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구, ‘저성과·비인기’ 구실로 현역 물갈이 시사…非朴 반발

이한구 의원은 친박계 인사로 분류되면서도 이미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데다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지낸 바 있는 4선의 중진 의원이란 점에서 친박계에선 일찌감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점찍어 둔 인물인데 과거 전략공천을 주장한 전력도 있어 그가 공관위장에 임명된 것에 대해 비박계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취임 첫 날부터 그는 상향식 공천제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보완해야 할 점을 거론하는 와중에 “상향식 공천제라고 해서 국민들의 뜻이 제대로 반영된다는 보장도 없다”며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을 해 논란의 중심에 선 데 이어 사실상 ‘컷오프’를 암시하는 듯한 의사도 내비치면서 현역 의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의원의 발언에 대해 김무성 대표는 일단 별 문제되는 건 아니라면서도 과거 막강했던 공천심사위원회 시절이 아니라 그저 공천관리위원회에 불과하단 점을 강조해 권한 구분을 분명히 하라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이 의원은 미묘한 입장 차를 보이며 연일 ‘현역 물갈이’를 거론해 총선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 괜한 계파갈등만 극대화하는 것 아닌지 일각에선 불안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 이한구 “19대 의원, 능력 부족한 자 배제부터”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이 가장 먼저 꺼내든 건 ‘현역의원 검증’이다.
이 위원장은 지난 4일 “현역이라고 무조건 물갈이하겠다는 식의 접근은 있을 수 없다”면서도 “현역 의원 중 저성과자 또는 비인기자들은 공천에서 배제돼야 한다”고 말해 적잖은 이목을 끌었다.
특히 그가 말한 ‘저성과·비인기자’라는 범주가 어디까지인지도 불명확한 상황에서 공심위도 아닌 공관위장의 입장에서 벌써 ‘공천 배제’를 언급하고 나선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목소리부터 과거 ‘공천학살’의 칼자루를 뽑으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반응이 쏟아졌다.
이에 이 위원장이 “유권자들의 판단이 제일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라고 했음에도 비박계의 경우 여전히 경계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는데, 이런 와중에 5일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선 ‘김무성 대표와 공천과 관련해 사전 논의가 있었느냐’는 데 대해 “논의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단호히 일축하면서 일각의 의심을 확증으로까지 비화시켰다.
이 같은 반발을 의식한 듯 그는 “중요한 방침은 최고위원회 동의를 얻어야 되는데 얻는 과정에서 논의하면 된다”며 “당 대표도 최고위 멤버”라고 강조했다.
또 이 위원장은 “공천과정에 세세한 것까지 다 당 대표와 상의하면 공정하게 이뤄질 수 없다”며 공정성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주장이 ‘상향식 공천’이란 당론과 배치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다들 오해하는 것”이라며 “국민들한테 공천권을 돌려주려면 국민들이 예비후보자가 어떤 사람이란 걸 정확하게 알 수 있게 해줘야 되는데 그런 게 안 돼 있으면 엉터리 선출이 일어난다”고 반박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출마자가 5~10명으로 나오면 현실적으로 정보도 부족하고 조사하는데 경비도 많이 들지 않냐. 그러면 몇 명으로 줄여야 되는데 압축을 할 수 밖에 없다”며 “(상향식공천이) 취지는 좋은데 실천할 수 있는 여건이 돼 있느냐 아니냐가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전날에 이어 또 다시 ‘현역 물갈이’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섰는데 “19대 국회에서 능력 부족이 확인된 사람은 걸러내는 게 먼저”라며 “국정활동이 시원찮거나,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행동들을 했거나 국회의원으로서 특권에 안주한 경우 혹은 비도덕적인 경우 등 전반적으로 적용이 될 것이며 유권자의 신망이 부족한 부분도 포함된다”고 ‘공천 배제’ 기준을 열거했다.
하지만 이날 그가 제시한 기준 중 객관적으로 명확히 평가하기 쉽지 않은 항목도 일부 있는데다 무엇보다도 후보 선정의 공정성을 명분으로 내세웠던 그가 특정 예비후보에 대해선 특혜를 용인해주는 듯한 견해를 피력해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이 위원장은 “훌륭한 분을 모셔오는 게 국민들한테 서비스하는 것”이라면서도 “그 분들 중 지역구 경선에 참여하겠단 분들도 있지만 그런 절차는 힘들다거나 지저분해서 안 하겠단 분도 있는데 후자의 경우엔 상당히 안심되는 방법으로 처우해드려야 되는 것 아니냐”라고 주장해 오히려 ‘공정성’ 논란을 자초했다.
