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은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곳이다. 하지만 일부 정신병원은 치료기관이 아니었다. 환자 통제를 위한 자물쇠와 잠금장치가 치료제를 대신한다. 또한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 병실 마다 설치된 감시카메라는 의료진을 대신하고 있다. 병을 치료 받기 위해 입원을 했던 환자들은 이렇듯 죄를 짓지도 않았지만 감옥과 다름 없는 곳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정신질환자들이 수용된 폐쇄병동으로 통하는 철문에는 3중으로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폐쇄병동 안 병실로 들어서는 입구도 마찬가지. 밖에서만 열 수 있도록 2중 잠금장치가 설치돼 있다. 병원 관계자는 “안전을 위한 조치”라고 해명했다. 정신병원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안전’이라는 미명하에 환자들의 인권은 말이 아니었다. 어떤 방에는 손발과 머리가 묶인 10대가 누워 있었다. 자해 위험 때문에 묶어 놨다고 했다. 소년의 양팔은 침대 난간에 꽁꽁 묶였다. 머리와 다리도 각각 위 아래 침대 철 난간에 묶여 있었다. 같은 방의 환자는 “병원에서 하루 종일 이렇게 묶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소년이 있는 곳은 정신병원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보호실’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세상과 소통하는 끈은 아무 곳에도 없다. 별다른 치료도 없다고 했다. 사지를 묶어 놓은 하얀 끈이 유일한 치료제다. 과연 무엇이 그들에게 감옥과 다름없는 곳에서 생활을 하게 했을까? 환자들의 ‘안전’과 ‘인권’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정신병원에 대해 알아 보기로 했다.
◆감금된 인권
사회에 적응을 잘 못하는 정신질환자들을 위탁해서 돌보기 위해 설립된 정신병원. 하지만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의 인권은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정싱병원에서는 환자들의 적정인원을 초과해서 받고 있다. 시, 군에서 조사를 나온다고는 하지만 적정 인원만을 남기고 넘는 환자들은 다른 곳으로 잠시 피해 있으면 조사는 끝이다. 실제로 한 병원의 적정 수용환자 인원은 120명이다. 그러나 실제는 300명 넘게 있었다. 이러다보니 환자들은 침대에서 자질 못한다. 맨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이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달 27, 28일 전남의 한 정신병원을 방문, 촬영한 비디오 테이프와 조사관 취재에서 드러났다. 인권위는 6일 “정신병자를 뜻하는 이른바 ‘뻐꾸기’들에게는 치료뿐 아니라 최소한의 인권보장장치도 마련돼 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인권위 침해구제3팀 백선익 조사관은 “병원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감시카메라를 달아놨는데 화장실에서 용변 보는 모습까지 촬영이 가능한 장소에 설치돼 있었다”고 말했다.
정신질환자들을 위한 각종 치료 프로그램도 서류상에 서 있는 글자 뿐 이었다. ‘그림치료’는 말 그대로 간단한 그림 그리기였고, ‘음악치료’ 시간에는 노래방에서 노래하는 것이었다. 사회적응을 돕기 위한 외출이나 산책은 보호사들의 말 잘 듣는 환자에게 선별적으로 제공되는 ‘포상’ 개념으로 활용됐다. 치료 명목으로 노동력을 착취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입원 전 건축 공사장에서 일했다는 나 모 씨는 “밖에서는 일당 8만 원짜리 일인데 요양원에서는 하루 3,000원만 주고 일을 시켰다”고 말했다. 이러한 병원의 열악한 환경을 외부로 유출시키면 그 환자는 즉시 ‘보호실’이라는 곳에 묶여 있어야 한다. 그 곳에서는 식사는 물론이고 화장실을 가지도 못한다. 급한 용무가 있으면 묶인 채로 그대로 배설을 해야 한다. 말 그대로 예전 전쟁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수용소 같았다. 병원의 열악한 치료실태가 외부로 공개되지 않도록 서신 검열과 전화 통제는 물론 수시로 몸수색도 이뤄진다. 교도소 감방 못지않다. 또한 적정 의사의 수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의사 얼굴은 보기 힘들다. 환자들에게 의사는 병동에 ‘일’이 생기면 가끔 오는 존재로 각인돼 있었다.
