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을 만들어낸 '스크루볼 코미디'에 대해 알아본다
언제나 '역사'에 관한 문제는 단순한 학술적 문제를 넘어서 수수께끼 퍼즐을 푸는 것과 같은 나름의 재미를 선사해주는데, 딱딱한 아이템을 제외하고서 근래의 히트 영화들을 보면서도, 누구나 한 번쯤은 '이 영화의 원류는 무엇일까'하는 생각, 해 보았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요즘 유행하는 갱스터 영화의 경우, 대부분 1940년대의 필름느와르 영화들에 큰 영향을 받았고, 검투극의 경우는 1950년대의 그리스 신화 서사극과 성서 서사극들, 그리고 공포영화들은 알프레드 히치코크의 "싸이코"(1960)로부터 이어지는 긴 전통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수년 전부터 한국 영화계에 확고히 자리잡은 '로맨틱 코미디'의 경우는? 바로 1930∼40년대의 '스크루볼 코미디'를 그 원류로 볼 수 있다. 탁탁 치는 빠른 대사와 엎치락 뒷치락하는 애증을 관계, 신분 차에 관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스크루볼 코미디'는 현대 로맨틱 코미디의 모든 요소들을 미리 짚어 선포해준 '바이블'격 영화들이었음이 분명한데, 이번에는 이 '스크루볼 코미디'의 역사와 그 성격에 대해서 알아보고, 이런 성향이 현대 영화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기로 하겠다.
스크루볼 코미디란 무엇인가?
'스크루볼'이라는 단어는 본래 야구에서 강속구 투수가 고의적으로 던지는 느릿한 공, 즉 '예측불허'의 피칭을 뜻한다. 이처럼 '스크루볼 코미디'도 그 전개나 대화의 틀이 정형성에서 크게 벗어나 있는 형태인데, 굳이 그 형성 형식을 말하자면 이전까지 존재하던 고정적인 로맨틱 코미디 영화 공식에 당시 유행하던 찰리 채플린-버스터-키튼-해롤드 로이드-막스 브라더스 류의 '슬랩스틱' 코미디적 성향을 결합시킨 형태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스크루볼 코미디는 항상 연인들 사이의 날카롭고 재치있는 대사들을 들려주다가도 갑자기 등장인물들이 엎어지고, 자빠지고, 말도 안 되는 '바보 행각'을 벌이기도 하는 것.
스크루볼 코미디가 '탄생'한 것으로 여겨지는 1934년은 프랭크 카프라의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하워드 혹스의 "20세기", 우디 반 다이크의 "씬 맨", 마크 샌드리치의 "즐거운 이혼녀" 등의 스크루볼 코미디 원조격 영화들 4편이 동시에 쏟아져 나온 해이며, 특히 카프라의 <어느 날 밤에 생긴 일>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장르의 상업적 가능성과 그 발전 방향이 명확히 제시된 해이기도 했다. 그 탄생 배경으로는 대공황 시기에 경제/사회적으로 완전히 그로기 상태에 놓인 미국 국민들의 정서를 달래주기 위해 웃음과 여유를 주는 희망적인 장르가 필요했다는 사회적 입장과, '영화의 퇴폐화'에 반대하는 교회단체의 압력에 의해 '프로덕션 코드'가 발동, 격렬한 욕정의 묘사나 어둡고 폭력적인 묘사가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나름의 자구책을 찾아 영화계 내부적으로 탄생시킨 장르라는 '업계내부의 사정'이 결합된 케이스로 분석된다.
