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일부 동조 속 친박계 ‘선긋기’ 나서

이렇듯 원 원내대표의 ‘핵무장론’으로 정치권에 상당한 파장이 일어난 지 하루 뒤인 16일 또 다시 김정훈 정책위의장도 핵무장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친박과 비박으로 그간 각종 현안에서 입장차를 보여 온 두 사람이 오랜만에 ‘핵무장론’으로 다시 뭉친 모양새를 띠었지만 정국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돼 버렸다.
이런 와중에 이날 열린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현안 관련 국회 연설에서조차 한반도 배치 논란이 일고 있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는 언급됐을지언정 핵무장에 대한 언급은 일언반구 없어 이번 핵무장론 논란은 친박계의 반발에 비쳐보듯 원 원내대표가 보인 그간의 친박 행보와는 별개의 개인적 주장이었음을 증명했다.
이를 두고 대북 강경책이 여론에 힘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당위성을 얻기 쉬운 ‘핵무장론’을 거론해 ‘자신의 인기도’를 높이려는 정치전략으로 보는 비판적 시각도 있어 그가 과연 무엇을 노린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與 ‘핵무장론’ 원유철·김정훈 투톱 나서
지난 15일 임기 중 첫 국회교섭단체대표연설에 나선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맞서 우리도 자위권 차원의 평화의 핵과 미사일로 대응하는 것을 포함해 생존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밝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이날 김정훈 정책위의장마저 16일 오전 새누리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북한의 핵무기에 대비해 우리는 적어도 언제든지 핵을 만들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며 원 원내대표의 ‘핵무장론’에 힘을 실어줘 당내 논란이 한층 거세게 일어났다.
이들 모두 앞서 지난달 7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도 같은 주장을 편 바 있었는데 당시 북한의 4차 핵실험이 이뤄진 직후 내놓았듯 약 1달 뒤 벌어진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도발이 일어난 지 약 1주째인 15일 또 다시 ‘핵무장’ 필요성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평소 극단적으로 비칠 수 있는 주장인 만큼 북한 도발 시점에 맞춰 내놨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지난번 원 원내대표의 핵무장론이 과거 한반도 비핵화 선언 이전 시점에 배치된 적 있던 미군의 전술핵을 재반입한다는 ‘핵우산 의존론’ 수준에 그쳤던 데 반해 이번엔 전술핵 반입 외에도 북한이 핵 폐기하기 전까진 우리 스스로 핵을 보유하자는 ‘조건부 핵무장론’으로 한발 더 나아갔다.
이를 보여주듯 원 원내대표는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비가 올 때마다 옆집에서 우산을 빌려 쓸 수는 없다”며 “우리 스스로 ‘우비’를 튼튼하게 갖춰 입어야 한다”고 강조해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기보다 스스로 핵 개발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으로 진일보했음을 드러냈다.
특히 그는 박 대통령이 그간 북핵 폐기 주장을 정당화할 근거로 내세웠던 1992년의 한반도 비핵화 선언까지도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북한의 네 차례 핵실험으로 무의미해졌다”며 사실상 백지화됐다는 주장을 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런 가운데 과거 원 원내대표의 핵무장론에도 공감을 표했던 김 정책위의장도 그 당시엔 지지 의사를 표명한 데 그친 것과 달리 16일 발언에선 “미국은 아직 우리나라에 대해 핵 재처리를 승인해주지 않고 있다. (핵보유를 위해선) 우선 원전 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며 “한미 당국이 이번에 사드를 협의할 때 핵 재처리에 대한 논의도 함께 해주길 당부한다”고 구체적 절차까지 제시했다.
그는 앞서 지난달 7일에도 “일본은 우라늄 농축을 하고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핵무장이 가능하다”며 “동북아에서 우리 한국만 핵 고립화 돼 있는 문제를 심각히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어 일본처럼 핵연료 재처리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속내를 이날 명확히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또 김 정책위의장은 이날 단순히 ‘핵무장 과정’이란 안보 차원 외에 ‘핵 재처리 필요성’에 대한 현실적 이유도 들었는데 “지금 원전에서 사용되는 폐기물 핵연료는 전부 원전 지하에 매립하고 있는데 그게 지금 시설이 꽉 찼다”며 “평화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핵연료 재처리는 될 수 있어야 한다”고도 목소리를 높였다.
