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배, ‘현역 물갈이’ 재언급…당내 반발 극복할까

아직 원내교섭단체 구성이라는 장벽을 넘지 못한 국민의당은 현역 의원 1명이 아쉬운 상황이지만 더민주와 야권 맹주 자리를 두고 다퉈야 하는 입장에서 보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지지층을 끌어 모으기 어려워지는 만큼 ‘현역 물갈이’를 안 할 수도 없어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다.
특히 지역구에서 교체 목소리가 높았던 광주지역 현역 의원들이 대거 더민주를 탈당해 국민의당에 합류했었단 점을 돌아보면 ‘현역 물갈이’ 움직임이 본격화할 경우 당내 현역의 다수를 이루는 이들에게 우선 칼날이 향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반발해 재탈당을 감행할 경우 총선을 앞두고 당이 크게 흔들릴 위험성이 높아 지도부 대부분은 당장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국민의당 합류 전부터 ‘현역 물갈이’를 주창해왔던 천정배 공동대표가 26일 다시금 ‘현역 물갈이’에 대해 운을 떼면서 본격 공론화될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지지율 급락 ‘국민의당’ 현역 물갈이 외엔 처방 없나
현재까지 국민의당 행보를 보면 신규 정치신인을 영입하는 것보다는 현역 의원이나 기존 인지도 있는 재야인사를 영입하는 데에 방점을 둬 왔다.
그도 그럴 것이 신생정당인만큼 인지도 높은 인사들을 포진시켜 작더라도 밀리지 않는 정당이란 이미지를 굳히려는 것은 물론 앞서 문재인 대표 시절 더민주에서 촉발시킨 영입 경쟁의 연장선상에서 지금까지 맞대응 차원으로 소위 ‘혁신’ 인사들을 끌어오는 데 힘써왔다.
일례로 과거 더민주 문 대표 측에서 영입한 김종인 선대위원장에 맞서 국민의당은 한상진·윤여준 창준위원장 영입을 성사시킨 바 있고, 최근까지도 지난 17일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를 영입한 데 이어 이틀 뒤엔 그와 반대 성향인 정동영 전 의원까지 영입하는 등 인지도 있는 인사 영입에 공을 들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국민의당 지지율은 계속 하락세를 이어온 데 이어 26일 발표된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조사 이래 최저치인 8%를 기록해 정당 지지율이 처음으로 한 자릿수에 그치게 되면서 더민주와의 격차가 더 크게 벌어졌다.
또 과거 더민주에 앞섰던 호남지역 지지도 역시 더민주는 현 수준을 유지한 데 반해 국민의당은 이마저 떨어지면서 더는 간과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이처럼 적지 않은 공을 들여왔음에도 지지율이 급락을 거듭하는 이유에 대해 일각에선 그동안 먼저 야권의 쟁점을 주도하지 못하고 더민주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형태에 그쳐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됐다고 보고 있다.
즉, 더민주의 경우 인재 영입 경쟁은 사실상 김종인 선대위원장 영입으로 정점을 맞고 곧바로 그를 중심으로 지도부를 재편한 뒤 그간 미뤄왔던 문 대표의 사퇴로 이어지며 단지 인재 영입에 그치는 게 아니라 지도부 재편까지로 여론의 관심을 이끌어낸 데 비해 국민의당은 더민주측 김 선대위원장의 국보위 전력을 문제 삼으려다 오히려 한상진 위원장의 이승만 국부 발언으로 더민주에 역공을 당한 데 이어 최근 영입한 이상돈 공동선대위원장은 별안간 동생들과 상속 논란에 휘말려 구설수에 오르는 등 인재 영입에 대해서도 공 들인 데 비해 빛을 보지 못했다.
또 이미 지도부가 김 선대위-비대위원장을 중심으로 일원화된 더민주에 비해 국민의당은 중도를 표방한 정당인 관계로 그간 성향이 다른 이런 저런 인사들까지 영입하다 보니 특정 사안을 두고도 당내 목소리가 통일되지 못하는 ‘사공이 많은 배’가 된 것은 물론 내분을 일으킬 만한 여유가 없는 작은 정당인데다 총선을 목전에 뒀다는 부분까지 겹쳐 ‘현역 물갈이’ 등 지도부 사이에도 비교적 이견 차가 클 만한 쟁점사항에 대해 확실히 짚고 넘어가지 못하고 충돌을 피하기 위해 미뤄두는 모습을 보이는 점도 지지율 하락의 이유로 꼽히고 있다.
국민의당에 비해 더민주는 인재 영입에 이어 지도부 교체도 마친 뒤 이제 본격 컷오프에 들어간 상황인데 현역의원만 100명이 넘는 더민주의 경우 컷오프를 일종의 정당 이미지를 쇄신할 기회로 삼을 수 있지만 현역의원이 17명에 불과한 국민의당은 선제적으로 현역 컷오프를 시도하기는커녕 후폭풍에 더민주보다 더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만큼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이는 흡사 구형 재고품을 매몰비용 처리하고 신제품을 시중에 출시할 자본력과 규모를 갖춘 대기업을 재고품 처리에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중소기업이 당해내기 어려운 상황과 유사해 국민의당이 더민주와 경쟁하기 위해 그와 동일한 전략으로 맞대응하기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아울러 기존 정당과 다르다는 기대를 지나치게 크게 불어넣은 나머지 초기 정당 지지율이 폭등할 수 있었지만 그 기대에 속히 부응하지 못한 만큼 역효과도 크게 일어나 지지율이 폭락한 것으로 보여 안 대표가 현실적 측면을 간과한 채 창당 전부터 높은 도덕적 기준과 청렴도 등을 내세웠다는 점도 더민주와 차별화된 포인트는 될 수 있을지언정 현 시점엔 오히려 스스로를 옭아매는 족쇄가 돼 지지율을 묶어놓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원내교섭단체 구성’이란 당면과제인데 20명의 현역 의원을 확보하기 위해 입법로비 혐의로 1심에서 유죄선고를 받은 뒤 더민주를 탈당한 신학용 의원까지 안 대표가 국민의당에 받아들이면서 큰 논란이 된 바 있다.
