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 3주기 추모식 금강산서 열려
- 현대건설 인수, 대북사업 지속 등 고인 유지 이어가 …
지난 4일, 북녘 땅 금강산에서는 고 정몽헌 전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3주기 추모식이 있었다. 외환위기 충격 속에 현대그룹이 와해되는 것을 지켜봤던 ‘비운의 경영자’고 정 전 회장은 지난 2003년 8월 4일. 44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져 당시 세간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인물이다.
고 정 전회장 이외에도 국내 재계에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비운의 재벌가 2세들’이 있다.
재벌2세가 꿈인 어린이들이 많아지고, TV드라마에서도 재벌2세와 관련된 소재가 인기를 얻고 있을 정도로 세인들의 ‘재벌 2세’에 대한 동경은 그야말로 ‘신델렐라의 꿈’에 비견될 정도다.
하지만 이들‘재벌 2세’들도 죽음앞에서는 일반인과 별로 달라보이진 않는다.
본지에서는 지병 또는 사고 등으로 인해 일찍 세상을 등진‘비운의 재벌가 2세들의 이야기’들을 시리즈로 다뤄본다.
지난 4일, ‘비운의 황태자’고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이 세상을 떠난 지 꼭 3년째 되는 날, 금강산에서는 대규모 추모행사가 열렸다.
지난 2년간 식구들끼리 조용한 추도식 정도로 거행되던 것과는 달리 추모사진전, 음악회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 것이다.
◆ 다양한 추모행사 열려
‘왕회장’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5남으로 1948년 태어난 고 정몽헌 회장은 보성고등학교,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 경영대학원과 미국 페어레이디킨스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각각 석사학위를 받았고, 연세대학교에서 명예 경영학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고 정 전 회장은 1975년 현대조선중공업 평사원으로 입사 했다. 이후 1977년 현대건설(주) 이사를 시작으로 1981년 현대건설(주) 대표이사 회장까지 형제들 가운데 유일하게 단계적인 경영수업을 받았다. 그만큼‘왕회장’생전에 총애를 한몸에 받기도 했으며 신임도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981년 현대상선(주) 대표이사 사장을 맡아 본격적으로 경영전면에 나선 고 정 전 회장은 현대전자(1984~1991), 현대엘리베이터(1989~1992) 사장을 지냈고 1995년까지는 현대상선(주)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1998년 현대그룹 공동회장에 취임한 정 전 회장은 금강산 관광 등 그룹 내 대북사업을 주도하면서 ‘왕회장’의 강력한 후계자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0년 3월,‘왕자의 난’이후 정 전 회장의 입지는 점점 좁혀지기 시작했다. 현대건설, 현대전자 등 그룹 내 주력 계열사들이 국내 유동성 위기에 휘말리면서 줄줄이 채권단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에 취임한 정 전 회장은 아버지‘왕회장’의 유업인 대북사업에 전력을 쏟아 부었다. 북한의 통신, 전력 등 7대 개발 사업에 대한 독점권을 확보하며 사업의 다각화를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비운의 날’2003년 8월, 정 전 회장은 그룹 사옥에서 투신, 싸늘한 시신으로 경비원에 발견되어 세간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당시 세간에서는 정 전 회장의 투신을 두고‘자살이냐 타살이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고 ‘자살논쟁’의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은 상태다.
비록 정 전 회장이 외환위기의 충격 속에 그룹의 와해를 지켜봐야 했던‘비운의 경영자’였지만, 분단의 장벽을 허물어 본격적인 경제협력과 관광, 인적교류의 물꼬를 튼 공로는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침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2년간의 침묵을 깨고 대규모 추모행사가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즉 정 전 회장의 명예회복은 물론 고인의 업적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추모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추모사진전은 서울 적선동 현대상선 사옥과 금강산 추모비 앞에서 열렸다. 특히 금강산 추모비 앞에서 열린 사진전에는 그동안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고인과 현정은 회장의 연애시절 사진을 비롯해 가족사진, 남북경협사업 초창기 시절 백두산과 내금강을 답사했던 생생한 활동상이 담긴 사진 등을 새롭게 선보이기도 했다.
또한 현 회장이 남편을 그리며 직접 쓴‘사부곡’이 사진전과 함께 공개 돼 이목을 끌었다. 현 회장은 편지글에서“작은 바람이 홀로 남은 저를 흔들 때마다 당신 생각에 다시 한 번 입술을 깨물어 봅니다”라며“정 회장은 대의 앞에서는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았던 신념의 경영자이며, 민족 화해를 위해 가장 앞에서 발로 뛰던 실천가였다”고 회고했다.
현 회장은 또 최근 주춤하고 있는 대북사업을 염두에 둔 듯“고인의 뜻을 쫓아가는데 걸음이 느린지 자꾸 넘어진다”라며“하지만 아무 일 없었던 듯 일어나려 한다”고 새롭게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북한은 이번 추모행사에 고위인사는 물론 한명의 북측인사도 참여하지 않았다. 이는 최근의 북?미간, 남?북간 정세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측은 일찌감치 추모메시지를 보내고 실무진이 내려와 현정은 회장을 만나고 갔다. 북측은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명승지종합개발회사 명의로 보낸 메시지에서 정 전 회장에 대한 추모의 뜻과 함께“현대그룹이 남북경제협력사업에서 새로운 성과가 있기를 기대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북측의 이같은 메시지는 비록 추상적이긴 하지만 결국 고인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의미와 함께 한동안 주춤했던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에도 탄력이 붙을 수 있다는 전망도 가능해진 것이다.
현 회장 역시 추모행사 다음날 외금강 호텔에서 가진 기자간담회 자리서“현대건설은 원래 현대그룹에 속해 있었고, 몽헌 회장도 어려워진 현대건설을 살리기 위해 사재를 털어 넣으면서까지 많은 애를 썼다”며 “올해 남은 반년의 목표를 현대건설 인수로 정하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 회장은 또 최근 불거지고 있는 롯데관광의 개성관광 참여문제와 관련“북측으로부터 공식적으로 통보받은 바 없다”며 “개성관광은 몽헌 회장때부터 북측과 합의했던 내용이고 그에 대한 투자도 했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2006년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남편 고 정몽헌 전 회장의 주모행사를 기점으로 보다 적극적인 현대건설 인수, 대북사업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고인 업적 재평가
“지난 3년간 숱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보이지 않는 힘이 도와준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아마도 몽헌 회장이 도와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는 현정은 회장의 말처럼 정 전 회장 사후 3년, 현대그룹은 다시 급격한 변화의 중심에 자리할 것으로 보여진다.
※ 다음호에는 ‘비운의 재벌가 2세들’ 2탄 ‘삼성家 고 이윤형씨 죽음의 미스테리편’을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