 운영 주체도 우리 측이 맡게 된다.
 
이는 지난 2012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한일 양국의 타결책으로 꼽혔던 ‘사사에 안’이 의료비나 간병비 명목의 자금지원에 머물렀던 데 반해 이번엔 ‘위안부 피해자 명예·존엄 회복 사업’ 명목까지 반영되고 있어 보다 세심해졌다고도 평가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이번 회담에서 상당히 진전된 결과를 내놓았다고 정부여당이 자평하는 것은 일견 타당해 보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는 부분에 대해 도의적인지 법적인지 명확히 해두지 않아 논란의 여지를 남겼단 점인데, 일각에선 그동안 도의적 차원을 강조해 정부의 직접적 책임을 회피해 온 일본 측에서 과거 담화에서 ‘도의적’이란 명확한 표현을 넣었듯 이번에 ‘법적’이란 문구를 명확히 넣음으로써 반발할 국내 여론이나 향후 합의 파기 상황 등을 고려해 불명확한 표현으로 남겨뒀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다른 논란을 남긴 부분은 합의안의 마지막 항목인 3항인데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란 부분과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본 문제에 대해 상호 비판하는 것을 자제한다’는 부분으로 일본 측 역시 크게 주안을 뒀을 부분으로 꼽히고 있다.
 
이는 29일자 일본 요미우리 신문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이란 조건을 반드시 관철시키라고 협의대표에 지시하면서 해당 문구가 들어가지 않으면 교섭을 그만두고 돌아오라고 했을 만큼 일본 측 의지가 크게 반영된 문구로 밝혀진 바 있다.
 
이 3항의 ‘불가역적’(변하지 않는) 이 적용되는 범위는 합의안 사항 중 일본 정부의 책임을 언급하는 한편 현직 총리의 일회적 사과가 담긴 부분, 2번째 항인 10억엔 규모의 기금 조성 조치라는 부분이 전부로, ‘일본의 번복 가능성’을 우려한 미래까지 적용되는 부분이 아닌 현 시점의 사과 및 합의 조치 이행만을 강조하고 구속한다는 점에 그쳐 시민사회에선 ‘최종해결안’이라기에 미흡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즉, 그간 한일 간 관계가 어그러진 이유는 일본 측이 과거에 사과를 했다가도 정권이 바뀌면 이를 뒤엎는 행보를 보이는 것에 기인하고 있는데 일회성 사과로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향후 다른 일본 총리가 번복할 가능성까지 방지하지 못해 사실상 10억엔 규모의 기금만 받고 무마하는 것이란 혹평까지 일고 있다.
 
이런 반응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29일 “불가역적 해결은 쌍방에 적용되는 상호적인 것”이라며 “사실 불가역적은 우리가 먼저 제기한 것”이라고 입장을 내놨다.
 
이 당국자는 합의문 상엔 불가역적 해결의 전제조건으로 한일 공동 위안부 기금 조성만 명시됐지만 내용상으론 포괄적으로 적용된다고 강조하면서 일본 측이 이번 합의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면 불가역적 조항도 폐기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근거에 대해서는 뚜렷한 설명을 내놓지 못해 확대되고 있는 논란을 잠재우지 못했다.
 
◆ 위안부 피해자, ‘배상’ 아닌 ‘보상’ 받아들일 수 없어
 
이런 허점으로 인해 일부 시민단체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이번 합의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사태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29일 외교부 청사와 주한일본대사관이 위치한 광화문 일대에는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 등 시민사회단체가 나와 “한국이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을 세우고 일본이 10억엔 기금을 출연하는 방식은 가해자로서 배상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들이 요구했던 건 ‘출연금’이 아니라 ‘배상’”이라며 정부의 협상 결과를 굴욕적 야합으로 깎아내렸다.
 
이용수 할머니 등 위안부할머니들도 서울 마포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실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보상은 ‘너희가 돈 벌러 가서 불쌍하니까 조금 준다는 것’이고 배상은 누군가가 죄를 지었으니 그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것으로 분명한 차이가 있다”며 정부의 협상 결과에 불만족스럽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들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듯 일본 측 협상대표인 기시다 외상은 28일 일본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일 간 합의 사항인 재단 설립의 성격에 대해 “배상은 아니다.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치유하기 위한 사업을 하는 것”이라고 답해 논란을 부채질했다.
 
정부는 이 같은 반발을 진화하기 위해 위안부 할머니들이 있는 서울 연남동의 정대협 쉼터와 경기도 광주의 나눔의 집에 각각 임성남 외교부1차관과 조태열 외교부2차관을 급파해 해명에 나섰으나 할머니들의 반발 속에 소득 없이 돌아섰다.
 
◆ 우리 정부, 일본 언론보도에 진실공방 이어
 
▲ 28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이번 한일 간 합의안에서 양국 관계를 고려해 위안부 소녀상에 대한 적절한 방안을 해당 시민단체와 협의해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일본 측 요구를 수용해 소녀상 철거에 나서겠다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어났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이런 상황에서 이날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은 양국 외교장관 회담 후 공식 합의문 없이 구두 발표 형식을 취했으며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는 이례적 행태를 보인 이유에 대해 국내 여론 동향을 우려한 한국 측의 요청으로 합의문서 작성을 보류하게 된 것이라고 보도하면서 합의 결과를 둘러싸고 한층 더 격론이 벌어졌다.
 
이 같은 일본언론의 보도내용에 대해 정부에선 “공동 기자회견은 공식 효력을 갖는 것”이라며 반박하고 나섰지만 이미 논란은 합의안에 나온 ‘소녀상 처리’ 문제로까지 번지면서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지난 28일 윤병세 장관이 표명한 우리 정부의 입장 표명 내용 중 2번째 항목인 ‘우리 정부가 일본 공관의 우려를 인지해 (소녀상)관련단체와의 협의하에 해결되도록 노력한다’는 부분은 이날 새로운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는데, 아베 총리가 협상 전 ‘불가역적’ 문구 포함과 더불어 ‘소녀상 문제 해결’도 강조했었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정부가 일본 측 요구를 수용해 소녀상을 철거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일본 측의 우려 표명이 있었으니까 그에 따라 관련 단체와 협의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해 소녀상 이전을 약속한 건 아니라는 입장을 내놨지만, 일본 측은 기세를 타고 일본 대사관 앞의 소녀상 철거는 물론 합의안에 언급되지 않았던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신청’을 한국정부가 보류한다는 데에도 이면 합의했다고 각종 언론을 통해 여론전을 펴면서 외교부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앞서 기시다 외무상이 윤병세 장관과의 회담에서 이 문제를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고, 그가 회담 뒤 한국이 등재신청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힌 데 대해 29일 외교부는 이 같은 일본 언론의 보도는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하며 “일본 측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표명해 오고 있으나 이 사안은 민간 주도로 추진 중인 사안”이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이처럼 정부의 지속적인 해명과 반박에도 불구하고 합의안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이에 대한 한일 양측의 해석이 벌써부터 상이하고 논란은 점차 확대되는 역효과가 나면서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담판이 오히려 양국의 여론을 자극해 갈등을 초래하는 기폭제가 된 것 아닌지 우려하는 시각도 점증하고 있다.[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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