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새누리…계파 갈등 속 비대위-혁신위 무산
혼돈의 새누리…계파 갈등 속 비대위-혁신위 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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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계 대거 불참에 정족수 미달…김용태, 혁신위원장직 사퇴
▲ 새누리당 상임전국위원회가 17일 친박계의 불참 속에 의결 정족수 미달로 당헌개정안을 심의하지 못한 채 무산되면서 혁신위-비대위 모두 사실상 백지화됐다. 시사포커스 / 원명국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전날부터 친박계 초·재선 당선인들의 경고 속에 불안한 조짐을 보이던 새누리당이 17일 전국위원회에서 비대위-혁신위 출범을 앞두고 계파 갈등의 민낯을 다시 내비치며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친박계 의원들이 사실상 전국위원회 참석을 ‘보이콧’하는 실력행사에 들어가면서 비박계 인사들을 포함한 비대위-혁신위를 출범시키려던 정진석 원내대표의 계파 갈등 봉합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 같은 친박계의 날선 대응에 비박계 역시 격분해 혁신위원장에 선임됐던 김용태 의원이 즉각 사퇴 의사를 밝히고 정두언, 홍문표 등 비박계 의원들도 일제히 친박계를 겨냥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앞서 총선 이후 충청권 출신의 범친박계인 정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신임 원내지도부가 출범하며 외견상 잠잠해지는 듯 보였던 계파 갈등이 비대위-혁신위 출범을 두고 이처럼 재발되면서 일각에서 제기됐던 ‘비박계 제4당’ 창당 가능성도 다시금 거론되는 등 상황은 점차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 출범부터 좌초된 비대위…친박 강세 입증
 
당초 새누리당에선 이날 오후 제8차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원회를 연이어 개최해 ‘혁신위원회 독립성 보장을 위한 당헌개정안’을 심의하고, ‘정진석 비대위’와 ‘김용태 혁신위’를 추인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친박계 의원들의 집단 불참으로 상임전국위원회에서 심의할 예정이던 ‘혁신위’ 구성을 위한 당헌 개정안이 총 정원 52명 중 과반에 못 미치는 정족수 미달에 따라 끝내 의결되지 못하면서 혁신위는 첫 발을 내딛기도 전부터 좌초됐다.
 
이렇게 혁신위 출범이 무산되면서 상임전국위에 이어 열릴 예정이던 전국위원회도 함께 열리지 못해 정진석 원내대표를 비대위원장으로 하는 ‘정진석 비대위’ 역시 표결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자동 폐기됐다.
 
정 원내대표는 전날 친박계 초재선 당선인 20명의 기자회견 등을 통해 이 같은 기류를 읽은 듯 전국위가 열리기 전인 이날 낮 여의도 모 한식당에서 원내부대표단과 오찬을 가진 뒤 기자들과 만나 “오늘 (전국위에선) 기존 발표된 비대위원들에 대해서만 추인하는 것”이라며 “일단 운영을 해보고 얼마든지 추가 선임할 수 있다”고 밝혀 친박계를 달래는 모양새를 취했으나 결국 이날 전국위 무산을 통해 친박계가 계파 갈등 재발도 불사할 뜻을 굳힘으로써 정 원내대표의 거취조차 불확실한 상황이다.
 
앞서 정 원내대표가 지난 15일 발표한 7명의 비대위원을 포함한 총 10명의 비대위 명단은 대체로 비박계 일색이란 평가를 받았는데, 같은 날 혁신위원장직엔 비박계 3선인 김용태 의원까지 선임하면서 이에 불만이 극에 달한 박덕흠·김선동 등 친박계 의원들이 16일 정 원내대표를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특히 친박계 의원들은 16일 발표한 집단 성명을 통해서도 김용태, 이혜훈, 김영우 등 비박계 3인방에 대해선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는데, 김용태, 김영우 의원은 지난 20대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공천 학살 속에서 친김무성계로 분류돼 살아남은 비박계 의원들이면서도 총선 참패를 두고 ‘친박 책임론’을 제기해 친박계에겐 눈엣가시로 여겨지고 있고, 이혜훈 의원은 당내 유일하게 살아남은 유승민계 의원으로 일찌감치 친박계와 각을 세운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임 혁신위원장이 된 김용태 의원이 지난 15일 임명되자마자 첫 일성으로 “뼛속까지 새누리당을 완전히 바꿔서 국민의 부름에 응답하겠다”고 천명한 것도 총선 결과를 명분삼아 당내 친박계를 일소하려는 움직임으로 보고 강한 경계심을 가지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친박계 내에선 이미 전국위에서 신임 비대위원과 혁신위원장 추인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우세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원내·외 당협위원장과 시도의원 등 위원 1000여명으로 구성된 전국위조차 실상 친박계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점에 비춰봤을 때 이날 추인 무산은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다만 친박계가 다수임을 앞세워 직접적인 표 대결로 가지 않고 전국위 불참이란 우회적 방식을 택한 데에는, 전국위에서 정면으로 비박계와 격돌할 경우 ‘총선 책임론’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 격분한 ‘비박’, 당선인 총회 개최 요구…친박 일부도 역풍 우려
 
▲ 지난 15일 새누리당 혁신위원장에 임명됐던 비박계 김용태 의원이 17일 전국위 무산에 따라 이틀 만에 혁신위원장직에서 자진 사퇴하며 친박계를 비판하고 나섰다. 시사포커스 / 원명국 기자

한편 이날 친박계의 집단행동에 일격을 당한 비박계 의원들은 즉각 맹비난을 퍼부으면서도 대응책 마련에 부심했다.
 