◆병원 내부의 적
치료를 목적으로 병원에 ‘격리’된 환자는 외부와의 소통은 물론 가족들의 도움을 바랄 수도 없다. 병실 밖으로 나가는 산책은 하루 30분이 전부다. 그나마 이러한 산책도 큰 병원에서나 가능하다. 소규모의 병원에서는 편하게 자기도 함든 방에서 그저 멍하니 벽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폐쇄병동의 권력관계는 내부 구성원 중심으로 형성될 수밖에 없고 폐쇄성으로 인해 권력의 힘은 절대적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6일 “병동내 응급상황과 위험요소에 대처하기 위해 고용된 병원 측 감시자가 ‘보호사’라면 ‘방장’은 같은 환자 신분으로 환자를 통제하는 비공식적인 권력”이라고 말했다. 병원을 살펴보면 ‘보호사’라 불리는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다. 이처럼 보호사로 병원에서 근무를 하기 위해서는 간호조무사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또한 분기마다 보호사 교육을 받도록 돼있다. 그러나 규모가 작거나 지방에 위치한 개인병원에서 근무하는 보호사들은 거의 자격증이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당근과 채찍’을 모두 쥔 보호사는 ‘방장’을, ‘방장’은 다른 환자를 제어하는 식으로 통제 사슬이 형성된다. 보호사의 권한은 막강하다. 폭력이 가해져도 환자들은 아무 말도 못한다. 주로 건장한 남성들로 구성된 보호사들은 환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는 보호사 눈에 벗어나면 산책은 꿈도 꾸지 못한다.
흡연도 “병원은 금연시설”이라고 불허하면 그만이다. 외부와의 통화도 보호사가 쥐고 있다. 인권위가 방문한 전남지역의 또 다른 병원에는 각 층마다 공중전화가 갖춰져 있었다. 그러나 전화기는 평소에는 전혀 사용할 수 없다. 주말 오후 7시30분부터 9시까지 제한적으로 통화가 가능하다. 전화를 하기 위해서는 미리 방장에게 보고를 하면 보호사가 장부에 적어 놓고 전화 가능 시간이 되면 환자들을 부른다. 한 주에 한 번 할 수 있는 전화를 하기 위해 환자들은 줄을 서면서 자기 차례를 기다려야만 한다. 그러나 보호사가 통화내용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고 병원의 열악한 상황을 말하거나 ‘위험수위’ 발언이 나오면 다음부터 전화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보호사에게 권한을 부여 받은 ‘방장’도 병실 안의 실질적인 권력자로 군림한다. 15~20여명 단위로 입원한 병실의 방장은 비교적 증세가 경미한 알코올 중독환자나 의처증, 우울증 환자가 맡는다. 보호사를 대신해 환자들을 감시하고 식사 배급 등을 돕기도 한다.
특히 방장은 환자들의 기호식품인 담배와 커피 등을 관리하는 책임자여서 환자들이 자연스레 방장 말에 복종하게 된다. 심각한 정신질환자의 경우 방장의 통제에 잘 따르지 않는 일도 생기지만 이 과정에서 방장의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기도 한다.
방장은 병실 안 실세이기 때문에 시원한 창문가나 TV 앞 등 좋은 자리를 선점하고 병원에서 지급하는 물건을 환자로부터 빼앗기도 한다.
