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에 오르는 얼음산
8월에 오르는 얼음산
  • 남지연
  • 승인 2006.08.08 10: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여름의 코끝 스치는 찬바람, 엄동설한 빙벽 타기
긴 장마 끝에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 때, 여름철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레포츠는 무엇이 있을까.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해수욕장. 수영복만으로 몸 가리개를 최소화한 채 수영을 즐기거나, 좀더 우아하게는 수상스키를 즐기는 것일 게다. 그러나 남들이 조금이라도 벗으려는 이 여름에 빙벽의 얼음조각이 산산이 흩어지는 곳은 어떨까. 빙벽 등반의 기원은 본래 알프스다. 양치기들이 쇠꼬챙이가 달린 지팡이와 미끄럼 방지용 징이 박힌 신발을 이용해 가파른 알프스 산맥을 넘어 다닌 데서 유래했다. 양치기의 지팡이와 신발이 오늘날의 피켈과 아이젠으로 발전하면서 빙벽 등반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앞니를 두 개 추가한 12발톱 아이젠과 수직 빙벽에 매달릴 수 있는 프런트 포인팅 기술이 등장하면서 아이스 클라이밍은 급속도로 보급됐다. 그러나 겨울에만 빙벽 등반을 할 수 있던 시절은 지났다. 거대한 빙하의 속을 파낸 듯 사방이 얼음으로 들어찬 실내 빙장은 삼복더위에도 빙벽 등반을 가능케 한다. ▶ 사시사철 빙벽등반 영국, 미국, 네덜란드 등 현재 전 세계 10여 곳에서 사시사철 빙벽타기가 가능한 실내 빙장이 운영 중이며,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한국에 실내 빙장이 문을 열었다. 북한산 입구에 있는 O2월드는 20m 높이의 빙벽을 갖춘 국내 첫 실내 빙벽장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빙장이라고 알려진 곳으로 냉장고 문짝 같은 출입문을 열고 빙장 안에 들어서자마자 서늘하다. 실내온도는 영하 4도. 제법 쌀쌀한 겨울날씨 수준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빙벽에 매달려 있다. 피켈(도끼모양 쇠붙이가 붙어있는 지팡이)과 아이젠(미끄러짐 방지 도구)이 꽂히자 빙벽에서는 얼음조각이 산산이 부서져 흩어진다. ▶ 오를 때마다 짜릿 이들이 빙벽을 타는 이유는 오를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스릴과 성취감. 정홍석(37) 씨는 “회사 업무의 성과는 오랜 기간이 지난 뒤에 나타나기 때문에 자주 성취감을 느끼기가 어렵다”며 “매주 목표 등반 높이와 속도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는 기쁨을 얻을 수 있어 빙벽을 오른다”고 말했다. 김용각 씨는 사람을 믿는 느낌이 좋아 빙벽에 오르는 경우. 그는 빙벽을 오를 때 밑에서 줄을 잡아 주며 방향을 봐 주는 확보자를 믿는 느낌이 좋다고 말했다. “직업상 사람에게 실망도 많이 하고, 의심도 자주 하는데 빙벽에 오를 때는 개인적으로 잘 모르는 확보자를 믿을 수 있습니다. 처음 만나 쉽게 마음을 열던 학창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입니다.” ▶ 자연 빙벽을 위한 코스 겨울 산의 자연 빙벽에 도전하기 위해 실내에서 훈련 중인 이도 많다. 대부분의 자연 빙벽은 12월 말부터 2월 중순까지 오를 수 있고, 기온이 높으면 안전 때문에 오르는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한영민(37·여) 씨는 매주 2, 3차례씩 실내 빙벽에 오른다. 그는 빙벽 등반 경력이 10년 됐으나 1년에 10번 이상 자연 빙벽을 오른 적은 손에 꼽을 정도. 등반 기회가 적은 탓으로 실력도 제자리걸음이었다고 한다. 그는 “실내 빙벽은 올 때마다 10여 번 오를 수 있어 등반 속도와 노하우가 향상되는 게 느껴진다”며 “이젠 피켈을 얼음에 꽂을 때 느껴지는 촉감과 얼음 냄새까지 즐길 만큼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다. ▶ 장비 대여해 경제적으로 즐겨 그런나 빙벽장비를 모두 갖추려면 적게는 백만 원 남짓, 많게는 수백만 원의 비용이 필요하다. 이제 막 입문하려는 초보자 입장에서는 여간 부담스러운 비용이 아닐 수 없다. 주말을 이용하여 한철 더위 피할 정도라면 장비를 대여해서 즐기는 것이 경제적일 수 있다. 1일 3시간, 장비대여료를 포함하여 5만원이다. 월 회원으로 등록하면 4주 20시간 과정에 20만원이다. 교육과 함께 빙벽등반을 즐길 수 있다. 숙련된 지도자가 크램폰(빙벽화에 차는 아이젠)으로 빙벽을 찍는 프론트 포인팅(발쓰기), 바일(빙벽용 피켈)을 이용한 스윙 방법 등 초보적인 빙벽등반 기술을 지도해줄 뿐만 아니라 각종 안전수칙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더군다나 실내 빙장은 기후변화에 따라 빙질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는 자연 빙벽보다는 훨씬 안전하다. 얼음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욕심 내지 않고 기초자세와 장비사용법을 한 달가량 익히면 누구나 정상 정복의 희열을 맛볼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