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계 진화에도 비박계 반발 속 파장 확산…공관위, 불똥 튈까 ‘전전긍긍’

지난해 청와대 정무특보를 지낸 바 있는 친박계 핵심인사인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이 지난달 27일 지인과의 통화에서 김무성 대표를 겨냥한 극언을 퍼부은 사실이 8일 한 언론의 녹취록 공개로 확인되면서 구설수에 올랐다.
이에 윤 의원은 9일 자신의 지역구에서 즉각 상경해 취중 실언한 것이라고 해명하며 김 대표에게 사과하겠다는 뜻을 피력했지만 비박계는 윤 의원의 발언 중 ‘공천 탈락’을 암시한 점을 문제 삼아 윤 의원과 수신한 자가 누군지 밝히라며 친박계의 공천 학살 의도가 드러났다고 공세를 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김 대표마저 현재로선 윤 의원과 대면할 의사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윤 의원은 친박계의 비호에도 불구하고 궁지에 몰린 분위기다.
이번 사태는 그간 김 대표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 사이의 갈등을 통해 보여준 새누리당의 공천 전쟁이 정점에 다다른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는데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계파 간 충돌이 본격 표면화된 만큼 자칫 총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윤 의원의 발언이 단순히 대표 비방에 그친 수준이 아니라 민감한 시기에 특정인에 대한 낙천을 거론하고 이를 실현할 일자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했다는 점에서 그저 실언으로 덮고 가기엔 결코 가볍지 않아 향후 윤 의원에 대한 징계나 거취 문제는 물론 공천 결과에 대한 신뢰도 문제로까지 확대될 것인지도 주요 관심사로 꼽히고 있다.

