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을 기준하여 평가한다면 중진 그룹 없이 상위와 하위 그룹으로만 분류되는 차기 대권 주자들. 하위 그룹 주자들을 중심으로는 정계개편과 연대 가능성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지만, 상위 그룹 주자들은 대체적으로 독자적 행보를 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대권 상위 그룹들의 모습은 어떻게 해서든 전세 역전을 시키고자하는 하위 그룹 주자들과 달리 지금까지 지지율만으로도 대권에서 충분한 승산을 가지고 있다는 그들만의 자신감 표현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상위 그룹에서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권 빅3로 알려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 고건 전 총리 간의 지지율을 분석해보면 모두가 20%를 넘어서며 근사치의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역시 단 1%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서로를 견제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어떻게 보면 이들이 하위 그룹보다 더욱 치열한 생존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을 가능하게 한다.
역대 정권만 보더라도 그렇다. 대권에 유력하지만, 누구라도 혼자의 힘으로는 정권을 창출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연대를 이루기도 하고 또, 배신도 했던 것이다.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만큼 정권 창출의 어려움과 정치권의 생리를 단적으로 알 수 있게 해 주는 좋은 역사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현재 대권 빅3만 보더라도 그렇다. 그들이 개별적으로는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다하지만, 그 지지율의 차이가 매우 근소한 이유로 대선에서의 승리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결국, 이들 또한 역대 정권들과 마찬가지로 연대를 통한 정권 창출을 염두에 두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정치권에는 다양한 연대 시나리오가 등장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정권창출에 가장 근접해 있는 잠룡들을 바탕으로 형성된 시나리오는 현실로 실현될 가능성까지 엿보이고 있어 더욱 흥미를 끌고 있다.
◆ 공공의 적으로 두터워진 연대론
대통합을 통해 전국정당을 실현해야만 차기 정권을 창출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정치권이 당면한 현실이다. 그렇기에 결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한나라당 또한 호남에 대해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현재로써는 호남권 출신의 대권 주자가 부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러브콜은 대체로 영남권 주자가 호남에 대해 일방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대변해주는 하나의 시나리오는 바로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연대론이다.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물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만한 정치권의 대형 이슈가 될 것으로 보여 그 실현 가능성 여부에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또, 둘의 연대는 상징적으로 민주화세력과 산업화세력의 연대로 볼 수도 있기에 국가의 양극화 현상을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도 예상된다. 더욱이 고질적으로 문제가 되어온 영남과 호남의 화해라는 데 있어서는 더 없이 큰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이 손을 잡는다면 ‘Win-Win’구도가 형성될 수도 있다. 따라서 둘 사이에 다리만 놓인다면 연대에 대해 서로 거절할 이유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DJ의 경우 남북과 동서를 화합으로 이끄는 민족지도자로서의 평생 과업을 달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박 전 대표의 경우에도 호남을 끌어안아 대권에 확실한 보증수표를 얻게 되기에 ‘Win-Win’구도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시나리오가 현실에서 실현 가능하다면 그 파장은 실로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공공의 적으로 여겨지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고립은 이 둘의 연대로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또,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둘의 연대를 촉진하는 윤활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가설을 제시하며, 조심스럽게 연대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른바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대통합인 셈이다. 정치권의 판도가 모두 바뀌기를 바라는 입장에서는 이 같은 시나리오가 이뤄지기를 바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대연정을 위한 차선책
현재까지 박근혜 전 대표와 가장 치열한 대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인물은 같은 당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근소한 차이로 박 전 대표에 비해서는 낮은 지지율을 얻고 있지만, 그 역시 대권 유력 후보임은 분명하다. 우선 이 전 시장이 대권 경쟁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박 전 대표라는 거대한 산을 먼저 넘어야만 하는 과제가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표의 지지도가 하락할 기미를 보이지 않음에 따라 이 전 시장이 한나라당 대권 경선 전에 탈당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 전 시장이 탈당하게 될 경우 ‘대권까지의 러닝메이트가 될 인물은 누구일까?’ 하는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정치권에서 떠돌고 있는 이야기다.
그 중, 친노 세력의 인물과 이 전 시장 간의 연대 시나리오가 특히 관심을 끌고 있다. 비록 아직까지는 시나리오일 뿐인 이야기이기에 그 무게가 크게 실리지는 않고 있지만, 이 역시 현실로 실현이 가능하다면 차기 대권에서 또 하나의 핵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비교적 정치인들 중 이념적 폭이 넓은 이 전 시장의 경우 친노 세력과 손을 잡는다 하더라도 큰 부담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의 경우에도 박 전 대표에게 거절당한 대연정 제의를 이 전 시장을 통해 실현하게 된다는 측면에서 박 전 대표와 연정을 한 것에 버금가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또, 지난해 이 전 시장이 이룩한 최대 업적인 청계천 복원 사업에도 노 대통령이 적극 지원했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둘의 관계가 결코 불편할 것 없는 사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노 대통령과 이 전 시장이 국책 사업에 대한 인식의 코드가 유사한 면이 없지 않다는 뜻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후계자와 이 전 시장 간의 연대는 참여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사업들을 승계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될 공산이 크다.