가장 먼저 격앙된 반응을 내보인 건 혁신위원장에 임명된 지 이틀 만에 희비가 엇갈린 김용태 의원이었는데, 그는 전국위 무산 직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이틀간 우리 새누리당은 국민에게 용서를 구할 마지막 기회를 가졌었다”며 “당원들과 국민들의 마지막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오늘 새누리당에서 정당민주주의는 죽었다. 국민에게 용서를 구할 마지막 기회를 잃었다”고 친박계에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친박계를 겨냥해 “국민에게 무릎을 꿇을지언정 그들에게 무릎을 꿇을 수 없다. 국민과 당원들께 은혜를 갚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겠다”며 “저는 혁신위원장을 (자진)사퇴한다”고 선언했다.
 
같은 비박계인 홍문표 새누리당 사무총장 권한대행 역시 이날 비대위-혁신위 추인을 위한 전국위가 무산된 데 대해 “헌정 초유의 참담한 심정”이라며 “성원이 되지 않아 회의를 이루지 못한 이 참담한 오늘의 현실을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전국위 무산 직후 기자들에게 이번 사태와 관련, “비대위 불신임이라고 볼 수는 없고 복합적 사항들이 있다”면서도 “앞으로 절차를 밟아 다시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다시 추인하는 방법 등) 새로운 방법이 없나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이 뿐 아니라 이들보다 한층 격한 어조로 친박계를 노골적인 비난한 이도 있었는데, 정두언 의원은 이날 상임전국위 무산 직후 회의장을 나서면서 “이건 정당이 아니고 패거리 집단”이라며 “아무런 명분도 없어. 동네 양아치들도 이런 식으로는 안 한다”고 친박계의 집단행동을 비판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정 의원은 “보수는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데 우리 새누리당은 자유민주주의냐를 따지는 게 아니라 특정인에 대한 충성심이 곧 정체성으로 하고 있다”며 “국민들이 볼 때 저건 보수당이 아니다. 이게 당이냐고 보고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정당 역사상 이렇게 명분 없이 말도 안 되는 행태를 보이는 것은 처음 본다”며 “이런 패거리집단에 내가 있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해봐야겠다”고 탈당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탈당까지 거론될 만큼 비박계의 격한 반발을 무릅쓰고 친박계에서 이번 집단행동에 나서게 된 것에 대해 일각에선 분당까지 각오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도 내놓고 있는데, 이로 인해 그간 회자되던 ‘제4당’ 창당설 역시 실체화되는 것인지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총선 패배에 이어 자칫 분당 사태의 책임까지 지게 될 것을 우려했는지 친박계 일각에서조차 전국위 무산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놓기도 했는데, 이날 무산된 상임전국위에 참석했던 친박계 핵심인 정갑윤 국회 부의장은 “여태까지 이런 일은 없었다. 좋은 모습이 아니다”라며 “민심을 돌리기에는 앞으로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개탄했다.
 
정 부의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예상했느냐는 질문에는 “모르겠다”라면서도 친박계의 조직적 불참으로 전국위가 무산됐다는 지적엔 “그런 얘기는 나왔다”라고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가운데 이날 3선 이상 비박계 중진 의원들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급히 비공개 회동을 갖고 이번 전국위 무산 사태와 관련해 긴급 당선인 총회 개최를 요구하기로 했다.
 
이날 혁신위원장직을 자진 사퇴한 김용태 의원과 가까운 비박계 김성태 의원은 김학용, 이종구, 이명수, 이혜훈, 이진복, 홍일표, 황용철 의원 및 당선인들과 회동한 뒤 기자들에게 “정 원내대표가 오늘 전국위가 무산된 작금의 상황에 대해 긴급 당선자 총회를 열어 소상히 국민들과 당원들에게 내용을 밝히는 게 우선”이라며 “지금 비대위와 혁신위 지도체제 인준이 이뤄지지 않은 암담한 상황에서 향후 당의 진로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지 결정하는 긴급 당선자 의원총회 개최를 요구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김 의원은 혁신위원장에 김용태 의원을 재옹립할지 여부에 대해선 “김용태 위원장 사퇴 문제는 자신의 의사도 중요하겠지만 우리 당이 처해있는 현실 속에서 많은 의원들의 총의를 모으는 것도 중요하다고 논의됐다”며 가능성은 열어뒀다.
 
이는 갑작스럽게 당한 이번 사태의 배경과 친박계의 저의부터 먼저 파악하자는 셈이겠지만 이미 현 시점에서 양측 갈등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여 20대 국회 개원 전부터 새누리당의 앞날이 좀처럼 밝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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