이른바 ‘훌륭한 분’에 대한 ‘처우’에 대해 그는 “비례대표, 우선추천 지역 등의 방법을 최대한 동원해 새로 정치권에 들어오려는 분들한테 안심을 시켜드려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제시했는데 기존 예비후보들과의 형평성 논란이 일어나지 않겠느냐는 질의에 대해선 “불공평하다는 문제점은 있지만 당 전체로 봐서 어떤 것이 더 좋은지 생각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다만 그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훌륭한 분’이라면서 영입된 안대희 최고위원의 경우 소위 ‘험지 출마’라며 마포갑에 출마했다가 해당 지역구 예비후보와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 비쳐본다면 여기에 특혜까지 주자는 그의 발언은 사려 깊지 못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또 이 위원장은 친박계 중진인 최경환 의원이 노골적으로 ‘진박’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서고 있는 데 대해서도 “이해하는 면이 상당히 있다”며 “평소 친소관계에 따라 그 사람의 개소식 같은 데 참여해서 격려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란 반응을 내놔 일부는 공관위장이 ‘공정성’보다 ‘친박 편들기’를 노골화하는 것 아니냐고 해석하기도 했다.
◆ 김무성 “이한구 발언, 문제 아냐…다만 룰은 누구도 손 못 대”
한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5일 이 위원장의 ‘현역 물갈이’ 주장에 대해 “어제 언론 보도를 보고 ‘(이 위원장이) 뭔가 잘못알고 이야기 했구나’ 하고 발언록 원본을 봤지만 언론에 보도된 것만큼 그렇게 문제 있는 발언은 아니라고 판단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이 위원장을 포함한 공관위원들과 1시간 이상 비공개 티타임을 하고나서 기자들과 만나 “(공관위원장) 개인의 의사를 갖다가 반영할 길이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우리 당 (공천) 룰을 한번 읽어봐라. 모두 룰에 따를 수밖에 없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이 위원장이 저성과자 현역의원들을 추려내는 방법의 하나로 거론한 ‘상임위 출석률’ 등을 원칙대로 공천 룰에 반영할 것인지를 놓고도 “그렇다”라며 변동이 없음을 재확인해 이 위원장의 발언 내용을 모두 수용하겠단 것인지 의문을 자아냈다.
이런 가운데 이날 김 대표와 티타임을 가진 직후에도 이 위원장은 여전히 ‘현역 물갈이’를 강조해 기자들이 김 대표가 공감했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공감하고 말고 할 게 어딨나”라며 논의 대상도 아니라는 듯한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김 대표와) 이견이 없을 수가 있느냐. 세상사는 게 이견 없이 어떻게 사느냐”고 해 김 대표의 의견을 개의치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러자 김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예비후보자 워크숍에서 “예전에는 공천심사위원회였지만 이젠 공천관리위원회”라며 “공천관리위원회는 이미 확정돼서 공포된 공천 룰대로 공정하고, 투명하게 관리만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강조했는데, 일부는 이를 두고 이 위원장에게 ‘권한 경계’를 명확히 하도록 김 대표가 묵시적 경고를 보낸 것이라 해석하고 있다.
다만 그는 이 위원장의 발언 해석을 놓고 당내 계파 갈등으로 비화되는 것을 염려했는지 “이한구 위원장의 언론인터뷰가 조금 왜곡 보도돼 많은 의문을 갖고 있을 것”이라며 논란을 언론의 왜곡 탓으로 돌린 뒤 “우리는 국민들께 공천권을 돌려드린다는 약속을 여러 번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룰은 누구도 손댈 수 없다”고 천명해 이 위원장을 비롯한 당내 모두에게 ‘상향식 공천’은 무슨 일이 있어도 뒤흔들 수 없단 입장을 확실히 밝혔다.
이처럼 김 대표와 이 위원장 사이의 ‘불편한 동침’은 김 대표가 강조한 ‘룰’을 넘지만 않는다면 총선까지 어떻게든 유지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지만 김 대표의 측근인 김성태, 김학용 의원 등 당내 비박계에선 사실상 현역 컷오프라며 반발하는 목소리가 높아 이를 어떻게 진화해 총선을 치를 것인지도 김 대표에게 주어진 무거운 과제라고 할 수 있다.[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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