◆ 친박계, ‘핵무장론’ 꺼낸 원유철에 뭇매

이처럼 집권여당의 원내지도부가 연일 ‘핵무장 필요성’을 천명하자 여당 내에서조차 이를 경솔한 발언이라며 질타하는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는데 사안의 심각성 때문인지 김무성 대표는 지난 15일 원 원내대표의 ‘핵무장’ 발언이 나온지 1시간도 안 돼 “당론이 될 수 없고 개인의 생각”이라고 일축했다.
그럼에도 원 원내대표가 그간 친박계와 행보를 같이 해왔던 만큼 그가 꺼낸 ‘핵무장론’이 자칫 박 대통령의 의사가 반영된 것으로 잘못 비쳐질지 우려한 친박계를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이날(16일) 내내 이어졌다.
친박계 중진인 홍문종 의원은 이날 오전 SBS라디오 ‘한수진의 SBS전망대’에 출연해 “여러 국제 여건상 대부분 우리가 핵무장 하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며 “핵무장을 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외교적 방법으로 북한을 국제무대로 끌고 나오는 게 우선 우리가 해야 할 조치”라고 지적했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 대북정책 분야를 맡아 뛰었던 길정우 의원도 이날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국회 공식연설에서 언급했단 것에 대해 놀랐다”면서 “사안 자체가 예민하고 파장이 만만치 않은 문제이기 때문에 적어도 당 안에서 관련된 의원들과 논의를 거쳤으면 어땠을까”라고 말해 원 원내대표의 개인 의견이었음을 강조했다.
길 의원은 이어 “아마 당 안에서 (핵무장론을) 얘기했다면 당 안에서도 반대 의견이 상당했을 것”이라며 “(국가안보)상황이 엄중하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이해는 가지만 현실적으로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그는 “핵무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미국을 포함한 우방국 지지를 얻을 수 없을 것”이라며 “또 NPT(핵확산방지조약) 가입국으로서의 책무를 위반하는 것이기에 NPT 탈퇴도 선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길 의원은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우리 스스로 자초하는 상황을 연출하게 되는 것”이라며 “원내대표가 말씀하셨듯 이게 튼튼한 우비 노릇을 할 것이냐,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못을 박았다.
또 그는 미국의 전술핵을 한반도에 배치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미국의 핵무기를 장착한 핵잠수함 자체가 그런(핵우산) 역할을 해준다”며 “한반도 안에 전술핵을 재배치한다는 것은 군사적으로 효용이 크지 않다”고 일축했다.
이밖에 박 대통령의 정무특보를 지냈던 김재원 의원 역시 TBS라디오 ‘열린아침 김만흠입니다’를 통해 원 원내대표가 제기한 핵무장론에 우려를 표했는데 “무역으로 먹고 살고 있는 나라에서 핵확산금지조약을 깨고 우리도 핵을 갖겠다고 하면 그 후속여파는 일본의 핵무장이라든가 핵 도미노 사태가 벌어진다”고 일침을 가했다.
김 의원은 실제 핵무장할 경우에 대해 “국제사회에서 무역 보복 같은 게 있을 수밖에 없는데 과연 우리가 견뎌 내겠는가”라며 “자급자족 경제로 전환해야 될 것이고, 그렇게 될 때는 우리나라의 생존에도 직접적인 문제가 될 것”이라고 반대 의사를 확실히 밝혔다.
그는 원 원내대표의 주장과 관련, “우리가 미국의 핵우산으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 아쉽고 답답한 측면도 있어서 그런 말씀을 하셨을 것”이라면서도 “현실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그런 주장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단언했다.
또 원 원내대표가 청와대와 핵무장론에 대해 사전 교감이 있었던 것 아닌지와 관련해선 “청와대가 그런 판단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며 “그게 그렇게 지금 가능한 상황이 아니란 것은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이날 오전 당내 ‘핵무장론’에 대한 친박계의 반박에 이어진 박 대통령의 국회연설에선 어디에서도 핵 무장과 관련된 언급은 눈에 띄지 않아 청와대의 의중과는 별개로 나온 ‘개인 의견’이었음을 증명했다.
하지만 이런 시점에 ‘핵무장’처럼 외교적으로 민감해질 수 있는 사안을 집권여당의 원내 지도부가 연일 꺼냈다는 점에서 야권의 주장대로 총선을 노린 선거전략이라 보기엔 원 원내대표와 김 정책위의장 모두 정치적 부담을 떠안고 상당히 무리수를 둔 것 아닌가 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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