그러나 문제는 노 대통령 측에서 이러한 연대 제의를 한다하더라도 이 전 시장이 받아들일지에 대해서는 미지수라는 것이다. 연일 지지율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여권과 이 전 시장이 손을 잡았을 때, 오히려 지지율 동반 하락을 초래하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마지막까지 어떤 변수가 어떻게 작용할지 알 수 없기에 그 연대 논의의 가능성은 꺼지지 않고 정치권의 화두가 되고 있다.
◆ 대권 포기했나?
가장 예측할 수 없는 대권 주자는 바로 고건 전 총리이다. 현 상황으로는 고 전 총리가 대권에 나서는 것조차도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다. 신중하다 못해 결단력의 부재로 비쳐지는 그의 행보 때문이다. 고 전 총리의 정치적 안테나가 넓은 점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고 전 총리는 그러한 긍정적 요인을 오히려 부정적 요인으로 만들고 있는 모습이다. 모든 정치세력과 연대가 가능하다는 그의 중도 성향 때문이다. 이미 정치권에서는 그를 두고 ‘밥상론’이 나올 만큼 인식이 나빠져 있는 상태이다.
같이 농사를 지어 밥상을 차려야 함이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고 전 총리는 밥상이 차려진 후 와서 밥만 먹겠다는 의중이 아니냐는 지적이 바로 ‘밥상론’의 핵심이다. 이미 고 전 총리와 연대론이 한 차례 불거졌던 세력들은 모두 이 같은 ‘밥상론’에 동조하고 있는 분위기다. 그렇기에 현재 고 전 총리는 누구와도 연대가 가능하지만, 반대로 누구와도 연대를 할 수 없는 입장이기도 하다.
열린 안테나를 통해 모든 세력을 아우르고자하는 욕심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헤쳐모여식의 형태로 자신을 향해 정치권이 변화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 감을 딸 생각은 안 하고,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니 떨어지는 감을 먹더라도 썩은 감밖에 먹지 못할 입장이다. 이미 질 좋은 감들은 땀 흘린 자들이 모두 따 가버렸으니 말이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고 전 총리의 지지율은 현저히 하락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방선거를 전후한 당시 대권 빅3 중에서도 최고의 지지율을 얻고 있던 것을 생각한다면, 그의 더딘 행보는 결코 대선에 나서려는 입장에서 득이 될 수 없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고 전 총리와 연대를 하고자 하는 세력들도 차츰 부정적인 견해를 펴기도 한다. 특히, 그동안 고 전 총리의 영입을 위해 힘을 쏟던 민주당의 경우 “온다면 말리지 않겠지만, 색깔은 분명히 하고 와야 한다”며 “오더라도 경선에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끊임없는 러브콜에도 무심한 태도를 보여 온 고 전 총리에 대해 미련을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열린우리당 또한 마찬가지이다. 지방선거 이전 연대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는 듯 했으나, 이 역시 고 전 총리가 지방선거에서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자 더 이상 영입을 위해 힘을 쏟지는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고 전 총리가 혼자서 모든 것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이 같은 행보를 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으나, 현재 상황대로라면 대선에는 나서보지도 못하고 2인자의 인생으로 굳혀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 누구를 위한 연대인가?
이밖에도 대권 주자들 간의 연대 시나리오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바탕으로 정치권에서 떠돌고 있다. 앞서 거론한 빅3 이외에도 여야의 잠재 주자들을 바탕으로 한 시나리오도 존재하고 있으며, 각 당내 후보 단일화를 통한 대통합적 시나리오도 존재한다. 숱한 시나리오들이 무성한 정치권의 현실이지만, 이러한 시나리오들을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이유가 있다.
바로, 민주화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역대 모든 정권들이 깜짝 놀랄 만한 연대를 통해 창출되었기 때문이다. YS가 정권을 창출할 당시 3당 통합이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것은 물론, DJ는 백제권을 아우르는 DJP연합을 통해 정권을 창출할 수가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마찬가지이다. 누가 당시 정몽준 후보와 연대를 통해 세를 넓힐 것이라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겠는가. 2007년 대선을 향한 열띤 연대 논의들. 국민과 나라를 위한 열띤 논의로 전환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