당장 비박계 이재오 의원은 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윤 의원 관련 녹취록 중 ‘비박계를 솎아내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꼬집어 “(윤 의원이) 비박계를 솎아낼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전화한 것이다. 공관위원이거나 공관위에 명령을 내릴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며 노골적으로 공관위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이처럼 이번 사태가 공천 신뢰도 문제로까지 비화될 조짐을 보이자 이 공관위원장은 이를 상당히 경계하며 윤 의원 파문조차 공관위가 아닌 윤리위가 다룰 문제로 넘기고 거리를 뒀는데 그간 이 공관위장과도 비박계가 불편한 관계를 이어왔던 만큼 윤 의원으로 인해 수면 위로 떠오른 여권의 공천갈등이 어떤 결말을 맺게 될 것인지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 윤상현 ‘자충수’, ‘살생부 파문’이 원인?
‘살생부 파문’의 여파가 윤 의원의 ‘막말 파문’이라는 또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며 그동안 입지가 좁아졌던 비박계에 정국 전환의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앞서 친박계 핵심인사로부터 김무성 대표가 공천 살생부를 받았다는 논란이 불거졌다가 이를 김 대표에 전해 들었다는 정두언 의원과 김 대표 간 진실공방으로 비화되면서 결국 김 대표가 사과하는 선에서 사태가 매듭지어졌는데, 대신 김 대표는 리더십에 크게 타격을 받으면서 이 비대위원장에게 공천 주도권이 크게 쏠리게 된 바 있다.
이렇듯 ‘살생부 파문’은 살생부가 실재했다면 김 대표가 언론 보도와 정 의원과의 공방으로 비록 자신의 리더십에 타격은 입을망정 ‘친박’발 살생부를 무력화시키고 이 위원장에 압박을 주는 육참골단의 전략을 편 셈이라 할 수 있지만, 이 위원장을 압박할 목적으로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았던 ‘살생부 루머’를 자작했다가 결과적으로 사과한 게 된 거라면 김 대표는 공작 실패로 역풍을 맞게 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그럼에도 ‘자작극 실패’란 후자의 해석을 인정한 것인지 김 대표는 ‘살생부 파문’에 대해 사과했던 지난달 29일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를 정두언 의원에게 얘기한 건 사실이지만 (친박계로부터) 문건을 받은 것처럼 잘못 알려진 건 전혀 사실이 아니란 점을 분명히 밝혔고, 정 의원도 확인했다”며 ‘살생부’의 존재 자체를 부인했다.
하지만 이번 ‘막말 파문’으로 드러난 막후 상황을 고려할 경우 김 대표가 공식적인 ‘살생부’는 아닐지언정 ‘살생부 같은 내용의 이야기’도 있었다는 등 관련 논란의 모든 부분을 인정한 반면 그 전달 주체가 ‘친박계 인사였다’라는 점에 대해서만 부인함으로써 ‘살생부 파문’에 대한 모든 책임을 김 대표의 자작극으로 규정해 김 대표를 밀어내려는 역공작을 친박계가 펼친 건 아닌지 강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번 막말 파문에서 과거 ‘살생부 파문’을 굳이 거론하는 이유는 윤 의원이 9일 기자들에게 “제가 그날 취중에 얼마나 격분했나. 있지도 않은 살생부 파문 그걸 제 입장에서, (친박) 핵심인사라는 게 몇 명이겠나. 절대 그런 일 없는데 그게 대문짝만하게 뉴스 보도에 나오는데 여러분들 입장이라면 어떻겠나”라며 스스로 막말의 원인이 ‘살생부 파문’에 있었음을 밝힌 데 있다.
‘살생부 파문’에 대한 윤 의원의 이날 언급이 실재하지 않는 살생부와 관련됐다는 억울함에서 나온 진심어린 반응인지 아니면 결과적으로 친박계와 이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준 살생부 파문이 윤 의원 등 친박계가 김 대표를 상대로 펼쳤던 정치공작이었다는 의혹을 차단하기 위한 거짓말인지 아직 확인할 길은 없지만 윤 의원의 통화 녹취록에서 살생부 파문 당시 김 대표와 진실공방을 벌인 정 의원이 분명히 언급됐다는 부분은 눈여겨 볼만하다.
윤 의원이 누군가와 김 대표를 겨냥한 ‘막말’ 통화를 했던 지난달 27일 그는 당시 ‘살생부 파문’과 관련해 “(김 대표를) 내일 쳐야 돼! 내일 공략해야 돼”라며 “정두언이하고 이야기할 준비가 돼 있어”라고 정 의원과의 접촉까지 불사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를 증명하듯 정 의원은 9일 “그날(2월 27일 윤 의원으로부터) 전화가 오긴 했지만 통화는 못했다”며 윤 의원이 정 의원과의 통화를 시도했었다는 사실에 대해선 인정했다.
◆ 공천 ‘칼자루’ 쥔 이한구, 친박계와 한통속?
또 취중실언이란 윤 의원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27일 통화 녹취 내용에 따르면 “내일 쳐야한다”며 정확한 일자까지 암시했는데, 이 역시 다음날인 28일 김 대표와 신경전을 벌여오던 이 위원장이 당사에서 전격 기자회견을 열고 “공정한 공천을 해야 하는 사람이 ‘찌라시 딜리버리’, ‘찌라시 작가’ 비슷하게 의혹 받는 상황을 그대로 놔둘 수 없다. 우린 결코 친박이니 비박이니 구별하며 공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당 공식 기구에서 (살생부 파문을) 철저히 조사하기 바란다”고 정면 돌파에 나섰다는 점에서 이 위원장에게도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 같은 이 위원장의 회견 다음 날인 29일엔 오전 최고위원회의부터 친박계 맏형 서청원 최고위원이 “유감스러운 것은 이런 (살생부) 파동의 중심에 서 있는 김 대표께서 공개적으로 ‘그런 문건을 받은 일이 없다. 그런 말한 일 없다’고 해놓고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안 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김 대표에 사과를 요구했고 같은 날 친박계 김재원, 이장우 의원 등도 오전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지원사격을 펼치자 결국 이날 김 대표는 살생부 파문에 대한 사과를 하며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고 이후 정국 주도권은 이 위원장에게로 급격히 기울었다.
일례로 살생부 파문 이후인 지난 8일 이 위원장이 당사에서 “우리 당헌에 보면 정치적 소수자, 정치신인을 우대하게 돼 있는데 이미 (경선 비율이) 선정돼있다는 이유로 3대 7 방식을 우대하는 제도가 돼선 안 된다”고 밝히며 ‘현역 물갈이’ 바탕을 마련하려 하자 9일 오전 최고위원회는 비공개 회의를 연 뒤 공관위에 공천 경선 비율 결정권까지 위임하는 등 이 위원장의 권한을 대폭 확대시켰다.
이를 통해 보듯 윤 의원의 막말 시점에 맞춰 공교롭게도 이 위원장과 친박계의 공세가 이어졌고 살생부 사태에 대한 사과를 요구받고 당내 입지가 줄어든 김 대표가 침묵에 들어간 반면 이 위원장은 이후 공천 관련 권한을 거의 장악해갔다는 면에서 친박계와 이 위원장이 연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는 건 필연적인데 사실로 확인될 경우 공천심사에 대한 공정성 논란까지 불거질 수 있어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 것인지는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다.

또 이 위원장과 친박 인사들과의 관계에 대해 특기할 만한 부분은 친박 핵심인사인 윤 의원이 특정인 낙천까지 거론하며 공천 개입을 암시하는 내용의 막말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데도 이 위원장이 공천과 관련된 어떤 개입 의사에도 크게 반발하는 반응을 보였던 과거와 달리 9일 “친구와 술 한 잔 먹고 한 것 아닌가”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넘기는 모습을 보였단 점이다.
아울러 이미 녹취록까지 확인됐고 윤 의원 본인도 자신의 취중실언이라며 발언 사실에 대해선 인정한 상황인데도 이 위원장은 오히려 “자기들끼리 개인적인 얘기를 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 않느냐”며 발언 사실 자체를 의심하는 듯한 견해를 내비쳤고, 공천 심사에 영향을 줄 가능성에 대해서도 “너무 많은 요소를 감안하면 심사할 수가 없다”고 일축해 일견 윤 의원을 비호하는 것 아니냐는 인상까지 풍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누리당은 오는 10일 2차 공천안 발표를 앞두고 있는데, 공천안 발표 하루 전 벌어진 윤 의원 ‘막말’ 파문이 이 위원장과 공관위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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