한편, 스크루볼 코미디를 규정짓는 몇 가지 '공식'들이 주목할 만한데, 바로 현대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모두 녹아들어 있는 형태가 초기적으로 시도된 것으로서, 1) 서로를 혐오하고 증오하는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게 된다 2) 여성인권 향상에 의해 '고전적 남성상'과 '신여성'이 '성(性)'의 전쟁을 벌인다 3) 빈부, 사회계급의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의 갈등상황이 묘사된다 4) 대부분 현대화된 대도시의 세련된 전문직 남녀가 주인공이다 5) 신분위장, 혹은 신분오해의 테마가 섞여있다 6) 기존 시스템에 반항하는 인물이 결국 보수안정적 위치로 돌아온다 등의 여섯가지 기본공식 외에도, 애완동물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든지, 남성이 여성의 옷을 입는다든지 하는 부수적인 요소들도 간간히 삽입되곤 한다.
이처럼 시도했던 여러 가지 요소들이 이후 영화사 중에 완벽히 수용되어 용해된 관계로, 현재에는 특별히 스크루볼 코미디라 구분지을 만한 명확한 장르 형식을 찾아보기 힘들다. 간혹 코엔 형제 ("참을 수 없는 사랑")와 같이 고의적으로 스크루볼 코미디의 구닥다리 공식까지 차용하여 오마쥬를 감행하는 작가들이 있긴 하지만, 현재에는 원형 그대로를 보존한 스크루볼 코미디 장르는 사멸되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스크루볼 코미디의 영향
스크루볼 코미디가 탄생한 것은 1930년대 초반. 앨런 크로스랜드 감독의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싱어"가 등장한 것이 1927년이었으니, 그야말로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묘사되었던 '유성영화 초기'의 어지러운 시대에 탄생한 장르에 속한다. 몸짓과 촬영, 편집 등, 지극히 '영화적인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 끊임없이 고안되던 1920년대에 비해 1930년대는 바로 이 새로 나온 기술인 '유성'을 사용하여 관객들을 끌어모으려는 시도가 주를 이루었는데, "유성 영화가 10년 만 늦게 등장했어도 영화 장르는 큰 미학적 진보를 거뒀을 것"이라는 알프레드 히치코크의 말처럼, 1930년대의 영화는 영화적 기술보다 연극적 형식에 더 치중할 수 밖에 없었으며, 이런 '대사 플레이'의 극단으로서 등장한 것이 바로 스크루볼 코미디였다. 스크루볼 코미디의 대사는 지금 보아도 여전히 '번개같은 스피드'를 자랑하며, 남녀가 서로 치고 받는 위트 넘치는 대사들은 과연 엔터테인먼트의 방향을 '행동' 중심에서 '대사' 중심으로 옮겨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스크루볼 코미디는 영화 나름의 개별적 미학성을 진보시키는 데에는 '악영향'을 끼치고, 전반적으로 영화의 대사를 연극의 대사보다 몇 배나 빠른 스피드로 올려놓았으며, 크고 분명하게 말하며 발성을 중요시하던 배우들의 대사 패턴을 빠르게 뱉어내고 중얼거리며 리듬감을 살리는 방향으로 이동시켰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또한, 비쥬얼 테크닉도 일정부분 '정체' 현상을 일으켜, 복합적인 편집구조 - 에이젠스타인이 제창한 '변증법적 몽타쥬'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시기였다 - 가 사라지고 대단히 간략화된 수준의 동작편집과 구성편집 테크닉만이 '더 깔끔한' 방향으로 진행되었고, 미쟝센도 독일 표현주의 영화들이 선보인 기학학적 앵글과 심도조정, 조명설정 등의 복잡다단한 테크닉을 져버리고 오직 인물의 생김새와 배치구도만을 명백히 설정시키는 샷들과 알기 쉬운 동선이 주로 이용되고 연구되었다.
이같은 '악영향' 외에도 어느 정도 '호영향'이 없었다고는 볼 수 없는데, 먼저 남녀 간의 매치 플레이가 주제인 관계로 여성 캐릭터가 이전에 비해 훨씬 다면화된 양상을 살펴볼 수 있고, 여성인권 향상 붐에 발맞춘 페미니즘적 캐릭터들이 아마도 '세계 최초'로 선보여진 것 역시 스크루볼 코미디였을 것이다. 이후 유럽에서 등장한 여러 여성감독들이 자신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당당한 여성상'의 모델을 언급할 때 스크루볼 코미디의 단골 주역인 캐서린 햅번의 예를 든 것으로도 확실히 '현대적 여성상'의 구축 면에서 스크루볼 코미디가 그 '바탕'을 마련했음이 입증되고 있다.
