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대표직 ‘합의추대론’ 놓고 친노와 신경전

우선 김종인 대표는 이번에 총선 승리라는 결과가 나온 만큼 차기 당 대표직에 대해서도 추대를 받고자 하는 속내를 내비치고 있는데, 총선 공천 과정에서 표적이 된 친노 인사를 중심으로 ‘반김 기류’가 형성되고 있는데다 차기 당 대표에 나서고자 하는 후보들이 경선을 치르자는 쪽으로 기울고 있어 뜻대로 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가운데 정청래, 이해찬 등 총선 컷오프 인사들까지 김 대표에 날을 세우면서 앞으로 당내 입지를 마련하는 데 있어서도 상당한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당내 최대계파이자 가장 강력한 문재인 전 대표 측이 김 대표를 영입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제2의 비례대표 파동과 같은 결과가 초래될 여지도 없지 않다.
이를 암시하듯 김 대표는 20일 국회에서 열린 당선인대회에서 “만에 하나라도 우리 더민주가 종전과 같은 모습을 또 보인다면 유권자들이 굉장히 냉혹하게 돌아설 수 있다”고 경고성 발언을 내놨는데, 총선 승리에도 불구하고 현재 당 대표로부터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은 분열 양상이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는 걸 반증하고 있어 향후 대표직에 대해선 경선을 치르기로 굳어지며 김 대표가 밀려나게 될 경우 비례대표 파동 못지않은 상당한 파장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김종인 합의추대’ 놓고 계파 갈등 재점화
총선 승리를 바탕으로 당내 일각에서 김 대표 합의추대론이 불거짐에 따라 이에 반발하는 친노 세력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박영선, 김부겸 등 당권을 노릴 만한 일부 야권 중진들도 추대보다는 경선에 무게를 두고 있어 차기 당 대표직이 당 내홍을 일으킬 새로운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비례대표 파동 당시 김 대표와 친노 측이 충돌하자 결국 문 전 대표가 김 대표를 직접 찾아와 중재에 나섰듯 이번 사태 역시 문 전 대표가 초기에 나서 정리하지 않고 방조할 경우 아무리 총선이 끝났더라도 대선가도에 분명한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김 대표 역시 총선 승리 직후인 지난 14일 총선 결과와 관련, “집권여당의 경제 정책에 대해 유권자들이 심판을 했다”며 자신의 경제심판론을 승리 요인으로 부각시킨 반면 호남 참패에 대해선 “문재인 전 대표가 호남에 두 차례 방문한 게 유권자의 돌아선 마음을 돌이킬 정도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 같다”고 문 전 대표의 책임으로 돌려 양측이 서로 필요에 따라 이용하려고만 할 뿐 실상 소원하다는 인상을 지우지 못했다.
또 여론조사상 문 전 대표가 1위를 달리고 있는 차기 야권 대권주자와 관련해서도 총선 하루 뒤인 14일 김 대표는 “어떤 분이 최적임자가 될지 모르겠다”며 오히려 “총선 과정 속에서 새로운 대선후보가 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총선 후에도 둘 사이의 관계가 틀어져 있음을 증명했다.
이에 따라 차기 대권을 목표로 하는 문 전 대표는 자신이 영입해왔음에도 자신의 대권 자리를 인정치 않는 모습을 간간히 내비치는 김 대표를 위해 ‘반김(反김종인)’ 성향의 친노측 목소리를 무시하면서까지 그의 당권 도전을 지원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문 전 대표를 대권후보에서 배제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은 이날 김 대표가 자신의 당권 도전 의사와 관련해선 “처음에 당 대표로 왔을 때 더민주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정상적인 당을 만들기 위해 당의 모든 것을 바꾸겠다는 약속을 국민에게 드렸다”며 “앞으로 수권정당이 되도록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분명히 드러내 더욱 대조적이었다.
◆ ‘공천 탈락’ 친노의 복수?…정청래 등 포문 열어

이런 가운데 ‘당권 추대론’까지 불거지자 친노 강경파 측은 김 대표를 맹렬히 비난하고 나섰는데, 그 중에서도 거침없는 막말로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정치권 전면에까지 나섰지만 결국 자신에게도 부메랑으로 돌아와 ‘공천 탈락’이란 결과를 받았던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선봉에 나서서 연일 독설을 쏟아냈다.
사실상 이번 총선에서 호남 참패에도 불구하고 제1당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더민주의 승리로 선거를 마무리 지었음에도 정 의원은 일각에서 당 대표직에 김 대표를 합의 추대할 가능성을 내비치자마자 ‘셀프대표’, ‘사심 공천 5인방’ 등 갖은 표현을 동원해 김 대표를 맹렬히 공격했다.
정 의원은 지난 17일 자신의 트위터에 “새누리당의 패배는 국민이 시킨 것이지 당 지도부가 잘해서가 아니다”라며 “총선 결과를 아전인수로 해석하고 셀프 수상의 월계관을 쓰려는 자들은 자중 자애하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총선 승리에 대한 김 대표의 기여도를 인정치 않는 것은 물론 “사심 없는 시스템 공천을 하고 비례공천 파동 없이 문재인 호남방문을 훼방 놓지 않았다면 더민주가 과반의석을 확보했을 것”이라고 문 전 대표를 자극해 소원한 문 전 대표와 김 대표의 사이를 한층 더 뒤흔들었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당 지도부는 대선 지지율 1위 문재인마저 공동선대위원장에서 컷오프하고 무엇을 꿈꿨을까”라며 “사심 공천 전횡을 휘두른 5인방을 조만간 공개하겠다”고 한층 압박을 가했다.
