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지방행정론에서 가장 대표적인 주민 참여 수단으로 꼽히는 제도들을 보면 주민소환제도, 주민투표, 주민참여예산제, 주민감사청구 등이 있다. 주민참여예산제를 제외하면 일정 수 이상의 주민들의 뜻을 모아 지자체장을 소환하거나 특정 사안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방식으로 돼 있다. 물론 주민투표 가능 여부가 지자체장의 재량에 따라 결정되는 등 아직 주민들의 의사 표현에 제한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종종 뉴스를 통해 각 제도들이 활용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기란 어렵지 않다. 최근에도 경상남도 홍준표 도지사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가 임박한 상황이다.
헌데 다른 제도들이 비교적 개념과 요건이 명확한 것에 비해 유독 주민참여예산제는 일반 주민들에게 잘 와닿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명칭을 보면 주민들이 예산 편성에 참여한다는 얘기 같은데 아무래도 돈이 걸려 있다 보니 과연 감히(?) 민초에 불과한 주민이 지자체의 예산 편성에 개입해 이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사용하게 할 수 있는 것인지 덜컥 겁부터 난다. 행여 편성에 참여하더라도 잘못될 경우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도 걱정부터 앞선다. 일반 주민들이 과연 이 제도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제대로 활용되고 있는 제도인지 왜 이렇게 잘 모를까.
이는 지자체가 지니는 권위의 원천 중 하나인 예산 편성권을 침해받지 않기 위해 주민참여예산제도의 활성화에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각 지자체들에 주민참여예산제도가 도입된 지 상당 시일이 흘렀지만 일선 지자체들은 홍보에도 별 관심이 없고 긍정적인 반응도 보이지 않기 일쑤다. 사실 주민들도 생업에 치여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 같은 지적은 제도 시행 전에도 논의된 바 있지만 여전히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주민참여예산제도는 지난 2005년 참여정부 시절 지방재정법 전면 개정으로 그 근거가 마련됐다. 주민들이 자신들이 낸 세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 있도록 하고 편성 과정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지방 예산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인다는 취지에서다. 이는 재정 민주주의 실현이자 주민자치 이념을 구현토록 하는 제도적 장치에 대한 법적인 근거가 마련됐다는 의의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는 주민참여예산제도 조례를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2011년 지방재정법이 개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하지만 운영은 여전히 미흡한 부분이 많다. 대부분 주요 사업에 대한 공청회 및 간담회와 인터넷 설문조사, 주민들의 의견수렴 등 형식적인 부분이 대다수다. 주민들이 원하는 사안에 대해 요청을 받고 이를 바탕으로 예산을 편성하는 원칙이 지켜지는 일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일단 지자체는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려는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는다. 윗선의 고까운 시선은 물론이고 일선 담당 공무원들도 업무가 늘어난다는 생각에 그다지 적극적인 태도를 갖지 않게 된다. 이러다보니 형식적이고 조사가 진행되고 일방적으로 예산이 배정되기 일쑤다. 더욱이 이렇게 진행됐다는 사실조차 주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다. 대다수 지자체에서는 주민참여예산 신청 자체가 거의 없고 공고조차 없는 곳도 있다.
이처럼 현재의 주민예산참여제도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제도나 다름 없다. 주민참여예산제도는 잘만 운영되면 지자체 예산 편성의 투명성은 물론 명확한 수요 반영을 통한 낭비 요인 제거, 직접민주주의 실현 등 장점이 많은 제도다. 또한 주민과의 소통은 곧 신뢰를 불러 오고 사회적 신뢰는 그 자체가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는 효율적인 수단이 된다. 하지만 지자체가 운영 의지가 없는데 주민들이 관심을 보일 리가 있을까. 지자체가 단기적인 목표에 집착해 큰 것을 잃기 전에 한 발짝 먼저 주민들에게 다가와야 할 것이다. 먼저 내어줘야 더 큰 것을 취할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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