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원숭이의 해, 지자체들 거듭나길
붉은 원숭이의 해, 지자체들 거듭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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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청양의 해가 저물어 가고 2016년 붉은 원숭이의 해가 서막을 앞두고 있다. 원숭이는 인간과 가장 많이 닮은 영장동물로 꾀가 많고 재주에 능하며 천부적인 재질을 지니고 있다. 또한 오래 살고 자식과 부부간의 극진한 사랑이 사람에 못지 않아 우리 민속에서는 원숭이를 장수와 가족애의 상징으로 여겨왔다고 한다.
 
특히 2016년은 60갑자 상 붉은 원숭이의 해다. 일견 우리나라 정서에는 붉은색이 친화적인 느낌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지만, 천간에서 말하는 적색은 밑에서 크게 일어나는 불길과 같아 모든 것을 태우는 강력한 양의 기운을 의미하고 강하게 뻗어가는 기운과 열정을 상징한다고 하니 그만큼 새해는 모든 면에서 역동적인 한 해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성년을 맞은 지방자치 역시 새해에는 많은 논란을 겪은 2015년에서 더욱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지방자치 20주년을 맞은 2015년이었지만 전반적으로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관행들은 여전했다. 불투명한 운영이나 공정성을 잃은 정책 등도 마찬가지다. 지방자치의 날에 박경철 익산시장이 당선무효형을 받았던 것은 어렵사리 되찾은 지방자치제도가 처한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일부 지자체들이 모범사례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지방자치의 취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했던 한 해였다.
 
많은 지자체들이 주민들의 세금을 아까워하지 않고 방만 운영을 일삼고 있다. 선심성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물론이고 초호화 청사를 지어 관리비용으로 세금이 줄줄 새나가는 것도 예사다. 과거 판공비라고 불렸던 업무추진비는 여전히 지나치게 많다. 중앙 정부에는 돈이 없다고 읍소하면서 뒤로는 선심성·소모성 축제를 경쟁적으로 개최한다. 오죽했으면 정부가 지자체 부채의 제1원인이 무분별한 대형 행사와 축제라고 지적했을까. 지자체가 이러니 지방공기업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지방 부채는 어느새 100조원을 돌파했다. 새해에는 많은 지자체들이 예산 절감 의지를 강하게 보여주길 바란다.
 
늘상 그래왔지만 어김없이 지자체 공무원들의 비리와 부패도 끊이지 않았다. 특정 세력과 유착해 금품을 수수하거나 편의를 봐주는 행태를 비롯해 산하기관 및 유관기관, 지방공기업에는 낙하산 인사가 판치고 있다. 1년에 한명 꼴로 기초단체장이 자리를 잃고 있다고 하니 비리와 부패 근절은 여전히 요원하다. 하지만 지자체를 견제할 수단은 자꾸만 사라져 간다. 자체 감사기구는 지자체장의 막강한 영향력 속에서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기 일쑤다. 예전엔 감사원이 정기 감사를 실시하기도 했지만 공무원들의 업무 과중 논란 속에 지자체 감사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감사원의 기관운영감사를 10년 간 단 한 번도 받지 않은 지자체가 226곳 중 181곳에 달했다고 하니 ‘지방의 왕’이 돼 가는 지자체장은 대체 누가 견제하는가. 새해에는 감사원을 지역별로 설치하는 지역감사원 제도 같은 제도적 입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불투명하고 불공정한 예산 편성도 반드시 시정돼야 할 것이다. 서울의 한 자치구에서는 올해 구민의 절반인 20만명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관리비용으로 고작 1억7000여만원을 지원하면서 쌈짓돈이나 다름없는 업무추진비에는 10배에 가까운 14억4000여만원을 배정했다. 구청사 관리비로 연간 33억원을 쓰면서 146개의 구내 경로당에 지원한 금액은 총 6400만원에 불과했다. 입맛대로 쓰라고 내는 세금이 아닐텐데 이 지자체는 버젓이 10% 가량 늘린 새해 예산안을 구의회에 제출했다. 지자체장이 지방의회 직원들의 인사권까지 틀어쥐고 있는 현 상황에서 지방의회의 역할 행사도 여의치 않다. 새해에는 지자체들이 좀 더 공정하고 효율적인 예산 집행을 해주길 기대한다.
 
이처럼 많은 현안들이 있지만 결국 핵심은 지자체가 누구를 위하느냐로 모아진다. 대다수 주민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 아낀 예산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책을 내놓는 지자체는 아직 일부 지자체를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많은 지자체들은 조금이라도 지자체장 및 고위 공무원들의 놀이터가 됐다. 지자체가 가뜩이나 팍팍한 살림살이 속에 여러모로 고통받는 서민들이 어려울 때 더욱 힘이 되주는 날은 정녕 오지 않을까. 매번 속아왔지만 새해에 또 한 번 속아보고 싶은 심정이 드는 것은 그만큼 우리 국민들이 기댈 곳이 없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 아닐까 싶다. 지자체들이 ‘왕’으로서의 통치(統治)가 아닌 ‘머슴’으로서의 위민(統治)을 되새겨주는 새해가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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