하루 뒤인 18일 정 의원은 김 대표가 합의추대 수락 가능성을 열어둔 데 대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셀프공천에 이어 셀프대표는 처음 들어보는 북한식 용어”라며 “합의추대? 그건 100% 불가능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포문을 연 지 3일째인 19일에도 정 의원은 C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김 대표를 겨냥해 “당 대표를 할 의향이 있으면 정정당당하게 경선에 응하라”며 “셀프추대는 북한노동당 전당대회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보다 못한 일부 친노 인사까지 나서서 정 의원을 만류했는데, 문 전 대표의 최측근인 최재상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총선은 이겼다. 이겼으면 김, 문 대표님 수고하셨다면 된다. 왜 진 것처럼 따지나”라고 일침을 가했고, 박범계 의원 역시 트위터에 “(김종인) 합의 추대 여부는 당선자 총회에서 결정했으면 좋겠다”면서도 “정청래 의원 주장은 이해하지만 표현이 거칠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김 대표는 오는 5월 말 19대 국회가 끝나는 대로 이제 곧 의원직도 잃게 될 정 의원에게 굳이 맞대응했다가 괜한 당 내홍만 불거질 것을 우려했는지 일단 무시로 일관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당권에 관심을 갖고 있는 김 대표 입장에선 ‘컷오프 불만’을 명분삼아 비판을 이어가는 정 의원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 총선 전 공천 과정에서 ‘친노 물갈이’란 명목으로 김 대표에 의해 컷오프된 인사들 중 친노 좌장 이해찬 의원의 경우 낙천에 불복하고 무소속 출마까지 감행했는데도 김 대표가 이 의원의 지역구에 더민주 후보를 끝까지 내보내자 둘은 더 마주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한 대립관계를 이루게 됐다.
이 때문에 이 의원이 앞서 예고한 대로 복당하게 될 경우 당권을 노리는 김 대표를 저지하기 위해 대표직을 놓고 일전을 벌일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김 대표를 겨냥한 정 의원의 계속된 막말 공세가 이 의원과 같은 당내외 ‘반김(反金)세력’을 하나로 모아 불만을 폭발시키는 방아쇠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또 김 대표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박영선 의원을 비롯해 김 대표가 대권주자로 거명했던 비노 김부겸 의원조차 당내 경선을 치르지 않고 합의추대로 당 대표를 뽑는 것에는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는데, 이번에 4선에 성공한 박 의원의 경우 심지어 본인이 직접 대표직에 도전할 가능성까지 열어둔 것으로 알려져 합의 추대에 동의할 가능성은 더 희박해졌다.
◆ 힘 얻는 ‘경선 방침’에 다급해진 김종인, ‘文 약속’까지 거론
이런 분위기 속에 합의추대론이 점차 힘을 잃어가자 20일 김 대표는 자신이 비례대표 파동 당시처럼 마치 당 대표직에 ‘노욕’을 부리는 것처럼 비쳐질 것을 경계하면서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문 전 대표가 삼고초려할 때 비례대표 2번으로 모시고 싶다고 했고, 대선까지 당을 이끌어 달라고 했다는데”라는 기자의 질의에 “실제로 나하고 그렇게 얘기했다”고 확인하면서 자신에게 날을 세운 친노를 향해서도 “그 사람들은 자숙하는 게 좋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대표로 오기 전 당이 어려웠던 시기인) 1월 15일 이전으로 돌아간다”고 엄포를 놨다.
김 대표는 같은 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선인 대회에서도 “제가 1월 15일 더민주에 와서 까딱 잘못하면 당이 와해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을 가졌는데 다행이 당원, 의원 여러분들이 협조해줘 빠른 시일 내에 안정을 기하고 선거에 임했고, 그 결과 제1당 자리를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발언하며 자신의 공헌도를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유권자들이 더민주가 이제 새로 태어난 줄 알았는데 과거 습관에 젖어 또 저러는구나 생각하게 될 모습을 절대 보여주지 말라”며 자신에 대해 공격하며 잡음을 일으키는 일부 친노 인사들에 날선 비판을 가했다.
이렇게 전면에 김 대표가 직접 나서서 자신의 공을 선전하는 데에는 당 대표직을 추대가 아닌 경선으로 가게 둘 경우 영입인사 출신으로서 당내 기반이 약한 자신은 낙선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 때문에 현재 서먹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총선 전 문 전 대표가 했던 약속까지 상기시키며 친노 측의 반발을 잠재우고 추대론에 바람을 넣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문 전 대표 역시 친노와 김종인 측 둘 중 하나를 공개적으로 지지할 경우 어떤 식으로든 타격이 불가피해 비례대표 파동 때처럼 극단적으로 가지 않을 경우 그 때와 같은 애매한 포지션을 취함으로써 쟁점 현안으로부터 피해가면서도 자신의 이미지는 훼손되지 않는 방법을 택할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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