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아직도 도로명 주소를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사용할 생각을 가진 사람도 별로 없다. 지번 주소 체계가 하루 이틀 쓰인 것도 아니고 외국과는 도시 기반도 다른데 갑자기 도로명 주소를 사용하라고 하니 어찌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여론은 사실상 도로명 주소 정책의 실패에 무게를 두고 있는 분위기다.
하지만 도로명 주소보다 더욱 혼란을 가중시킬 여지가 큰 것이 있으니 바로 법정동과 행정동의 구분이다. 사실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법정동과 행정동이라는 명칭조차도 생소하다. 무엇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도 널리 알려져 있지 않고 내가 사는 곳은 법정동과 행정동의 명칭이 어떻게 다른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법정동은 쉽게 말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동 이름이다. 대부분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정한 것인데 주로 예로부터 전해지는 고유 지명을 써 거의 변동이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익숙해져 있는 것은 물론이고 신분증, 신용카드 및 재산권과 관련된 각종 공부의 주소 등 법률상 문서에 사용된다.
반면 행정동은 행정 운영의 편의로 설정돼 가변성을 지니는 이름이다.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지자체는 행정 능률과 주민의 편의를 위해 조례로 법정동을 묶거나 쪼개 행정동으로 운영할 수 있게 돼 있다. 예를 들어 하나의 법정동이 인구가 너무 많으면 행정관서는 여러 개의 행정동으로 나눠 업무를 처리한다. 또는 인구가 작은 법정동들 여러 개를 묶어 하나의 행정동으로 운영할 수도 있다. 주민센터 설치의기준이기도 하다.
물론 행정동은 행정관서 편의상 설정되는 개념인데 일반인들이 무슨 혼란을 겪겠느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행정관서의 업무 자체가 주민들과 연속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법정동과 행정동의 이원화는 생각 외로 혼란을 가중시킨다. 예를 들어 한 주민이 한 개의 법정동에 토지를 갖고 있는데 이 토지가 행정동 상으로는 여러 개로 나뉘어진다면 각 행정동을 관할하는 주민센터에 신고를 여러 번 해야 한다. 주민센터를 잘못 찾아가는 일도 빈번하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닌 만큼 과거부터 법정동과 행정동의 이원화에 대한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는 끊임없이 나왔다. 그런데 정부가 이를 해결하겠다며 내놓은 도로명 주소 정책은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아직 혼란이 진정되지도 않았는데 법정동과 행정동 등의 우편번호가 중복돼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겠다는 이유로 오랜 기간 동안 사용해 오던 우편번호 체계마저 새롭게 변신했다.
나쁜 취지라는 것은 아니지만 급진적인 변화는 혼선을 줄 뿐이다. 젊은층도 익숙해지기 쉽지 않은 새로운 제도를 잇따라 도입하니 중장년층은 아예 따라가기도 힘들다. 제일 좋은 것은 법정동이 그대로 행정동이 되는 일이겠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이를 시행하기 힘들다면 과감하게 법정동 이름을 바꾸든지 행정동 관할을 재정비해 법정동과 연계되는 방향으로 보완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법정동과 행정동에 새 도로명 주소, 여기에 새 우편번호 체계까지. 대체 우리는 몇 개의 주소를 기억해야 하는가. 항상 주민들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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