분명한 '호영향'이라 볼 수는 없지만, "뜨거운 것이 좋아"를 필두로 한 '복장위장'-'성(性)위장' 테마를 지닌 영화들이 훗날 퀴어 시네마를 열어젖히는 데 여러 상징적 모티브를 제공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될 지점일 것이다.
한국영화에 드러난 스크루볼 코미디의 흔적
한국에서의 스크루볼 코미디의 영향은 다소 추적하기가 까다롭다. 굳이 거슬러 올라가자면 1950년대에 유행하던 가족 코미디류에서 옅은 '흔적'을 찾아낼 수 있고, 몇몇 스크루볼적 요소 - '신분위장'과 '슬랩스틱'의 차용, 성(性)역할에 대한 문제 등 - 가 어느 정도 모여있다 생각되는 첫 케이스로는 심우섭 감독-구봉서 콤비의 "남자식모"(1968)를 꼽아야 할 것이다. 당시로선 '대히트'에 속하는 '10만 관객 동원'에 성공한 탓에, 심우섭-구봉서 콤비는 비슷한 패턴을 지닌 "남자미용사", "남자와 기생" 등을 1970년까지 이어가며 꾸준한 인기도를 누렸는데, 일반적으로 '여성'이 갖는 직업을 남자가 맡게 되면서 벌어지는 여러 슬랩스틱적 상황을 담아낸 이들 "남자..." 시리즈는 스크루볼 코미디의 비교적 후기적 경향인 '젠더-크라이시스'의 요소를 정확히 꿰뚫고 있지만, 정작 스크루볼 코미디의 '중심'이라 볼 수 있는 '스피디하고 위트 넘치는 대사의 향연'이 결여되어 있어 '한국형 스크루볼 코미디'의 '아버지'격 영화가 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볼 수 있다. 이는 스크루볼 코미디의 '사상적 배경'인 '여성인권의 확립'과 '남성과 대등한 입장에서의 여성' 테마가 존재할 수조차 없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 탓도 있을 듯하며, 이런 까닭에 본격적으로 스크루볼 코미디의 사상적 배경과 여러 다층적 양상을 모두 안은 '제대로 된' 첫 케이스는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등장하게 되었다.
김의석 감독의 1992년작 "결혼 이야기"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당시 한국 영화로서는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라디오 방송국 PD인 남자와 TV 성우인 여자와의 뒤죽박죽, 엎치락 뒷치락 신혼담은 단순히 '스크루볼 코미디'의 시작점이라는 점을 넘어서, 본격적인 로맨틱 코미디 장르 자체를 처음 열어젖힌 케이스로 여겨지기에 나름의 영화사적 의미를 확실히 보유하고 있는데, <결혼 이야기>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이명세 감독의 "나의 사랑, 나의 신부", 강우석 감독의 "미스터 맘마"의 히트로 인해, 로맨틱 코미디 장르는 일약 '신세대 한국 영화'의 대표적 히트 장르로 부각되었고, 이들 중 상당수가 스크루볼 코미디로 분류될 수 있는 요소들을 담게 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미국적 성향의 전면적 수용'은 몇몇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전문직 중심의 상류계급 남녀가 펼치는 개인주의적/냉소적 사랑 이야기는 '서민 문화', '가족 문화' 중심의 한국 풍토에 대치된다는 판단 하에, 최근 들어서는 백수("위대한 유산")들 간의 스크루볼적 상황이라거나 '한국적 가족관계'가 남녀 사이의 걸림돌로 자리잡는 상황("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등, 여러모로 기본 전제를 변형시킨 '한국형 스크루볼 코미디'가 자기 방향성을 명확히 잡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문원 기자 fletc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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