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vs 이세돌’, 올바르게 보는 자세
‘알파고 vs 이세돌’, 올바르게 보는 자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이 하루하루 엄청난 화제다. 바둑이 이만큼이나 전세계적으로 주목받았던 때가 있었나 싶다. 바둑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조차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을 실시간으로 보기를 주저하지 않고 대국이 벌어지는 동안에는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 온동 대국 얘기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 컴퓨터의 완승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듯 이세돌 9단을 응원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세돌 9단은 알파고와의 첫 두 판을 내리 지고 말았다. 첫 번째 판은 탐색전 성격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두 번째 판의 완패는 사람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안겨준 것 같다. 이세돌 9단이 스스로 “단 한 번도 유리한 상황이 없었다”고 밝혔을 정도로 알파고가 세계 최정상급 기사에게 완승을 거뒀다는 점에서다.
 
물론 아직 세 판의 대국이 더 남았지만 현재 형세로는 나머지 대국들의 결과도 그다지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충격적인 결과인 만큼 다양한 반응들이 나오고 있는데 바둑계에 대한 우려, 인공지능의 한계에 대한 두려움과 우리 삶에 일어날 변화에 대한 전망 등이 주를 이루는 것 같다. 일각에서는 인류의 패배라는 극단적인 소리까지 나온다거나 심지어는 인공지능이 우리를 지배할 것이라는 황당무계한 얘기까지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알파고가 바둑에서 최정상급 기사를 이겼다는 것은 인류의 축복이 아닐까 한다. 남은 대국에서도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긴다면 인공지능이 벌써 적어도 한 분야에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점이 증명되는 것이다. 실제 이세돌 9단을 포함해 많은 프로 바둑기사들은 알파고의 몇 몇 수들을 두고 ‘인간이 둘 수 없는 수’라거나 ‘기존에 없는 수’라고 입을 모았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데 왜 인류의 축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이 커진다는 반응이 나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직업이 사라지는만큼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는 것은 인류 역사상 공통적인 과정이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이세돌 9단을 응원할 수는 있다. 우리나라 바둑의 자존심이었던 이창호 9단의 뒤를 이어 가장 최근까지 세계 최정상에 머물러 있던 그가 역사적인 패배를 기록하기보다는 인류의 자존심을 세워주기를 바라는 시각도 나올 수는 있다. 하지만 그가 패했다고 인류가 지는 것은 아니다. 인류는 알파고의 승리를 발판삼아 더욱 발전된 삶을 누릴 것이고 알파고의 승리가 곧 인류의 승리다. 이세돌 9단의 승리가 인류의 승리가 아니라는 얘기다. 알파고의 승리가 어째서 인공지능에 대한 공포를 불러온다거나 미래에 내 직업을 모두 뺏길 것이라는 우려를 낳는지 납득하기 쉽지가 않다.
 
바둑계에 대한 걱정은 기우에 가깝다. 대체적으로 프로 바둑 기사들이 넘지 못하는 영역이 있는 것이 증명되면서 바둑에 대한 흥미가 줄어들 것이라는 얘기인데, 인간의 영역을 넘는 세계가 있다고 해서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은 말도 안 된다. 지금 상황을 보라. 바둑 역사상 전 국민이 이렇게 바둑 경기를 제대로 보던 적이 있었던가. 커뮤니티의 대화에 끼기 위해 모르던 룰을 찾아보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관심이 높아지면 저변이 확대되는 것이 당연하다. 어린 학생들에게 바둑 열풍이 불 조짐이 감지된다는 얘기도 들린다. 2002년 월드컵 4강 이후 소위 ‘월드컵 세대’가 축구 흥행의 중심이 된 상황이나 2008년 베이징올림픽 우승 이후 폭발하기 시작한 야구 붐 등을 상황을 감안하면 이번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은 소위 ‘알파고 세대’를 양산할 가능성이 더 높다.
 
일각에서는 이미 20여년 전부터 인공지능이 우위를 보이기 시작해 이제는 감히 인간이 넘볼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른 체스판의 예를 들며 바둑계도 위기가 올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체스판은 인공지능에 패해 망한 것이 아니다. 1996년 딥블루가 수 차례의 도전 끝에 체스 세계 챔피언 카스파로프를 꺾은 일은 분명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후 체스 대회 상금 규모는 소폭 감소했다가 다시 어느 정도 복구됐다. 인공지능의 발달은 오히려 어린 나이에도 체스 그랜드 마스터를 딸 수 있게 돕는 등 도움이 되는 측면이 더 많다. 체스판이 그때보다 인기가 줄어든 것은 딥블루 때문이 아니라 스마트폰 등의 전자기기가 발달하면서 어려운 스포츠보다 직관적인 스포츠를 더욱 선호하게 되는 등 세태 변화에서 기롯됐다고 하는 것이 온당하다. 바둑계 역시 ‘알파고 쇼크’ 같은 것을 걱정할 일은 없다는 얘기다.
 
더욱이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패배한다고 해서 현 세계 랭킹 1위인 중국의 커제보다 못한다거나 하는 소리를 들을 이유는 더더욱 없다. 이겨도 본전인 상황에서 그가 과감히 결단을 내리고 전 세계적인 관심을 모두 떠안은 덕에 우리는 흥미로운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됐다. 우리는 그에게 감사의 뜻을 백번 표해야 마땅하다. 그가 인류 대표로 적절치 않다는 등의 소리를 들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남은 세 판의 대국에서도 이세돌 9단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현재까지 상황으로 보면 다 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세돌 9단을 향한 비난을 보낸다거나 알파고로 인한 인공지능의 발전에 대해 쓸데없는 공포감을 보일 필요는 없다. 이세돌 9단이 이기면 이기는대로 짜릿한 역전승의 기분을 만끽하면 되고 알파고가 이기면 이기는대로 이세돌 9단에게 박수를, 인류의 미래에는 희망적 시선을 보내면 되는 것이다. 인류가 통제할 수 없는 인공지능 따위란 영화 속에서나 존재할 뿐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은 이 세기의 대국을 그저 즐기는 일 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돗자리깔았네 2016-03-11 17:52:43
설레발을 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