◆돌고 도는 환자들
인권침해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정신병원 입원 환자들에게 퇴원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고 토로한다. 병원에 입원해 있던 퇴원을 한 환자는 “입원을 하면 얼마간의 치료 기간이 필요하다고 다른 병원에서는 발을 해 주는데 이 곳에서의 퇴원은 정말 아무도 모른다”며 “내가 봤던 한 사람은 5년이 넘게 그런데(정신병원 이나 보호시설)서 보내는 사람도 있다”고 밝혔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계속 입원을 해야 할지, 퇴원을 해도 되는지를 6개월에 한 번씩 정신보건심판위원회의 판정을 받는다. 하지만 이러한 판결도 서류상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형식에 불가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신보건시설에서 이렇게 ‘장기수’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정신보건법 때문이다.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정신보건법이 환자를 가두는 형국이 됐다. 정신보건법 23조에 따르면 본인 의사에 의한 입원환자는 퇴원이 자유롭다. 그러나 타인에 의해 입원한 환자라면 사정이 크게 달라진다. 같은 법 24조에는 의사의 진단과 보호의무자 동의서가 있어야 입원과 퇴원이 가능하다. 환자 본인이 퇴원을 하고 싶어도 보호의무자의 동의가 없으면 퇴원이 불가능 한 것이다. 보호의무자 동의서가 환자를 의료시설에 ‘구속’시킨 후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정신질환자 대부분은 본인이 아니라 타인에 의한 입원이 많아 장기입원이 양산되고 있다. 2005년 현재 자의 입원 환자는 9.7%에 불과한 반면 가족(77.4%)이나 지방자치단체장(11.7%) 등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은 89.1%로 자의 입원보다 무려 9배 이상이 높다.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이 29.6%(1999년 기준)인 일본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복지수준이 최고인 영국과 독일은 10% 이하다. 게다가 보호의무자의 범위를 법으로 정해놨지만 무자격자가 보호의무자를 대신하는 게 비일비재하다.
이혼한 배우자, 양아버지에서부터 양로원 간호사, 환자 보호자가 알고 지내는 사찰 주지와 목사, 마을 이장 등 전혀 연고가 없는 이들까지 보호의무자로 둔갑돼 있다. 이같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보호의무자로 둔갑을 하는 이유는 서류상으로 입, 퇴원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동의서를 보호의무자가 직접 작성을 해야 하지만 바쁘다고 말하면 병원에서 도장을 파서 동의서에 찍는 기형적인 형상도 일어나고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정신병원의 수입구조 때문이다. 환자 70%가 극빈층인 만큼 정부는 이들이 입원한 정신병원에 하루 3만원씩의 지원금을 준다. 6개월이 경과하면 지원금의 3~6%가 삭감돼 지급된다. 이처럼 줄어드는 지원금을 피하기 위해 ‘환자간 신·구 교대’가 이뤄지는 것이다.
결국 병원의 수익과 보호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달 27일과 28일 양일간 정신병원을 조사했던 인권위의 한 관계자는 “실태조사를 하는 당일 동의서를 급히 만들어내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 분실했다고 핑계를 댄다”면서 “환자의 입·퇴원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서류가 병원에서는 가장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실제 조사를 나가보면 환자들이 ‘이거 조사하면 퇴원할 수 있나요. 언제 나갈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꼭 한다”면서 “오히려 병원에서 병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2005년 현재 정신보건시설에 재원 중인 환자는 6만7천8백95명. 교도소 재소자보다 많은 수치다. 교도소 재소자는 무기수나 사형수를 제외하고는 사회로 복귀할 날이 정해져 있다. 그러나 정신보건시설의 환자는 ‘퇴원’ 날짜조차 기약할 수 없다.
복지부는 2005년 10월과 지난 6월 정신보건법 개정안을 마련한 바 있다. 이중 눈에 띄는 것은 ‘환자를 격리시키거나 묶는 등의 신체적 통제는 본인이나 타인을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이 현저히 높고, 그 외 방법으로 위험을 피하기 곤란할 때로 제한한다’는 내용이다. 치료목적상 필요하지 않은 데도 격리나 신체적 통제가 현실로 벌어지고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관할 부처도 인정한 정신병원 입원 환자들에 대한 인권문제. 인권 침해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정신병원 입원 환자들에 대한 조사가 시급한 시점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