더민주에서 탈당하기 전 안 대표는 아직 금품수수 혐의와 관련해 확정판결이 나오지 않은 박지원 의원에 대해 당시 기소됐단 전력만으로 공천 배제를 주장했으나 국민의당 창당 후엔 신 의원이 이미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기에 합류에 문제없다며 자신이 내세웠던 도덕적 기준을 완화시키는 이중적 행태를 보였단 부분 역시 지지자들의 신뢰를 잃게 된 원인으로 꼽힌다.
또 이런 상황에서 현재 더민주가 주도하는 현역 컷오프나 ‘북한 궤멸론’ 등 대북관계에 대한 일부 ‘변화된’ 시각 등은 오히려 그동안 ‘새정치’와 ‘중도 성향’을 내세운 국민의당이 먼저 보여줬어야 하는 부분임에도 더민주에 선수를 빼앗긴 것은 물론 대북정책조차 호남 표를 의식한 나머지 더민주보다 더 ‘햇볕정책’을 강조하며 중도가 아닌 ‘좌 클릭’ 행보를 보여 북한에 우호적이지 않은 여론이 지배적인 현 상황에선 국민의당이 더더욱 어려운 국면에 처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만한 방법은 앞서 거론했듯 국민의당 규모에서는 배수진이나 다름없는 ‘현역 컷오프’ 카드뿐인데 이마저도 사실 신인들을 중심으로 벌써 늦었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당내 지도부가 본격적으로 이 최후의 카드를 뽑아들 것인지 주목되는 가운데 26일 천정배 공동대표가 ‘현역 컷오프’에 대해 조심스러웠던 최근 입장에서 다시 선회해 오랜만에 ‘현역 물갈이’ 필요성을 거론함으로써 실제 단행될 수 있을 것인지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 천정배 ‘현역 물갈이’ 첫 방아쇠 당기나
천 공동대표는 26일 오전 서울 마포구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들에게 총선에서 현역 의원들의 당선 가능성이 높냐는 질문을 받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함부로 말할 것이 아니다”라며 “우리 국민의당은 더민주에 손색이 없는, 더한 변화와 헌신의 모습을 우리 스스로 보여야 한다”고 말해 상기한 당면과제들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내비쳤다.
그는 이어 “우선 나 자신이 광주의 국회의원이고 지난해 4월 스스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의 후보를 이기고 된 사람”이라며 “정치가 기득권이나 패권을 지키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개혁, 변화, 발전 그리고 스스로 헌신하는 정치를 강력히 원하는 분들이 광주 시민”이라고 밝혀 현역 물갈이를 강력히 시사하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면서 “국민의당과 더민주 중 어느 세력이 더 개혁적이고 박근혜 정권 하에서 고통받고 희망을 잃은 국민들에게 희망적인 미래를 줄 수 있느냐 하는 개혁 경쟁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만큼 천 의원은 더민주 컷오프 의원들을 영입하려는 입장에 대해서도 부정적 견해를 표명했는데 “그 당(더민주)에서 말하는 취지대로 의정활동 성적이 불량했다거나 여러 문제가 있어서 공천에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컷오프가 됐다면 그런 분들을 모실 이유가 전혀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다만 “자질이나 여러 자세에서 문제가 없는 분임에도 정치 패권주의 등에 의해 희생양이 됐다면 그건 전혀 다른 문제”라고 여지를 남겨 더민주 컷오프 의원 중 안 대표가 영입 의사를 내비친 송호창 의원 등을 감안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 문병호 등 당내 현역, ‘컷오프’ 제동 거나

하지만 당내 호남 현역 의원들이 11명에 이르는데다 이들을 중심으로 현역 물갈이에 부정적 기류가 흐르는 만큼 천 대표가 쉽사리 결정하기도 어려운 처지인데 당장 문병호 의원은 26일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어렵게 결정(탈당)하고 신당으로 왔는데 거기서 문제를 삼으면 되느냐는 의견도 상당히 지적할만하다”며 ‘현역 물갈이 반대’에 힘을 실었다.
문 의원은 이어 “변화와 혁신 측면에서 국민의당이 가장 앞서가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히면서도 “새누리당이나 더민주는 현역들이 150명 108명 이렇기 때문에 물갈이 대상이 많은 반면 국민의당은 17명밖에 없다”며 “현역들을 많이 바꾸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현실적 한계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의적 물갈이보단 엄정한 공천 시스템에 의해, 예를 들어 선거인단이나 여론조사에서 신인 가산점을 줘 현역을 이길 수 있는 기회를 균등하게 주는 방식으로 공천을 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문 의원을 비롯한 국민의당 현역들은 전날 더민주 김 비대위 대표의 탈당 의원을 포함한 컷오프 명단 공개 방침에 크게 반발했는데 이날 김 대표의 공개 결정 번복으로 명단 공개가 백지화되자 우선 한숨 돌리면서도 더민주의 이 같은 압박에 밀려 천 대표를 중심으로 당내 신인들이 요구하는 ‘현역 물갈이’ 움직임이 표면화되면서 잔뜩 긴장한 분위기다.
과연 천 대표 역시 더민주의 방식처럼 과감한 컷오프를 단행하게 될 것인지 문 의원의 주장대로 원내교섭단체 구성 등을 고려해 현실과 타협하는 방식을 택할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될 것으로 보인다.[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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