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자위적 핵 보유’ 논쟁, 현실성 있나
정치권 ‘자위적 핵 보유’ 논쟁, 현실성 있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부, ‘한반도 비핵화’ 기조에 역행 - 與 일각 ‘자위권 확보’
▲ 지난 7일 원유철 원내대표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북한의 공포와 파멸의 핵에 맞서 우리도 자위권 차원의 평화의 핵을 가질 때가 됐다”고 발언해 핵 무장 논란을 촉발시켰다. 사진 / 원명국 기자
북한의 4차 핵실험을 계기로 정치권이 자위적 차원의 ‘핵 무장론’을 두고 격론을 벌이고 있다.
 
친박계 인사인 원유철 원내대표는 지난 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북한의 공포와 파멸의 핵에 맞서 우리도 자위권 차원의 평화의 핵을 가질 때가 됐다”며 ‘핵 보유’ 논란의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이 같은 발언에 대해 친박계 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한편 야권까지 ‘반대’ 의사를 내놓으며 논쟁에 뛰어들었는데 어떤 배경에서 갑작스런 ‘핵 무장’ 주장이 나오게 된 것인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 與 일각 ‘안보 위기’ 명분삼아 핵 무장 공론화
 
원유철 원내대표는 지난 7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북한이 계속 우리 머리에 핵무기라는 권총을 겨누고 있는데 우리가 언제까지 계속 제재라는 칼만 갖고 있을지 답답한 상황”이라며 “우리도 자위권 차원의 평화의 핵을 가질 때가 됐다”고 처음 ‘핵 무장’ 필요성을 시사했다.
 
원 원내대표는 이어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북한이 이제 4차 핵실험까지 마친 마당에 북핵 해법을 계속 이대로 할 것인지에 대해 전면 재검토할 시점에 오지 않았나”라고 이 같은 주장을 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이날 그는 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서도 “국방위원장을 할 때부터 얘기해 온 소신”이라며 “우리가 스스로 자주권을 가지고 국민의 안전과 안보를 확보해 나가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회의에서 김을동 최고위원과 김정훈 정책위의장도 논란에 뛰어들었는데 김 최고위원은 “(북핵은) 우리에게 상당한 위협이자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며 “우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핵 개발이 필요하다”고 원 원내대표의 의견에 동조했다.
 
또 김정훈 정책위의장 역시 “중국, 러시아, 북한은 사실상 핵 무장국이고 일본은 우라늄 농축을 하고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핵무장이 가능하다”며 “차제에 동북아에서 우리 한국만 핵 고립화돼 있는 문제를 심각히 검토해야 한다”고 ‘핵 무장’ 주장에 힘을 실었다.
 
김 정책위의장은 이어 “평화는 대등한 힘을 보유하고 있을 때에 오는 것이지 한쪽이 힘에서 기울면 평화가 어렵다”며 “북한이 원자탄을 넘어 수소탄 실험까지 한다는 상황에서 우리만 핵 고립화돼 있는 문제는 우리나라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꼬집었다.
 
특히 이들 중 원 원내대표는 하루 뒤인 8일 오전 원내대책회의 뒤 기자들을 만나서도 여전히 ‘핵무장’에 대한 뜻은 굽히지 않았지만 마치 자체 핵 개발까지 아우를 수 있는 전날 발언과 달리 과거 미군이 핵우산의 일환으로 제공했던 ‘전술핵 배치’라는 구체적 형태로 입장을 내놨다.
 
