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표·원내대표직 놓고 친박계 ‘동상이몽’ 속 대립 양상

내달 3일 있을 차기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계파나 지역을 내세워 난립한 후보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총선 패배 후 침묵을 지켜오던 친박계 중진들까지 이례적으로 적극 개입함에 따라 점점 자중지란 양상을 띠는 모양새다.
친박계 중진들은 총선에 패배한 만큼 이번 원내대표 경선에 친박계 후보들이 출마를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는 반면 원내대표에 오르기 위해 후보 단일화까지 추진한 친박계 후보들은 혼란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비박계는 차기 당권을 노리고 있는 최경환 의원 등 친박계 핵심 인사들이 총선 패배로 친박계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점을 의식해 원내대표직은 비박계에 양보하고 마치 2선 후퇴하는 모습으로 그간 친박계를 향해 제기된 총선 패배 책임론을 무마시킨 뒤 향후 당 대표에 도전하고자 하는 꼼수라 여기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경환 의원의 제지를 받은 친박계 유기준 의원은 끝내 이를 무시하고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아 상황은 계파를 떠나 당권을 놓고 서로 이전투구 하는 양상으로 접어들고 있다.
◆ 유기준, ‘친박 후보 단일화’에 친박계 ‘갑론을박’
새누리당 차기 원내대표에 도전하는 친박계 후보들인 홍문종, 유기준 의원이 27일 유 의원으로 원내대표 후보를 단일화하기로 합의하고, 대신 유 의원은 차기 전당대회에서 당권에 도전하기로 방향을 바꾼 홍 의원을 지원키로 약속했다.
이렇듯 둘 사이에 단일화가 성사되면서 일단 친박계 후보군은 하나로 정리되는가 했는데 하루 뒤인 28일 총선 패배 전까지만 해도 친박계의 차기 당 대표 유력 후보로 꼽혔던 최경환 의원이 갑자기 직접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 상황이 한층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최 의원실은 이날 “최 의원은 총선 민심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차원에서 원내대표 경선에 친박이 나가선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최 의원은 유 의원이 경선에 나서지 못하도록 설득하겠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최 의원 측은 “최 의원은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자성하고 있음에도 마치 최 의원이 유기준-홍문종 단일화에 개입한 것처럼 비춰지고 있는데 대해서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최 의원은 원내대표 경선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고, 다른 친박계 인사들도 개입해선 안 된단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최 의원의 폭탄선언에 대해 유 의원과 단일화하기로 합의했던 홍 의원까지 합의 사실을 번복하며 동조하고 나서자 당사자인 유 의원은 이날 오전 관련 소식을 접하곤 당혹스러워 하는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다만 유 의원은 “내가 (친박) 단일 후보라 말한 적 없다. 친박, 비박 이야기가 나오지 않게 하겠다. 탈계파를 선언할 것”이라며 “지긋지긋한 계파 싸움을 안 하게 하겠다. 이번 원내대표 선거에서 자유롭게 투표해주길 오히려 권한다”고 밝혀 ‘친박’ 꼬리표를 떼고서라도 원내대표에 출마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이날 자신의 의원회관 집무실에서 “저도 (친박) 거기 기대지 않을 것”이라며 “대야 협상이 굉장히 중요한 때라 야당과 국회를 어떻게 협치해서, 의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원내대표로서 적합한 인물이 아닌가”라고 계파에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와중에 또 다른 친박계 다선 의원인 한선교 의원까지 논란에 가세했는데 그는 전날 유기준 의원과 홍문종 의원이 차기 원내대표 출마와 관련, 친박 단일 후보를 이뤘다고 한 데 대해 이날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도대체 무슨 명분으로 친박 단일후보란 말인가”라며 “스스로 친박 후보임을 자처한 두 분이 만나 한 분은 원대, 한 분은 전대 후보로 나눠먹기 합의를 했다고 하니 이 무슨 경을 칠 일인가”라고 두 의원을 맹렬히 질타했다.
이는 총선 패배 뒤 책임론이 제기될까봐 신중히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현재 친박계의 처지에도 불구하고 원내대표에 도전하겠다는 친박계의 두 의원이 오히려 ‘당권 나눠먹기’라는 인상을 풍겨 자칫 친박계 전체가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극도로 날을 세워가며 거리를 둔 것이라 풀이된다.
