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가장 큰 호응을 얻었던 것은 국회의원을 100명으로 줄이고 무보수 명예직으로 만들겠다는 공약이었다. 당리당략에 사로잡혀 서민을 외면하고 정쟁만 일삼는 국회의원들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허경영 후보가 국회의원 정수를 대폭 줄이겠다는 공약을 내놓자 뜨거운 호응이 이어졌다. 당시 허경영 후보는 10만표에 가까운 지지를 얻으며 16만표를 얻은 이인제 당시 민주당 후보와 유사한 스코어를 기록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소위 ‘허경영 신드롬’으로까지 불렸던 허경영 열풍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고 잠잠해진 지 오래지만 그가 내놨던 국회의원 정수 축소 공약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여전하다. 많은 국민들은 국회의원 정수를 현재보다 현저히 줄여야 한다는 분위기다. 지난 7월 여론조사에서 국민 57%가 국회의원 정수를 축소해야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무소불위의 특권층으로 자리잡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하는 일에 너무 많은 세비와 대우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다.
거기에 국회의원들이 각종 이권다툼에 개입하고 갖은 부작용을 낳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많은 국회의원들이 입법 활동은 제쳐둔 채 지역구 챙기기에 급급한 모습도 익숙해진 지 오래다. 상황이 이런데 올해 국회는 2012년 선거법 부칙으로 늘어난 정수 1명을 원상복귀시키는 문제로 다투더니 급기야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비판 여론에 정수 확대 문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역대 최초의 국회의원 정수 300인 시대에 대한 성찰도 함께 가라앉아버렸다.
국회의원 정수를 대폭 줄여야할 필요성은 비용 측면에서도 타당하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한 명 당 들어가는 직·간접적 비용은 1인당 연간 7억원에 달한다. 10명만 줄여도 70억원의 예산이 절감된다. 국회의원들이 받고 있는 세비가 1인당 국민소득의 5.27배로 OECD 34개 국가 중 일본과 이탈리아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하지만 세비와 견줘 얼마나 일을 잘 하는지를 말하는 의회 효과성에서 우리나라 국회의 경쟁력은 비교가능한 OECD 국가 27개국 중 26위에 그쳤다. 받는 돈은 세계적 수준인데 인풋 대비 아웃풋은 처참한 수준이라는 얘기다.
역사적으로도 국회의원 정수를 줄였던 사례도 엄연히 존재한다.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라는 얘기다. 현재 우리나라 국회의원 정수는 300명이지만 제헌국회가 구성된 이후 국회의원의 정수는 정치 상황 등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했다. 제헌국회의 국회의원 정수는 딱 200명이었지만 최초로 국회의원 정수의 범위를 헌법에 명시했던 1962년의 제3공화국 헌법은 국회의원 정수를 150인 이상 200인 이하의 범위에 두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에 따라 6·7대 국회의 국회의원 정수는 5대의 291석에서 크게 줄어든 175명으로 정해졌다. 역대 가장 국회의원이 적었던 시절이다.
하지만 이후 국회는 국회의원 정수를 야금야금 늘렸고 1980년 5공화국 헌법에서 현재의 ‘200인 이상’ 규정을 도입한 후 13~15대 국회의원 정수는 299석이 되기에 이르렀다. IMF 사태 직후인 2000년 16대 국회에서 고통 분담 차원으로 정수를 273명으로 줄였지만 17대 국회는 다시 국회의원 정수를 299석으로 원대복귀시켰다. 그리고 2012년 선거법 부칙을 이용한 꼼수로 1명이 추가된 국회의원 300인 시대가 열리면서 국회의원 정수를 줄이는 일은 더욱 요원해지는 모양새다. 앞자리를 낮추는 일에 국회의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여야는 최근 이탈리아가 상원의원 수의 3분의 1을 감축하고 커다란 환영을 받았던 것을 떠올리고 국회의원 기득권 확대에 눈이 멀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의원 수가 모자라 국회가 정부의 독주를 견제하지 못하거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보는 국민이 얼마나 되겠나. 세계적인 선진국인 미국이나 일본 등은 우리나라보다 의원 1인당 인구수가 훨씬 많다. 국회의원 정수는 정치 현실상으로도 효율적인 관점에서도 반드시 줄여야 한다. 대기업들이 앞다퉈 젊은이들을 구조조정으로 내모는 시대인데 국회의원 구조조정이 안 될 이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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