그는 ‘핵무장’ 주장에 대해 한민구 국방부장관이 전날(7일) “핵무기의 생산이나 반입, 그런 것들이 한반도에 있어서는 안 된다”며 1992년 채택된 이래 현재까지 우리 정부의 핵 정책 기조인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들어 반대 입장을 표한 데 대해서도 이날 “그건 정부의 얘기고, 우리 당은 다를 수 있다”며 우리나라에 전술핵을 배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정부와 당의 대북 기조가 다른 거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의를 받자 원 원내대표는 “북핵 도발에 대해 단호히 대처하는 기조는 다를 수 없다”며 “방식에 대해선 당과 정부가 좀 다르게 표현할 수 있겠지만 북의 핵 도발에 대해 단호히 대처하고 충분한 억지수단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기조는 같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핵무장 논란에 대해 “이미 공론화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제야말로 새로운 결심과 결단을 해야 한다. 더 이상 (북측에) 양보와 보상은 통하지 않는다”라고 핵 무장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이 와중에 지난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 “1991년 철수한 미국 전술핵무기의 한반도 재배치가 필요하다”며 앞서 핵무장 주장을 폈던 정몽준 전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안효대 의원도 이날 오전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족의 공멸을 불러올 수 있는 북한의 핵 위협이 현실화된 상황에서 기존의 틀에 박힌 대북전략 뿐”이라며 “핵은 핵으로 대응하는 적극적 대북전략으로의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핵 무장 찬성’ 측에 가세했다.
 
안 의원은 이어 “매번 반복되는 북한 도발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 한다”며 “우리 정부는 미국의 전술핵 배치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주장했다.
 
◆ 반대 측 “‘핵무장’, 한반도 비핵화 위반해 국제적 신뢰 깨져”
 
하지만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여권 내에서조차 반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는데 대표적 친박계 인사로 청와대 정무특보까지 지냈던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은 “정말로 섣부른 판단”이라며 ‘핵 무장론’을 일축했다.
 
윤 의원은 지난 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권 일부에서 핵 무장 주장을 하고 있는 데 대해 “말로는 시원하나 책임 있는 고민이 담겨 있느냐. 심정적 분노와 냉정한 대응은 구분돼야 한다”며 “국제 질서를 지키는 체제하에서 우리는 엄연히 폐쇄된 북한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핵무장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와해시키는 것이고 우리 스스로 고립화 길로 들어서는 것”이라며 “안보는 무기로만 지키는 게 아니다. 핵무장을 해서 경제나 외교에서 설 자리가 없으면 안보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 윤 의원은 “핵 무장은 남북한 문제를 넘어서는 국제문제”라며 “비밀리에 통치권자의 결심으로 이뤄지는 것이지 공개적으로 하자, 이건 절대 아니다”고도 ‘핵 무장 주장’ 측을 비판했다.
 
▲ 이인제 최고위원은 8일 “한반도 비핵화는 국가의 비전과 목표로, 지금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며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사진 / 유우상 기자

범친박계로도 분류되는 새누리당 이인제 최고위원 또한 8일 ‘핵무장 주장’에 대해 반대 의사를 분명히 드러냈다.
 
이 최고위원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국가 전략은 지금 한반도 비핵화고 또 평화통일을 통해 핵 무장하지 않는 우리 통일 국가, 한국이 이제 동북아의 평화와 협력을 주도한다, 이것이 국가의 비전과 목표로 그것을 지금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핵 무장 반대’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은) 국제사회의 신뢰가 굉장히 중요한 자산”이라며 “핵 비확산이라는 국제사회의 목표와 한미동맹 또 우리 경제는 대외 의존경제인데 여기에 미칠 충격이 모든 걸 다 고려해야 된다”고 말해 사실상 핵 무장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야당 역시 새누리당 일각의 핵 무장 주장에 대해 ‘무책임한 안보 포퓰리즘’으로 규정하고 “매우 위험천만한 발상이자 북한의 불장난에 춤추는 꼴”이라고 질타하며 ‘핵 무장’ 논란에 뛰어들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는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핵 무장 주장은 한미공조를 위태롭게 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며 “정부여당이 북핵을 국내정치에 악용한다면 경제불황이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도 경고하고 나섰다.
 
문 대표는 “이미 제재만으로 북핵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됐다”면서도 “6자회담 당사국 등과의 긴밀한 국제공조의 틀 속에서 적절한 제재수단이 강구되는 한편 문제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도 여당 지도부에서의 주장과 반대로 핵 무장에 대해선 확실히 선을 그었는데, 8일 오전 국회에서 정부 관계자와 북한 전문가들이 참여한 새누리당의 간담회가 끝난 뒤 외교통일정조위원장인 심윤조 의원은 “(핵 무장 관련) 논란이 됐지만 정부는 비핵화 입장을 견지할 것임을 재확인했다”고 전했다.
 