이에 그치지 않고 한 의원은 이들을 겨냥해 “총선 패배를 남의 집 일처럼 돌려 말하고 쇄신의 적임자로 자신이 원내대표가 돼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며 “원내대표 나간다는 자가, 전당대회 준비한다는 자가 그것도 친박이라고 훈장 달고 다닌 사람들이 총선의 책임을 청와대로 돌린다. 비겁하다”라고 꼬집었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10년 넘게 박근혜를 팔아 호가호위 하던 자들이 이제는 박근혜를 팔아넘겨 한 자리 하려 한다”며 “작금의 새누리당 행태를 보면 다 끝난 듯한 작태를 보여준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 한 의원은 이날 먼저 이들을 비판한 최경환 의원에 대해선 “오늘 이들을 비판한 건 옳은 지적”이라면서도 “하지만 최경환도 그런 말할 자격이 없다. 그냥 가만있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해 이번 논란 자체가 친박계의 내부 분란이 확산되는 걸로 비쳐질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한 의원의 원색적인 비난과 최 의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유 의원은 끝내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기 원내대표직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공식화했는데 “총선을 마치고 장고 끝에 새누리당의 화합과 단결, 국회에서의 협치, 상생의 정치를 위해 원내대표 출마를 결심하게 됐다”고 전했다.
현재까지 친박과 비박 등 거론되는 여러 차기 원내대표 후보들 중 공식적으로 출마 선언한 인물은 거의 없다시피 했던 만큼 이날 박근혜 정부에서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내는 등 친박계로 분류돼 온 유 의원의 원내대표 출마 선언은 친박계에 대한 총선 책임론이 감도는 속에서도 강행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런 부분을 의식한 듯 유 의원은 “이제 계파정치는 더 이상 없다. 당의 화합을 위해선 가장 먼저 계파정치를 청산해야 한다”며 “바로 오늘부터 당장 친박 후보라는 지칭을 하지 말아 달라”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그는 거듭 “이제는 친박, 비박이라는 용어는 완전히 없어져야 하며 고어사전에 등재되어야 한다”며 “계파정치를 청산하고 당 아래 모두 화합할 수 있도록 제가 가장 먼저 낮추고 마음을 열고 우리당원 누구와도 손을 잡고 함께 가겠다”라고 천명했다.
특히 이런 점을 보여주려는 듯 유 의원은 정책위의장 러닝메이트로 3선의 비박계인 이명수(충남 아산) 의원을 꼽았는데, 러닝메이트를 찾기가 쉽지 않아 유력 후보들이 아직도 공식 출마 선언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서도 상당히 빠른 결정을 내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비박계 일각, ‘원내대표 합의추대론’ 제기하기도

여러 잡음 속에서도 우선 친박계에선 유 의원이 출마 선언을 공식화한 반면 비박계에선 현재 나경원 의원을 비롯해 김정훈 정책위의장과 김재경 의원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데, 이들 중 김 의원이 이날 가장 먼저 ‘원내대표 출마’ 신호탄을 올렸다.
김재경 의원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유권자들이 주신 4선이란 영광 말고는 정치적으로 가진 것이 없기에 잃을 것도 없다”며 “역할이 무엇이든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독이 든 잔’을 마시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비박계인 그는 “특정인이나 집단을 고려할 이유가 없기에 나라와 당만 생각하겠다”며 이날 친박계에서 일어난 ‘특정 계파 단일 후보’ 논쟁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무엇보다도 김 의원은 이날 자신의 출마 전제조건을 내세워 주목을 받았는데, 그는 5선 이상 중진들을 향해 “직접 원내대표 역할을 자임하든지, ‘환상의 원대조합’을 만들어 경선 없이 원내대표 선거가 마무리될 수 있도록 적극 나서달라”고 원내대표직에 대한 합의추대론을 꺼내 들었다.
이는 오는 3일 원내대표 경선이 열리기로 예정된 시점에 또 다른 논쟁의 불씨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비박계인 그로선 표 대결 양상으로 치달을 경우 원내 소수인 비박계가 밀릴 가능성도 없지 않은데다 경선이 아닌 합의추대로 비박 후보가 원내대표직에 오를 경우 친박계도 추대에 동의했다는 정당성이 확보돼 당내 결속력을 강화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까지 담은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친박계가 이미 원내대표보단 향후 전대를 통해 결정될 차기 당권을 염두에 두고 최근 친박 핵심 인사들까지 나서서 ‘친박 2선 후퇴론’을 수용한다든지 같은 친박 후보에 원내대표 불출마를 종용하는 행태를 보이는 것이라 해석되고 있는 만큼 곧 결정될 원내대표직에 대해 경선이든 추대든 어떤 방식으로 치러질 지를 놓고선 후보 당사자를 제외하면 계파 충돌 형태로 비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오히려 친박계라던 유 의원이 결국 차기 원내대표로 당선될 경우 원내대표를 비박계에 넘기는 대신 당 대표직을 차지하려던 친박 중진들의 계산은 한층 더 복잡해지게 되는데, 당 대표까지 노릴 경우 총선 책임도 제대로 지지 않았으면서 당 대표와 원내대표 모두 친박계가 장악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게 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총선 패배로 여소야대 구도까지 형성됐음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친박 내에서 차기 당권을 둘러싼 갈등이 노골적으로 표면화되면서 당이 더욱 분열돼 힘을 잃게 되는 건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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