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민원, “답은 현장에 있다”
지자체 민원, “답은 현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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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다양한 이슈를 만들어냈던 tvN의 <미생>이라는 드라마를 봤던 시청자라면 주인공뿐 아니라 다양한 조연들이 만들어내는 저마다의 감동의 여운을 아직 지우지 못했을 게다. 특히 최근 <미생>에 이어 <육룡이 나르샤>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배우 변요한 씨가 맡은 신입사원 한석율의 캐릭터는 기이하기 짝이 없어 더욱 뇌리에 남는다. 그는 신입사원임에도 항상 자신감이 넘치고 어딜가나 뛰어난 친화력을 발휘한다.
 
자연스레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마련이고, 사무실에서 회사의 입장만 내세우던 상사에 반발한 하청업체 직원들은 결국 신입사원에 불과한 한석율의 소통 의지에 마음을 꺾고 갈등을 접는다. 무엇이 초짜에 불과한 그에게 이토록 넘치는 패기와 친화력, 그리고 소통 능력을 주었을까. 그를 떠올리면 반드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사이자 드라마 내내 그가 강조하던 대사가 해답이 될 것 같다. “역시 현장이지 말입니다”
 
원청에 틀어박혀 벌이는 탁상공론 속에 하청업체들이 소통을 포기하고 극한으로 치닫기 직전, 항상 현장을 강조하던 그는 결국 하청업체들과의 교감에 성공한다. 치열한 갈등을 진정시키고 파국을 막은 그의 공로는 어떠한 엘리트라도 쉽게 달성하기 힘들다. 한석율이 현장에서 많은 경험을 쌓고 현장의 어려움과 고민을 몸소 체감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비단 생산현장뿐 아니라 요즘 같은 불통의 시대에 “답은 현장에 있다”는 그의 메시지를 새겨들어야 할 곳은 너무나도 많다. 특히 우리들의 모든 삶과 직접적으로 접점을 형성하고 있는 지자체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현재 지자체가 대민 서비스의 최일선 창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 이유가 바로 민원의 ‘현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지자체 행정에 불편을 겪은 주민들은 민원을 제기하려다가도 “한통속인데 제대로 처리가 될까”, “이해를 해줄 것 같지도 않은데 괜히 귀찮아지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에 머뭇거리기 마련이다. 실제 많은 지자체 공무원들은 민원인들의 고충을 처리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실적 채우기에 급급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처리가 늦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어설픈 마무리로 불만을 사는 경우도 많다. 단체장은 민원 해결보다는 재선 또는 다음 정착지를 위한 전시성 행정에만 관심을 기울이기 마련이다.
 
이렇다 보니 주민들이 느끼는 불신의 뿌리는 지자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다. 특히 주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도시계획이나 건축사업 등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지자체의 행태는 그야말로 ‘현장’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주민설명회 등의 제도가 있지만 사실상 요식행위로 전락한지 오래고 반대 의견은 묵살당하기 십상이다. 해외에서는 도시계획을 추진할 때 오랜 기간의 현장 조사는 기본이고 거주 주민들과의 지속적인 소통으로 최고는 아닐지언정 최선의 대안이 마련되는 경우가 보통인데 우리나라 지자체 ‘나를 따르라’식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최근 국민권익위원회가 실시한 지자체 고충민원 처리 실태 조사(최우수·우수·보통·미흡·부진 총 5단계)를 보면 243개 지자체 중에 최우수·우수 등급을 받은 지자체가 44곳(18.1%)에 불과하고 미흡·부진을 받은 기관은 무려 146곳(60.1%)에 달했다. 우수 등급 이상이 늘었다거나 미흡 등급 이하가 줄었다는 식의 평가는 별로 의미가 없다. 최근 전시성 행정과 단체장의 치적쌓기로 잇따라 구설에 오른 서울의 한 자치구는 어김없이 최하위 등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자체가 주민들의 민원을 성심성의껏 다뤄야 하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인데 국가기관이 이런 조사를 하는 것 자체도 부끄러운 일이라는 자각이 있어야 한다.
 
정보 기술의 발달로 일선 지자체 공무원들의 행정 업무는 갈수록 자동화되고 있는데도 소위 ‘엉덩이’가 무거워진 공무원들이 지자체의 주인인 주민들의 민원을 처리하면서 현장에서 답을 찾기보다 탁상공론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개탄스럽다. 행정의 자동화의 취지가 그만큼 절약되는 시간을 현장에 쓰라는 것이라는 점을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자체는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때다. 현장이 답이다. 언제나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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