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S아파트 “양심선언 무의미…비리 드러나도 ‘쉬쉬’”
마포 S아파트 “양심선언 무의미…비리 드러나도 ‘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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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적절한 조치 취하는 게 회장 임무 아니냐”
▲ 서울 마포구의 한 대규모 아파트단지에서 일부 동대표들이 하자 보수공사 업체로부터 거액의 뒷돈을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사진/시사포커스DB
서울 마포구의 한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비리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 아파트의 하자 보수공사 과정에서 편의를 제공하는 대가로 일부 동대표와 시공업체 사이에 거액의 금품이 오고간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문제는 이런 비리 사실이 알려졌음에도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입주민들 사이에서는 사건을 담당한 마포경찰서의 지지부진한 수사와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의 소극적인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도색공사 따내려 금품 건네
 
서울 마포구의 S아파트는 3700여 세대로 이뤄진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최근 하자 보수공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입주민들 사이에 잡음이 일고 있다. 부정한 방법으로 공사 업체를 선정하는가 하면, 일부 동대표들이 업체로부터 수백에서 수천만원의 뒷돈을 챙겼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논란의 단초는 지난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민들에 따르면 이 아파트는 건물 외벽 등에 페인트를 새로 칠하는 도색공사를 위해 업체를 선정하기로 했다. 입주민대표회의에서는 이번 공사를 각 공구별로 3개 업체로 나눠서 진행하기로 의결했다.
 
이 과정에서 A업체가 아파트의 동대표들에게 접근했다. 입주민들에 따르면 A업체는 한 동대표에게 접근해 자신들의 단일공사로 진행할 수 있도록 부탁하면서 금품 2000만원을 건넸다. A업체는 또다른 일부 동대표들과 저녁식사 자리를 마련해 같은 방법으로 단일공사를 부탁했다.
 
결국 이후 열린 대표회의에서 도색공사는 공구별로 하되 단일공사로 진행하게 됐다. 금품을 건네받았던 모 동대표의 발의에 따른 것이다. A업체는 이들이 도움을 준데 대해 명절에 갈비세트를 선물로 보내는 정성까지 보였다.
 
◆경쟁업체 입찰 못하도록 조건 수정
 
비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른 한 동대표는 당시 대표회의 회장과 공모해 당초 기준 실적이었던 2억원을 3억원으로 올렸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아파트는 보수업체 입찰공고에서 3억원 이상의 단일공사 실적이 있는 업체들만 참가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공동주택 관리를 위한 입찰 종류 가운데 ‘제한경쟁입찰’은 일정 조건을 충족한 업체들만 참가할 자격이 있는데, 이 공사의 입찰이 이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들은 경쟁률을 낮추기 위해 다른 업체들이 입찰에 뛰어들지 못하도록 높은 금액의 기준 실적을 설정했다. 이후 이같은 사실을 알게 된 일부 동대표들이 항의에 나섰고, 입찰 가능한 사업실적은 다시 2억원으로 수정됐다.
 
그러나 이마저도 수정공고는 일주일이나 늦게 게시됐다. 일부러 다른 경쟁자들이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뒤늦게 게시한 ‘꼼수’라는 게 입주민들의 주장이다.
 
결국 16억원짜리 도색공사 계약은 입찰 참여 6개 업체 가운데 A업체가 따냈다. 일부 입주민들은 업체 선정과정에 문제가 있다면서 단지 내에 현수막 등을 붙이는 등 강력 반발에 나섰지만, 대표회는 공사를 밀어붙였다.
 
◆수도배관 교체까지 ‘눈독’
 
이 아파트의 비리 문제가 공론화된 건 지난해 4월 전후다. 당시 이같은 의혹을 조사하던 마포경찰서는 혐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이대로 마무리될 줄 알았던 수사는 한 동대표의 ‘양심선언’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양심고백의 내용은 이렇다. 동대표 박모(56)씨는 A업체로부터 수백만원의 현금을 받았다. A업체는 입주민대표회의에서 부실공사 등을 이유로 공사비 잔금 6억원의 지급을 미루자, 이를 해결해 달라면서 550만원을 건넸다는 것이다.
 
박씨는 A업체가 잔금을 받을 수 있도록 서명을 해주는 대가로 이에 응했다. 박씨는 2014년 9월말~10월초에 걸쳐 업체 대표와 다른 동대표 B씨에게 각각 돈을 받았고, A업체는 잔금 6억원을 손에 쥐었다.
 
그러나 양심에 가책을 느낀 박씨는 A업체가 수도배관 공사까지 부정적인 방법을 저지르려하자, 고민 끝에 이 아파트의 감사인 김모(58)씨에게 돈을 받은 사실을 털어놨다.
 
◆“비리 드러나도 책임은 없어”
 
현재 이 아파트의 가장 큰 문제는 각종 비리가 있음에도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김모 감사는 박씨의 고백 이후 ‘혐의 없음’으로 수사를 마친 마포경찰서에 재수사를 요구했다. 돈을 받은 사람이 나타났으니, 금품이 오고간 게 사실로 밝혀졌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재조사에 들어간 경찰의 수사는 어찌된 일인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게 입주민들의 설명이다.
 
이 아파트의 한 입주민은 <시사포커스>와의 인터뷰에서 “보수공사는 전부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면서 “지난해 9월 이같은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뒤 경찰이 재수사에 들어갔다. 비슷한 시기에 현장조사까지 마친 것으로 아는데 아직까지 아무런 얘기가 없다”고 지적했다.
 
입주민들에 따르면 비리에 가담한 동대표들은 서로 자신의 부정행위를 공공연하게 밝히고 다녔다. 뿐만 아니라 누가 더 많이 대가를 받았는지를 놓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갈등이 깊어지자 비난의 화살은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에게 돌아갔다. 일부 입주민들은 대표회 회장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들은 박씨의 양심고백도 소용이 없었다고 성토했다.
 
이 아파트에 거주한다는 한 주민은 “비리가 밝혀지면 책임을 지는 게 회장의 임무”라면서 “이런 비리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무슨 이유로 쉬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이에 대해 현재로써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당연히 비리를 밝혀야 하지 않겠느냐”고 강조하면서도 “그러나 본인은 동대표 회장일 뿐이지, 수사관도 아닌데 어떻게 (수사를) 하겠나. 마포경찰서에서 수사 중이니 결과가 나오면 그에 따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사포커스 / 신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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