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반영하는 문학적 알레고리의 미술
‘현실’을 반영하는 문학적 알레고리의 미술
  • 이문원
  • 승인 2004.03.17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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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규철 "49개의 방"전
언제부턴가 현대미술은 미술계 내부적으로만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그 시각적 표현양식의 변화에 모든 촛점이 집중되어 버린, 모종의 자가중독 상태에 빠진 듯 보인다. 더 이상 미학적 비젼과 사회의식이 결합된 '게르니카'는 없으며 대단히 조잡하고 직설적인 형식의 '민중화'들과 자기 안으로 파고들어 그 내적의미만을 고수하고 있는 추상화 부류가 미술 전반을 이루는 듯 보이기도 했다. 이런 '이미지 지상주의'의 시대에 1980년대 중반 이후 사진, 조각, 드로잉, 글쓰기 등의 다방면 작업을 통해 '개념적 미술'의 선두주자로 일컬어진 안규철은 '이미지' 그 자체만을 추앙하며 집중적으로 시추하는 작가군에 반해, 사회현실과 사상성 등 '외적'인 상황들을 자신의 독창적인 미학적 비젼 안으로 끌어들이고 다소 문학적인 상징주의가 배어들어간 설명적인 작업이 될지언정 그 '의미'의 폭을 극대화시키고 알레고리를 튼튼히 하는 방향을 선택한 작가에 속한다. 이번에 로댕갤러리에서 "49개의 방"이라는 타이틀로 펼쳐지는 그의 신작 전시는 그가 보여주는 독특한 상징체계와 은유, 야유와 풍자의 구도를 명확히 읽을 수 있는 전시일 뿐 아니라, 보다 더 '거창한' 명제인 '예술은 사회를 어떻게 반영하며, 사회는 예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제시해주는 전시가 될 듯하다. 이번에 전시되는 그의 신작 중 바닥없는 원룸 아파트를 묘사한 '바닥없는 방'의 경우, 이전과 달리 자신이 사는 '땅' 자체에 뿌리내릴 수 없는, 뿌리내리기를 거부하는 현대인의 모습과 얼마든지 '이동가능'한 상황에서 그 삶의 '주변요소'들만을 고수하길 원하는 현대인의 모습이 서로 충돌하는 딜레마를 명쾌히 지적해주고 있으며, 정장을 입은 인물들이 악수를 나눈 뒤 한 사람이 상대방을 '잡아먹는' 다섯컷의 흑백 그림을 반복해낸 '모자'의 경우, 그 '악취미'적 상상력으로 펼쳐보인 대립적/상하구조적 인간관계의 묘사와 함께, 이에 대한 '증거물'처럼 모자를 따로 전시해놓아, 허구에 대한 시각적 물증의 제시라는 풍자적인 입장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미술은 지난 100년 간, '지나치게' 고상해졌다. 그리고 그 '고상함'의 극단에는 의아스럽게도 항상 내적의미 자체를 제어시켜 버린 '이미지즘'이 자리잡고 있었다. 대중들은 의외로 다소 복잡한 알레고리를 지녔어도 '내적의미'가 명확히 제시된 작품들을 좋아하는 것이다. 비쥬얼 스타일리즘이 상당부분 제어되고 그 내적의미가 강조되어 있는 안규철의 작업은, 이런 면에서 '충격'보다 오히려 '푸근함'을 느끼게 하는, 특이하는 감흥을 전해줄 것이다. (장소: 로댕갤러리, 일시: ∼2004.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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