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감정 받으러 법정가는 신세…“정상이다” vs “아니다” 팽팽

‘건강 이상설’ 논란에 휩싸였던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직접 법정에 섰다. 신 총괄회장은 지난 3일 서울 양재동 서울가정법원에서 열린 ‘성년 후견 개시 신청’ 사건 첫 심리에 참석했다. 당초 업계에서는 건강상의 이유로 출석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신 총괄회장은 자신의 건강을 입증하듯, 직접 걸어서 출두했다.
고관절이 좋지 않은 신 총괄회장이 휠체어를 타지 않고 지팡이를 이용해 스스로 법정까지 걸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동안 공항이나 호텔에서 휠체어를 이용해 이동하는 모습과는 달랐다. 일부에서는 SDJ측이 준비한 ‘건강 과시용’ 행보가 아니냐는 후문도 들린다.
◆정신건강 두고 엇갈린 주장
심리가 끝나고 신 총괄회장 측과 신정숙씨 측의 증언이 엇갈리고 있다. 지난 3일 신 총괄회장 측 대리인인 김수창 변호사는 첫 심리가 끝난 뒤 “신 총괄회장이 자신의 판단 능력에 대해 법정에서 길게 말했다”고 밝혔다.
신 총괄회장 역시 이 자리에서 “50대 때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다”며 “내가 왜 나의 판단력 때문에 여기까지 나와서 이런 일을 해야하느냐”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신정숙씨 측의 주장은 달랐다. 신정숙씨의 법률 대리인인 이현곤 변호사는 “신 총괄회장은 똑같은 이야기를 수십번씩 되풀이했으며, 어떤 이유로 법정에 나왔는지도 잘 몰랐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 총괄회장이 평범하지 않은, 예전과 다른 모습을 많이 보였기 때문에 더이상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게 목적”이라며 “치매 증상이 온 것으로 보였고 재판부도 치매 감정 절차를 병원에 의뢰해서 밟아야 하는 사안으로 봤다”고 주장했다.
신 총괄회장의 정신건강 상태는 그룹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줄곧 논란으로 작용했다. 그의 성년후견인 지정 여부에 따라 롯데 경영권 분쟁이 변곡점을 맞을 전망이다. 주목할 부분은 법원에서 신 총괄회장의 판단 능력을 어떻게 판단하는 지 여부다.
업계는 신 총괄회장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면 장남인 신동주 회장에게 힘이 실릴 것으로 보고 있다. 반대의 경우에는 차남인 신동빈 회장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성견후견인 지정 여부는 객관적인 건강상태가 가장 중요한 판단 조건이기 때문에 법원이 지정한 의료인 등 전문가로부터 정신건강 이상 여부를 점검받아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 판단, 경영권 분쟁 향방 가를 듯
그간 롯데그룹 일가와 그룹 임원들 사이에서는 신 총괄회장의 정신건강 이상을 의심할 만한 증언들이 회자된 바 있어, 신 총괄회장의 법정 출두와는 관계없이 의료인의 판단이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만약 법원이 신 총괄회장의 성년후견인을 지정한다면 그동안 ‘경영 지시서’와 ‘위임장’ 등을 근거로 자신이 롯데가의 후계자임을 밝힌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은 명분이 사라지게 된다.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신 총괄회장이 자신을 후계자로 지목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장남인 신동주 회장은 “아버지의 건강 상태는 이상이 없으며, 정상적인 판단 능력을 갖고 있으며, 나를 후계자로 지명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차남인 신동빈 회장 측은 “신 총괄회장이 만 94세의 고령으로 인해 기억력과 판단력이 떨어진 상태”라며 “(신동주 SDJ 회장이) 고령인 아버지를 이용하고 있다”고 반박해왔다.
반대로 법원이 신 총괄회장의 정신 건강에 대해 ‘이상이 없다’고 판단했을 경우, 신동주 회장 측이 공신력을 얻게 된다. 신정숙씨의 청구 소송은 기각될 뿐 아니라 신 총괄회장의 판단력이 멀쩡하다는 것을 법원이 보증하는 셈이 된다. 따라서 일본에서 진행하고 있는 법적 공방에서도 한국 법원의 판단을 근거로 삼아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신 총괄회장의 정신건강 이상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경영권 향방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라면서도 “법원 판단이 경영권 분쟁의 분수령이 될 것이란 게 업계 안팎의 중론”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한 관계자는 “신 총괄회장은 롯데그룹의 창업주로서 대한민국 재벌가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라면서 “사업은 대성했지만 자식농사는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지 않겠느냐. 그가 이룬 업적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한 말년”이라고 평가했다. [시사포커스 / 신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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