다만 심 의원은 “(핵 무장 주장 측) 정치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핵능력 보유라는 최후의 수단을 지금 다 포기한다는 것을 명확히 할 필요는 없다면서 (핵 무장은) 우리가 향후에 가지는 선택지 중 하나로써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필요가 있다고 전달했다”고 밝혔다.
 
◆ 갑작스런 ‘핵 무장론’, 그 배경은?
 
이렇듯 핵 무장 주장을 놓고도 여당 내에서조차 갑론을박하며 의견이 갈리고 있지만 적어도 이번 논란이 공천 룰 마무리 후 새로이 제기된 계파 갈등의 실마리는 아닐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미 논란에 첫 불을 당긴 원 원내대표도 친박계인데다 반대하는 윤상현, 이인제 의원 등도 친박계로 분류되고 있어 계파 간 갈등이라기보다 일종의 ‘선거 및 외교전략’으로서 정부와 여당이 서로 다른 노선을 보이는 것처럼 ‘이중 플레이’를 펼치는 것이란 주장도 나오고 있다.
 
즉, 선출직 공무원인 국회의원들은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만큼 총선을 앞두고 ‘핵 무장’ 등 강경 발언을 펼침으로써 정부에서 놓친 이번 북한의 4차 핵실험 징후에 대한 국민들의 문책은 넘기면서 ‘안보 정당’ 이미지는 살려내 북핵 정국에서 정부여당 측의 타격 없이 총선까지 여론을 주도해나가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란 주장이다.
 
아울러 대북확성기 재개 외엔 아직 북한에 대한 우리 측의 자체적인 제재 수단은 상당히 제한적인만큼 비록 현실성이 떨어지더라도 ‘핵 무장’ 등의 초강경 대응방안을 공론화시킴으로써 한반도에 미국의 전술핵이 배치되는 것을 반대하는 중국 측이 북한 제재에 본격적으로 동참하게끔 움직일 수 있을 것이란 계산도 있다.
 
특히 동북아는 미국의 묵인 하에 우리가 핵을 보유할 경우 비슷한 분단 상황에 처해 있는 대만 역시 안보 위협을 이유로 핵 무장할 구실을 갖게 되고 이런 핵 확산 기조는 일본도 핵을 보유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할 수 있어 중국으로선 어떤 면에서든 최악의 시나리오라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중국에게 있어 미국과의 직접적 충돌을 막는 완충지대이면서도 간접적으로 미국을 자극할 수 있는 외교적 지렛대로서 전략적 중요성이 큰 만큼 중국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적극 대북 제재에 나서 지원을 완전 끊는 사태까지로 비화되진 않을 것이라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중국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기 위해 ‘한국 핵무장론’을 과감히 내놓게 됐다는 것인데 정부가 직접 펴기엔 그간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천명해왔고, 핵 문제는 민감한 사안이라 정치적 부담도 상당한 만큼 국제적 시각에서 좀 더 자유로운 여당 측이 이 같은 강경한 목소리를 내도록 정부와 역할 분담을 한 게 아니냐는 게 이번 ‘핵무장론’이 대두된 배경에 대한 일각의 해석이다.
 
다만 핵 확산을 어떤 식으로든 반대해온 미국 입장에선 우방국들의 핵 보유라도 핵 도미노 현상 자체가 지역 긴장 수위를 높이고 핵 경쟁을 촉발시킬 수 있어 미국의 안정적 지역통제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만큼 여전히 무조건 반대 입장을 관철하고 있어 이번 사태에도 전술핵 배치 같은 대응보단 항공모함이나 전략폭격기, 스텔스 전투기, 원자력잠수함 등 전략자산을 동원해 북한을 압박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여당 지도부가 비공개도 아니고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핵 무장론’은 당연히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이 지배적이지만 앞서 거론했듯 국내 여론 및 국외 정치외교적 차원에서 활용하기 위해 불가능하다는 점을 뻔히 감안했으면서도 제기했다고 보고 있다.[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