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가 5000억원대 크게 밑돌아…탈출 ‘쓰나미’ 오나

8일 요스 라우어리어 알리안츠생명 한국법인 대표는 임직원들에게 “언론을 통해 알려진 매각가가 시장 예상치에 못 미친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라우어리어 대표는 “헐값 매각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번 계약이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최상의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알리안츠생명이 최근 중국 안방보험에 불과 35억원 가량에 매각됐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인 것에 대한 메시지로 읽힌다. 당초 사측이 원하던 매각가는 6000억원 수준이었고 인수 예상가는 5000억원 수준이었다. 안방보험과 협상이 개시된 후에도 인수가가 최소 2000억원 가량은 될 것으로 전망됐던 것을 감안하면 충격적인 결과다.
알리안츠생명은 솔빈세II 규제의 적용과 고금리 보험상품 등 때문에 추가 부담이 만만치 않아 하루라도 빨리 회사를 정리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읽히고 있다. 하지만 알리안츠생명의 과감한 결단이 비슷한 처지에 놓인 외국계 보험사들의 탈출 러시를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1조 쏟아붓고도 황급한 퇴장 왜?
특히 독일의 알리안츠그룹이 그간 알리안츠생명에 쏟아부은 금액이 1조원을 훌쩍 넘는다는 점은 이번 헐값 매각 논란의 주요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알리안츠생명의 출범은 지난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 알리안츠그룹은 당시 국내 생보업계 4위이던 제일생명을 4000억원대에 인수하고 알리안츠생명 한국법인을 설립했다. 현재까지 증자 등을 포함해 투자한 금액은 1조3000억원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배당으로 회수한 금액이 1500억원에 불과하는 등 회수 자금은 투자금 대비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막대한 투자금에도 불구하고 알리안츠그룹이 알리안츠생명을 헐값에 넘기고 철수하는 까닭은 앞으로 소요될 추가 부담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알리안츠생명의 적자 규모는 2012년 200억원, 2013년 513억원, 지난해 874억원 등 해마다 불어나고 있다. 2014년 64억원의 순이익을 제외하면 최근 수 년간 대부분 적자를 냈다.
적자 규모가 불어나고 있는 것은 전신인 제일생명 당시 대거 팔았던 연 6~8%대의 고금리 확정형 장기 상품이 주 원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기록적인 저금리가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고금리 상품의 이자를 지급하기가 벅차다는 얘기다.
실제 알리안츠생명의 현재 운용수익률은 저금리 기조 속에서 4%대에 머물고 있다. 2%p 이상의 역마진이 계속해서 나고 있는 셈이다. 이명재 알리안츠생명 한국법인 대표는 전날 “국내 시장의 저금리 추세로 추가적으로 부담해야 할 금액이 1조원을 훨씬 넘게 됐다”면서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했다.

여기에 유럽이 올해부터 적용하는 솔벤시II 규제가 결정타로 작용했다. 유럽은 올해부터 보험부채의 시가평가를 골자로 하는 새 자본규제제도 ‘솔벤시II’를 적용한다. 특히 새 감독체계 아래서는 한국법인의 재무현황이 독일 본사의 연결재무제표에 함께 반영된다.
솔벤시II에 따르면 알리안츠그룹은 미래의 예상 손실을 현재 자산가치에 미리 포함해 지급 준비금을 쌓아야 한다. 따라서 손실이 커지고 있는 알리안츠생명을 자회사로 유지하기 위해 수 천억원에서 많게는 1조원대의 증자 부담이 발생한다는 얘기다. 이에 저금리 추세로 인한 매 분기의 적자가 본사에 부담이 되고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될 것으로 판단돼 아예 본사에서 회사의 빠른 정리를 주문했다는 설명이다.
본사 측이 빠른 매각을 원했다는 점은 입찰 후보들의 제안 현황에서도 엿보인다. 이번에 불과 35억원으로 알리안츠생명을 낙찰받은 중국 안방보험은 인수가격으로 원래 1000억원도 되지 않는 금액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IBK투자증권의 PEF가 2500억원 이상, 중국계 사모펀드 JD캐피탈이 2000억원 가량을 제시한 것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는 수준이다.
하지만 알리안츠생명은 각 후보들의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과감하게 가장 낮은 금액을 제안한 중국 안방보험으로의 매각을 결정했다. 더욱이 안방보험은 지난해 동양생명을 인수해 금융위원회의 대주주 적격 심사를 통과한 바 있어 절차 마무리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국내 보험업계도 덜덜…“남의 일 아니다”
하지만 어찌됐든 보험업계 11위권의 자산 규모를 자랑하는 알리안츠생명이 사실상 거래 비용 정도만 받고 황급히 철수했다는 사실은 보험업계에 만만치 않은 충격을 안기고 있다.
이에 비슷한 처지에 놓인 외국계 보험사들도 비슷한 행보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현재 매물로 나온 보험사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이 같은 우려는 더욱 힘을 얻고 있다.
현재 시장에 매물로 나온 외국계 생보사들은 ING생명과 PCA생명이 있다. ING생명 한국법인은 지난 2013년 MBK파트너스가 1조8400억원에 인수했고 매각제한시점인 2년을 넘어 재매각 절차를 밟을 것이 유력하다. 총자산 규모는 알리안츠생명의 2배에 가까운 30조원 가량이다.
PCA생명은 지난해 21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지만 역시 저금리 기조의 장기화로 인해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영국 본사에서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장은 아니지만 국내 생보사들에게도 이번 알리안츠생명의 황급한 철수는 경종을 울리고 있다. 오는 2020년 솔벤시II 규제처럼 시가평가를 반영한 새 회계기준 IFRS4 2단계가 적용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소위 IFRS4로 불리는 국제회계기준의 2단계 규제는 43개 국제회계 기준서 중 보험계약에 적용되는 기준이다. 4년 뒤 국내 보험사들도 알리안츠생명처럼 미래의 예상 손실을 현재 자산가치에 미리 포함해 지급준비금을 쌓아야 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과거에 알리안츠생명처럼 확정형 고금리 장기상품을 많이 판매한 생보사는 충격이 더욱 클 것으로 전망된다. 자본금이 부족하거나 추가로 확충하지 못하는 경우 자본잠식에 빠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결국 국내 보험사들도 이 같은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수 년 뒤부터 헐값에 팔려나가는 경우가 속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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